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미투리/ 청조
조선시대
서민층
상류계급이 신었던
짚신과 비슷해도
닥종이로 만든 신발
선비들
맑은 날 나들이
함께했던 신이라네
23 자나깨나 걱정/ 청조
한양 북촌 산골짜기
가난한 노인네
비가와도 걱정이요
맑은 날도 걱정이다
한 아들 우산 장수
다른 아들 짚신 장수
나 같으면 걱정 대신에
좋은 쪽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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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운혜 당혜 태사혜/ 청조
운두가
낮은 신을
통털어 혜라 했지
울 어머니 꽃신도
운혜가 맞을거야
태사혜
하나 사다가
울 손주 선물하고파
혜(鞋)는 운두가 낮은 신을 이르는 것으로 재료나 장식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구분되며, 성별과 신분에 따라 달리 신었다.
조선시대에는 당혜(唐鞋)와 운혜(雲鞋), 온혜(溫鞋), 태사혜(太史鞋)를 신었던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당혜는 태사혜와 유사하게 앞코와 뒤축에 당초문(唐草文)의 회장(回裝)을 장식했으며,
안은 융 같은 푹신한 감으로 하고 신울은 가죽을 비단으로 싸서 만들었다.
운혜는 앞·뒤 마구리를 신울과 다른 색으로 장식하고 앞코와 뒤축에 각각 죽엽과 굼벵이라 불리는 장식을 붙여 마무리했다.
운혜는 의례 참례 시 착용하는 신이며, 의례참여자는 신분에 관계없이 착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온혜는 꽃장식이 된 여자의 신으로 조선 초기부터 왕실의 왕비와 후궁, 옹주, 상궁 등 궁 안 모든 여인들이 신었으며, 상례와 가례 및 연회 등에서 착용되었다.
당혜와 운혜는 여자용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헌 기록에 남자들이 착용한 사례도 많이 나타난다.
1525년에 기록된 『中宗實錄(중종실록)』 전교 傳敎는 왕이 내린 명령을 의미한다.
에서 “…함경도와 평안도의 변방을 지키는 장사(壯士)들에게 검은 서피로 만든 당혜를 내려주라…”는 기록과 1750년에 기록된 『英祖實錄(영조실록)』에서
“정군의 조선시대 군사 제도의 기간을 이루었던 일반 양인 농민 출신의 병종(兵種).
자식들은 모두 도포를 입고 당혜를 신는다”고 하여 당혜가 조선 중기에 이어 후기에 이르기까지
변방과 중앙의 군인뿐 아니라 정군의 자식들까지도 착용하던 신이었음을 알려준다.
또 정약용은 『茶山詩文集(다산시문집)』(1865년)에서 “당혜는 남자 연복(燕服) 차림의 창의와 도포와 같이 신는다”고 하였다.
태사혜는 대표적인 남자용 마른신으로 비단으로 신울을 감싼 고급신이다.
앞코와 뒤축에 신울과 다른 색으로 줄무늬선〔太史文〕이 장식되었는데, 흔히 사대부나 양반 중에 나이 많은 사람이 평상시에 신었다.
이 신은 중국 명(明)나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의견도 있으나, 기록상에는 19세기 말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1891년에 지규식(池圭植)이 쓴 『荷齋日記(하재일기)』에 태사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과의 교역품목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남자의 신인 운혜와 당혜, 여자의 신인 온혜는 근현대로 내려오면서 운혜와 당혜는 여자의 신으로 바뀌며,
태사혜가 남자의 신으로 등장하는 반면 온혜는 사라지는 변화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