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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시 모음 2

작성자김용화|작성시간21.04.14|조회수282 목록 댓글 0

저 하늘 아래에는

 

 

저 하늘 아래에는 운동모자 꾹 눌러쓰고

코스모스 꽃길

말없이 걸어가는 소년과

 

하얀 팔 내놓고 오르간 앞에 앉아 있는

갈래머리

소녀가 있었다

 

 

 

 

 

마중

 

 

비가 오는 날마다

할머니는

삼거리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세시차가 있고

다음은

다섯 시 반이었다

 

헌 우산은 쓰고

새 우산은 접고

세시차에 안 오면 다음 차가 올 때까지

 

비에 젖어,

해오라기처럼 서 계시었다

 

 

 

 

 

곡우 단비

 

 

하늘이 때를 알아 비를 내리십니다

달팽이는 긴 뿔대를 세우고

가재는 바위를 굴리며

청개구리는 연잎 위에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물새는 수면을 차고 날며

잉어는 못 위로 뛰어올라

농부는 땅에 엎드려

온몸으로, 오시는 비를 마중합니다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감꽃 지는 마을

 

 

감꽃 피는 내 고향 가고 싶다

논두렁에 콩 심고

비 맞으며 깨 모종하고

 

장날이면 엄마랑 단둘이

등불 밝혀 들고

한내 장길 아버지 마중을 나가고 싶다

개구리 울음소리

가만가만 밟아가며

 

오늘같이 비 오다가 갠 날엔

앞산 뒷산

나란히 잠든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깨워 일으키고 싶다

 

 

 

 

 

고향 산 베고 누워

 


저물녘에 들려오는 오뉴월 무논의 개구리 울음소리

건너말 외딴집 불빛 새로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

한여름 밤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

저녁나절 들려오는 먼 마을 닭 울음소리

보름도 갓 지난 초가을 빈 마을 우물 터서 들려오는

가늘고 긴 풀벌레 소리 베고 누워 고요히 저물고 싶다

 

 

 

 

 

세월 속에서

 

 

눈이 와서 마을이 박속처럼 화안한 날

고향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다

80을 바라보는 엄마가 해준 흰 쌀밥 먹는다

90을 코앞에 둔 아버지가

50이 넘은 아들 밥 먹는 모습 지켜보다

귀밑에 흰 머리 하나를 뽑아 준다

눈꽃이 전설처럼 피어나는 동화 속 마을에서

 

 

 

 

 

장마 끝나고

 

 

장마 끝나고,

갈울내깔

징검다리 하나 둘 모습 드러내면

시냇물 맑아져 송사리 피라미 떼 줄을 짓는다

아랫내 물턱

큰물에 휩쓸려온 방개고무신 한 짝 걸려 있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버들붕어 한 꿰미씩 들고 곱돌모랭이 돌아오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내

 

 

눈길만 마주치고 살자며

첫날밤

잠도 안 자고

창밖에 별만 쳐다보던 그 여자

 

아들 군대 보내 놓고

오늘은

밥도 안 하며

먼 산만 바라보는 저 여자

 

 

 

 

 

가족사진

 

 

계급장도 없는 훈병 모자 눌러쓴

삼십 중반 아버지가

세 살짜리 고추를 안고

박꽃처럼 환하다

 

할머니랑 엄마랑

광시, 청양, 부여 백마강을 배 타고 건너 꼬박

이틀 만에 당도한 논산훈련소

 

스물다섯 분꽃 같은 엄마는

내외를 하는지

다소곳이 고갤 숙인 채

새촘한 표정,

무슨 생각 저리도 골똘한 것일까

 

사진 밖에 서 있는

할머니 환한 얼굴도, 내 눈에는 환하다

 

 

 

 

 

가장의 밤

 

 

잠든 아내 이불 끌어다

미운 발

덮어주는 일

 

딸 자는 방 살짝 들어가

지폐 한 장

찔러주는 일

 

아들놈 우산 갖다주고

책가방

들어주는 일

 

창밖 밤비 소리 들으며

쓴술

삼키는 일

 

 

 

 

 

소꿉놀이

 

 

한세상, 흙에서 나

땅 파고

씨를 묻다

 

저 가을 강변

감빛 물 곱게 드는 저녁노을 속으로

소리소문없이

잠겨 버렸으면

 

소꿉놀이하다

엄마가

부르면

 

집으로 돌아가듯

 

 

 

 

 

첫사랑 그 여자

 

 

남몰래

가슴 깊이 묻고 살아도

꿈속에서 불쑥 뛰쳐나와 들킬 것 같아

불안하다

 

한세상 살며

가슴 좀 실컷 아파 보라고

꿈길마다 찾아와

눈웃음치다

 

한 발짝

다가가면

살래살래 달아나 버리는

 

 

 

 

 

강 건너 그대

 

 

하늘빛이 흐려서 손 한번 헐겁게

잡아 보지 못했네

그리워 말 못 하고 살아온 지

오랜 지금

강 건너 갈밭머리

반백의 머리칼 날리며 쓸쓸히 웃고 섰는 여인아,

그대 향한 그리움 오늘도

겨울 강둑에

빈 해바라깃대처럼 서 있을 뿐이네

 

 

 

 

 

내 안의 여자

 

 

우체국 측백나무 사이로

바라보던

오렌지색 원피스가

고옵던 그녀

 

까마득한 세월 흘러갔어도

그 집 앞 지날 때면

내 가슴은

뛰고 있지

 

그날 읍내로만 따라 나왔더라면

지금 그녀는

곁에 있을 텐데

항상, 내 안에 있지

 

 

 

 

 

봄밤

 

 

보리술 씬냉이국에

그대 목소리 동동 띄워 맑은 귀로

담아내는

 

청복의

 

 

 

 

 

소래산 진달래꽃

 

 

언제 보아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산

 

밀물 드는

포구에서

짜디짠 소금바람 불어오면

소래산 진달래는 석양에 붉게 핀다

 

앙상한 가지마다

고만고만한 작은 슬픔들 거느리고

해마다

붉게 피는

 

소래산 진달래꽃

 

 

 

 

 

 

먼 손님

 

 

오래도록 기다린 당신,

 

머리카락 끊어

밥 한술 마련했으니

 

찬물에 잘 말아

새로 담근 열무김치 얹어서 드시고

 

가시는 먼먼 길

살펴 살펴 가십시오

 

 

 

 

 

망종 지나고

 

 

게으른 잠에서

막 깨어나는

 

청개구리

한 마리

 

얼마나 울었는지

지난밤

 

눈두덩이

부어 있다

 

 

 

 

 

고향 집

 

 

고향 집 팔았단 소식 듣고, 사흘 밤낮

이불 덮어쓰고 잤네

꿈결에도 바람 타고 날아가 대문 밖

서성이며

 

달 그늘에 잠긴 뜨란 넘겨다 보다

낯선 개가 캉캉 짖어

슬금슬금 꽁무니를 내리며 돌아오고 말았네

 

밤마다 잠 못 들고 떠도는

내 발걸음아,

오늘 밤은 어느 낯선 마을 떠돌다

긴 그림자를 끄을며 돌아올꺼나

 

질라래비훨훨-

하루에도 몇 번씩 날개 돋친 새가 되어 날아가

엎드려 입 맞추고 돌아오는 곳,

 

인제는 새봄이 돌아와도

찾아오지 않는

식구 하나 더 늘어

샘봉에 쏙독새만 밤을 새워 울어 쌓겠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날 밤

 

밤새

큰손주 이름 부르셨단다

 

할머니-

 

 

 

 

 

옛 동산에 오르며

 

 

저-기 저

소장뜰 대흥내 건너

꿩 산비둘기 사뿐 내려앉는

채당미 해바른 곳은 붙들아버지 묘

닭재산 자락 코불네 산은 꼽새할머니 묘

찬샘골 서낭당 산삐알은 마구셍이 체장수 묘

황골 방죽머리 뱀밭엔 머슴살이 성배 아버지 묘

앞산 모랭이 양지 녘엔 자식 못 둔 천안할머니 묘

함질재 오르막에는 푸른 이끼 덮어쓴 딸그만이네 묘

부엉이골 분고개 산등성은 매방앗간 연승 할아버지 묘

때까치 새끼 치는 팽나무재 너머 애꾸눈이 순옥 엄마 묘

흐드러진 찔레꽃 멍개나무 덤풀 속엔 올망졸망 애기들 묘

수리봉 자락길 지나 시루셍이 먼발치로 중뜸 소이침쟁이 묘

주걱샘 가는 길섶 쑥대밭은 아들 못 둔 연국이 외할아버지 묘

작은매봉재 큰 바위 아래 가재골 다락논 곁에는 늑대할아버지 묘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한복판엔 처녀들 묘

말구루마 비척대는 삼거리 주막집을 지나 갈참나무 숲은 우리 할머니 묘

 

 

 

 

 

눈 내리는 저녁

 

 

저녁 눈 설핏하게 떠도는 날은

고향마을 찾아들고 싶다

아이들 한바탕 떠들다 돌아가고

시누대 밭 참새들만 춥다고 조잘대던

저녁 어스름,

그 집 앞 지나다가

나풀대던 단발머리 보고 싶다

외양간에 늙은 소

숨 몰아쉬는 소리 들릴 듯하다

 

 

 

 

 

꼬마 시인

 

 

엄마- 달님이가 자꾸 나를 쳐다봐

괜찮아, 우리 애기 예뻐서 그래

 

엄마- 달님이가 나를 따라와

괜찮아, 우리 애기 함께 놀자고 그래

 

엄마, 엄마- 달님이 물에 빠지려 해

울지 마, 달님이는 옷이 젖지 않아

 

세 살짜리 꼬마가

엄마 등에 업혀 소래포구를 건너간다

 

 

 

 

 

홍성군 금마면 봉서리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공기

문밖에서 비 맞고 있다

 

젊어서 혼자되어

비를 맞더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비를 맞는다

 

홍성군 금마면 봉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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