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꽃 달빛에 잔별이 깔리는 풀밭 처녀로 죽어서 길 한가운데 묻혔다는 눈썹 푸르던 누이 분화장하고 눈썹 달고 고즈넉이 서 있다 강아지꽃 너무 일찍 간 아랫말 순이 입가에 볼우물처럼 우물가 풀섶에 함초롬 피었다 이내 시들어버리는 달개비꽃 뒷마당 한구석 닭의장 근처 풀섶에 숨어
빠꼼히 얼굴 내미는 너를 만나면 그리움은 온통 연파랑 하늘빛이 된다 몽당연필 침 발라 눈썹 그리다 먼 마을 시집간 달개비꽃 자목련 하늘나라로 간 소녀들, 하늘나라는 심심하고 답답해 밤사이 몰래 놀러 나왔다 담장 위에 깜박 벗어 놓고 간 어여쁜, 꽃신
코스모스 덜컹거리며 미군 차가 지나가던 그 집 앞 학교 길
가는 목을 빼고 깨금발로 손 흔들던 단발머리,
먼먼 그리움의 끝에서 가슴으로 피워낸
빨강 하양 분홍
능소화
가까이 오지 마셔요 이윽한 눈빛으로 떠보려 하지도 마셔요
애오라지 단 한 분, 지아비 손길로만 피어나는 꽃이랍니다
제 몸에 손대는 순간 그예 당신은, 눈이 멀고 말 것이어요
능소화 사랑
단연코 잊지 않으리라 달빛 따서 덮어주던 그날 밤 그대 다순 손길
잠든 순간이라도 한 번만 살짝 다녀가오시라 천 개의 귀 쫑긋거리며 만 개의 눈 깜작거리며
작두날 타듯, 아스라이 맨발로 하늘 끝 오르다
사모침이 다하여 뎅강뎅강- 목을 버혀 떨구었고녀 담장 밑에 뒹구는 사랑아
불두화 피는 밤
-입하立夏
워낭 소리 무심히 빈 뜰을 채우는 밤
몽실몽실 달 아래 불두화 벙그는 소리
외양간 소가 귀 열고 가만- 눈 감으시다
분꽃 담장 밑에 세숫물 받아먹고 저녁쌀 씻을 때면 피는 단봇짐 끼고 어린 동생 앞세워 영 넘어 부잣집 늙은 영감 시앗으로 들어간 열여섯 분이 같은 누리장나무 꽃 필 무렵
달거리하는 처녀 냄새로 누리장 꽃은 핀다 비 오다 개고 비 오다 개고 누리장 아래 원추리 산나리 피고 때죽 팥배 산딸 모감주나무 그늘 아래 애매미 찌매미 오이씨매미 몽똑한 꽁무니 까불썩거리며 목청 뽑아 울음 울다 죽은 듯 숨 뚝 끊고 몸 포개 짝짓기하는 무슨 일 일어날 듯 무슨 일 일어나지 않는 나른하고 노곤하고 혼곤한 오후 두 시의 무섭도록 적막한 불볕 속 아스팔트 위를 까치발구두 끄을며 되똥대는 처녀들 미끈하게 휜 다리는 여전히 위태하다
민들레꽃
갈라진 장독대 틈새나 자갈밭, 돌 틈, 보도블록 사이라도 좋아 개똥밭에 피어나도 나는 좋아 긴긴 겨울 견뎌내고 쪼르르- 아침 볕에 젖은 머리 말리며 꽃등 하나씩 켜 들고 섰는 웃음 헤픈 어미가 아무 땅에 아무렇게나 퍼뜨려 놓은 노랑꽃, 하양꽃, 흰노랑꽃… 한철 지나고 나면 바람 타고 뿔뿔이 흩어질 애꿎어라, 옹기종기 눈빛도 하 착한 아비 모르는 자식들
토끼풀꽃
가오리연 긴 꼬리 날리던 묘 펀덕 토끼 똥 쌓였던 자리 찾아다니며 소보록 피어나던 꽃 불현듯 마주친 소꿉친구, 꽃목걸이 엮어 걸어주면 봉싯봉싯 볼 붉히며 새하얀 덧니를 살짜기 드러내 보이던 동그란 토끼 눈, 아랫말 고 계집애
미스김라일락 미군정기 삼각산 바위틈에 자생하던 토종 수수꽃다리가 태평양 건너가 서양 물 먹고 파란 눈의 미스 김이 되어 돌아왔다 진보랏빛 꽃망울이 연보라를 띠다 활짝 피며 백옥같이 흰옷으로 갈아입고 짙은 향기 멀리까지 내뿜어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라일락 중 라일락, 키 작고 당돌한 우리 귀여운 아가씨 미스 김이 돌아와 까치발구두, 개미허리 드레스 폼나게 걸치고 두 눈에 눈물방울 매달은 채 고혹적 자태를 한껏 발산하며 서 있다 장미는 왜 붉게 피는지 이번 여름엔 사랑을 하고 싶다 야한 티 하나 사 입고 낯선 여자와 낯선 거리에서 낯설지 않은 사랑을 하고 싶다 장미는 왜 붉게 피는지 낯선 거리에서 묻고 싶다 해바라기 사랑
실레네 스테노필라⁎
얼마나 간절한 기다림이었을까 빙하 말 시베리아 콜리마 강변 매머드 들소 뼈가 묻혀 있는 동토 속에 기억이 짧은 북극 다람쥐가 숨겨놓고 찾지 못한 열매 한 톨,
해와 달과 바람의 손길 기다리며 3만 1천8백 년 동안의 고독한 잠 속을 뒤척이다 러시아 과학자 손끝에서 하얀 울음 터뜨리며 꽃을 피워냈다
실레네 스테노필라!
얼마나 가슴 떨리는 설레임이었을까 밀레니엄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동안 산이 강 되고 강이 바다가 되고 얼마나 숱한 생명들이 지구별을 찾아와 사랑하고 사랑하다 돌아들 갔을까
눈썹 끝에 가물대는 자그만 별 하나 반짝, 빛난다 머언 태곳적 별에서 폭발한 불빛이 수백 광년을 달음질쳐와 지금 막, 내 망막 속으로 들어왔으리라……
⁎러시아 연구진이 시베리아 콜리마강 인근 툰드라 지대 지하 38m에서 3만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석죽(패랭이꽃) 과의 열매를 발견, 조직을 배양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 식물명.
소래산 진달래꽃
언제 보아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산
밀물 드는 포구에서 짜디짠 소금바람 불어오면 소래산 진달래는 석양에 붉게 핀다
앙상한 가지마다 고만고만한 작은 슬픔들 거느리고 해마다 붉게 피는
소래산 진달래꽃
하늘공원 야고* 난지도 새벽하늘에 떨어져 내릴 듯 넘쳐 쏟아져 내릴 듯 반짝이던 별 무리들
여기, 홍자색 그리움을 피워놓았구나
한라산 억새밭 파도 소리 못내 그리워
*야고 野菰. 한라산 억새밭에 더부살이하는 한해살이풀로 억새를 옮겨 심는 과정에 따라온 것으로 추정됨. 야래향夜來香 하늘나라 아기별들 밤사이 지상으로 놀러 나왔다 금기를 깨고 새벽닭 울기 전에 돌아가지 못해 빛을 잃고 꽃이 되는 벌을 받았으리라 낮 동안 강한 태양 볕 아래 작은 꽃잎 앙다물고 있다 밤 되자, 저 도저한 향기를 한껏 뿜어내고 서 있는 너는 강아지꽃. 2 -강아지야, 강아지야, 입은 옷 벗어놓고 너 어디 갔니
-무지개다리 건너 꽃구름 타고 하늘하늘 하늘나라 왔지요
-하늘나라 심심해서 누구랑 노나
……
강아지꽃 입에 대고 오요요 강아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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