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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문학방

♧어떤 인생♧

작성자송정숙|작성시간26.06.07|조회수24 목록 댓글 0

작년 5월, 어느 신문이 한 변호사의 별세 소식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판사가 된 그는 네 딸을 두고 있었는데,

첫째가 눈에 이상이 와서
백방으로 치료했지만
결국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다.

그는 딸 치료 등
뒷바라지를 위해 천직으로 여기던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 딸은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공부를 잘해
미국으로 유학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해
서울맹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취직한지 9개월 되는 때쯤,
두 동생들과 함께 집 부근
삼풍백화점에 들렀었고,
그 때 붕괴 사고로
세 자매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 변호사는
딸들의 보상금으로 받은
6억 5천만에
본인 재산 7억원을 보태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첫째가 근무했던
서울맹학교에 기증하였다.

바로 그가 세상을 떠났다.
이름은 정광진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세 딸을 한꺼번에 잃은
아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미치지 않고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그는 놀랍게도 절대적 절망을
절대적 희망으로 전환시켰다.

그가 만든
맹인들을 위한 장학재단은
세 딸의 이름에서
한자씩을 가져와,
<삼윤장학재단>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재단은
수많은 맹인 학생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사고 때
세상을 떠난 둘째 따님은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한 살짜리 아들이 있었는데
정 변호사는
그 외손자를 데려와
자신이 키우며, 사위를 설득해
미국 유학까지 보내주고
재혼케 하여
새출발하게 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선택이 아닌가?
그 아이는
절망속의 조부모에게는
살아야 될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홀아버지보다
더 극진한 사랑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이의 생부에게는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
새출발하는데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런 탁월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였을까?

몇 년 후
넷째 딸마저 병으로 떠났다.
어떻게 다 키운 자식 넷
전부를 잃고도 그런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유대인으로서
나찌의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항상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삶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광진 변호사는
그 상황에서
삶에게 기대하는 것을
중단하고,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앞에 놓인
과제가 무엇인가,
나는 그 과제를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하고 질문했던 것같다.

그리고 그 책임을
온 어깨에 짊어졌을 것이다.
그것은 먼저 떠난 딸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 .

그 남겨진 혈육이
온전히 성장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다시 평화를 얻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하여 임종의 순간에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나이다..."
하며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은,
어느 소설의 결구처럼
"그렇게 슬픈 것만도
그렇게 기쁜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 잘못과 무관하게
큰 시련이 올 때도 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남 탓하고,
자책하고, 비관하다가
파멸되어 사라지고,

또 어떤 사람은
고통을 극복하며
세상에 남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시련 속에서 억울해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냈던 사람은
불멸의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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