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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풍경

평생의 한

작성자풍경지키미|작성시간26.06.09|조회수19 목록 댓글 4

 

얼마나 헐벗고 배고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면

권행림이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는 지를 알면서도

야심한 시간을 틈 타 불갑산을 내려와서

먹을 것을 받아 들고 갔을까

 

끝내 권행림은

평생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일을 하고 만다.

그가 오기로 한 날짜와 시간을 경찰에게 알려주고 만 것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다 주고

당신은 방바닥에 엎드려 있으시오.

절대 내다보거나 몸을 일으키면 안되오"

그런 명령을 받고 권행림은 그가 가져갈 마지막 밥을 짖고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서 부엌에 내 놓고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살을 애이는 추운 겨울 바람 소리만 솔 가지를 뒤흔들 뿐

고요하기만 하던 밤이 지나고

잠깐 잠이든 사이 먼 귀퉁이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깬 행림은

조심스럽게 부엌 문이 열리는 소리와

가마솥 두껑을 열고 꾸역 꾸역 밥을 먹는 소리,

그리고 밥을 퍼서 담은 후 옷가지를 싸 놓은 봇다리를 들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앞 뒤 분간을 할 수 없는 총 소리가 났고

총알은 행림이 엎드려 있는 창문에도 수십 발이 날아와

창호지를 너덜거리게 찢어 놓았다.

자욱한 화약 연기에 기침을 하며 찢어진 창문 사이로 밖을 내다 본 행림은

담을 넘다 말고 만신창이로 총탄 세례를 받은 젊은이의 시체를 보았다.

 

왜 그 때라도 달려나가 그를 끌어안고 울지 못했던가.

권행림 할머니는 그 대목에서 목 놓아 우셨다.

 

대 , 여섯 명의 경찰이 담 벼락에 걸쳐진 시체를 끌어 내려서

피가 낭자하도록 큰 길가로 끌고 갈 때까지

그저 창살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단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말로도 치를 떨며 정서가 불안해진 할머니는

한참을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 거리며 얼굴을 설레설레 흔드셨다.

 

그 후 할머니는 남동생이 감매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을 떠나서 평택에서 일생을 홀로 사시다가 말 년에 이르러

고향으로 내려 오셨다.

 

그러나 빨갱이를 도와준 누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탓일까.

그의 동생은 돌아온 누님을 그다지 살갑게 대하지 않은 것 같았고

나중에 동생 집을 나와서 해보면 면소재지 뒤쪽

어느 작은 집을 얻어서 혼자 사셨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함께 얼마 살지는 못했지만

고인이 된 그 분 이야기를 좀 더 하자니 마음이 우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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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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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랑/조 경애 | 작성시간 26.06.09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안그래도 곧 병원가서 화백 엠알찍어야하는데 ....
  • 답댓글 작성자어깨동무ㆍ | 작성시간 26.06.09 늘 우울했던 그 분
    그래서 그 분 곁에는
    우리 부부가 필요했지요
  • 작성자여울 / 신현자 | 작성시간 26.06.09 그 사람을 배신했다는
    자책이 얼마나 가혹했겠어요 차라리
    그때 총을 맞고 함께 죽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더 심장에 가시가 박힌듯
    했을것 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어깨동무ㆍ | 작성시간 26.06.09 그 후회로 평생을 살았겠지요
    이데올로기로 낙인찍힌 외로운 삶
    그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전화를 해서
    원선이네 집 지을 때 내가 살 방하나 만들어 주세요
    돈은 부족하지 않게 드릴게요
    그렇게 부탁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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