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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풍경

비운의 여인 권행림

작성자풍경지키미|작성시간26.06.08|조회수16 목록 댓글 2

비운의 여인 권행림여사

 

함평군과 영광군 사이에 불갑산이라는 큰산이 있다.

6,25 동란이 끝나고 마지막까지 빨갱이들이 주둔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갑산 밑에 자리한 마을들이 피해가 많았다.

 

밤에는 빨갱이들이 내려와서 양식을 빼앗아 가고

낮에는 군인들과 경찰이 와서 빨갱이들을 도와준 주민을

색출하여 잡아갔다.

 

그 혼란스럽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 한 가운데

불갑산 밑 자락에 자리한 해보면 감매리에 사는

권행림이라는 여자 분이 계셨다.

 

평생을 처녀의 몸으로 살다 가신 그 분은

1950년대 중반 꽃다운 아가씨의 몸으로

밤에는 빨갱이들에게 시달리고 낮에는 경찰서에 끌려가서

모진 심문을 당하는 나날을 보냈다.

 

말이 빨갱이지 같은 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북쪽에 뜻을 둔 사람과 남쪽에 뜻을 둔 사람들로 나뉘어서

북한군이 내려 올 때에는 남쪽 편에 든 사람을 죽이고

남쪽 국군이 들어오면 북쪽에 뜻을 둔 주민을 죽이는

이데올로기의 희생 물일 뿐이지

빨갱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쁜 사람이거나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권행림은 훗날 아주 먼 훗날

꼬부랑 할머니가 다 되어서 나를 만나게 되는데

훗날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도

차마 말로 다하지 못하는 부분을 눈물로 삼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를 의지하고

마음에 있는 말을 다하시고 간 그 분이지만

그래도 끝내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부분 부분마다 차마 말로 토하지 못하고 꿀꺽 삼키고 마는 그 분의 눈물 앞에

그 분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 인가를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평생을 처녀의 몸으로 늙으신 것을 보면

그 시절 한창 청춘 때의 아픔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 시절 권행림은 밤마다 남몰래 밥을 지어 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조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행여 밥 짓는 연기나 김이 사람들의 눈에 띄는 날이면

틀림없이 아침이면 경찰서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몇 번 빨갱이를 도와주다 발각되었으면

사살이라도 당했을 텐데

이래 적으로 권행림 만은 고문과 협박만 당했을 뿐

며칠이면 풀려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유난히 아리따웠던 그를 차마 죽일 수는 없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불갑산에 숨어 있는 누군 가를 사모하는 그녀를

마을 젊은이 중 누군 가가 마음에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일생을 좌우하는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하는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빨갱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권행림을 사살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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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소랑/조 경애 | 작성시간 26.06.09 그 시절에는 억울하게 죽임당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었습니까
    권행림여사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 작성자여울 / 신현자 | 작성시간 26.06.09 기가믹힌 남과북의 전쟁
    가슴에 맺힌 한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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