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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풍경

진정 할머니를 사랑한 사람들

작성자풍경지키미|작성시간26.06.17|조회수25 목록 댓글 6

우리 부부가 평택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였다.

아파트 앞에 조그만 천막을 쳐 놓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던 아주머니가 몹시 늦은 시각인데도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들 이름을 경황 중에 들어서 기억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일단 그의 남편 이름을 김석기씨라고 표기해 놨다가

나중에 다시 고치도록 하겠다.

 

김석기씨는 권행림 할머니가 평택에서 살 때

나 못지 않게 할머니를 온 정성으로 섬겼던 분으로

함평으로 내려 올 때에도 감매에 까지 함께 내려 와 주었고

또 평택으로 다시 올라 갈 때에도

함평까지 내려 와서 짐을 싣고 올라간 분들이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자기 핏줄도 아닌데 그렇게 까지 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김석기씨는 다시 돌아 온 할머니를 전보다 더 지극 정성으로 섬겼으며

돌아가시던 날도 할머니의 일정을 다 알고 있을 만큼

할머니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상을 훤히 꿰고 계셨다.

돌아가신 사실도 맨 먼저 그 분들이 발견을 하셨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도착한 친척들은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것보다는 먼저 장농 등을 뒤지며 돈부터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김석기 씨에게

"사람이 죽었으니 돈을 꾸어 갔더라도 누가 순순히 내 놓겠느냐"며

김석기씨 부부를 의심스런 눈으로 보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감매에서 올라 온 남동생 입에서

함평에 사는 박원철에게도 연락해 보라는 말이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오히려 더욱 억울했던 김석기씨는

이런 마당에 우리가 나타나면 무슨 험한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아내에게 연락을 하지 마라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날이 새면서 우체국에 가보니 그곳에도 통장이 있고

농협에 가보니 그곳에서도 통장 원부가 나왔고

주위에 돈을 꾸어갔던 사람들도 하나 둘 나타나면서 처음의 험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고 했다.

 

방 한 칸이라도 얻어서 우리 곁에서 살려고 모아왔던 재산이

살아 생전에 따뜻한 밥한 끼 주지 않던 친척들에게 분배가 되었다.

그런 일로 옥신각신하는 혈육들 속에 할머니는 말없이 관 속에 갇혀있었다.

이리도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나는 붉은 천에 덮여진 관을 어루만지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가버린 할머니를 원망했다.

 

며칠 전에도 그토록 나와 함께 살기를 바랬던 김경수씨가

한 마디 말도 없이 먼저 가버리더니

어머님처럼 의지하고 따랐던 할머니였는데...

 

우리 부부가 생각 이상으로 슬피 울자

김석기씨 부부도 덩달아 슬피 울었다.

그러는 서로를 돌아 보며

우리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한 사람들이었는가를 느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서로를 얼싸 안았다.

 

그 날 김석기씨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말을 나에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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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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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랑/조 경애 | 작성시간 26.06.17 권행림여사는 천성이 고우신분이었는데
    왜 형제들은 하나같이 그 모양들이랍니까.
    남편 병원에 입원 시켜두고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홍선옥 | 작성시간 26.06.17 에효 ~~~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부디, 검사후 좋은 결과 나오시길 기도합니다
    댓글 이모티콘
  • 답댓글 작성자풍경지키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걱정이 되는 군요
  • 답댓글 작성자여울 / 신현자 | 작성시간 26.06.17 소랑님 마음이 복잡 하시겠어요 부디 빠르게
    회복 되시길 바랍니다

    김석기씨의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말이 궁금하네요
  • 답댓글 작성자어깨동무ㆍ | 작성시간 26.06.18 여울 / 신현자 
    지금 생각해도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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