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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 새롭게 등장한 <먹염바다>의 의미 찾기

작성자조용숙|작성시간09.12.13|조회수96 목록 댓글 0

한국 문단에 새롭게 등장한 <먹염바다>의 의미 찾기

이세기 시인의 시집 <먹염바다>(2005, 실천문학사)의 ‘먹염’은 실제 지명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먹염’을 한자로 쓰면 ‘묵도’(墨島)다. 이 묵도가 이세기 시인이 태어난 문갑도 근처에 있다고 한다. 이세기 시인의 시는 <먹염바다>로 시작해서 <먹염바다>에서 끝난다. 입구와 출구가 같다. 처음과 끝이 같다. 처음이 끝이고 끝이 처음이다. 그럼 이 시집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일단 몸에 소금기가 간간이 밸 때까지 <먹염바다>에 몸을 푹 담가보기로 한다.

“밤바다/밤 물때 이는 소리//밀려오고/밀려오는//이 밤 여기 서 있으면//멀리/가까이//무엇인가 울고/무엇인가 흐느끼는/숨소리//오렴/오렴/어서 오렴//밤바다/슬프고 아름다운//밤 물때/이는 소리”

-밤 물때- 전문

<먹염바다>에 들어있는 첫 시다. ‘밤 물때’는 ‘먹염바다’를 낚아 올리는 그물처럼 비춰진다. 시인이 서 있는 이 바다는 분명 맑고 투명하기만 한 낭만적인 바다가 아니다. 뭔가 슬픈 그림자가 드리운 어두운 바다다. 이 첫 느낌은 시집 제목이기도 한 <먹염바다>라는 시에서 더욱더 확장된다.

“바다에 오면 처음과 만난다.//그 길은 춥다//바다에 씻긴 따개비와 같이 춥다//패이고 일렁이는 것들/숨죽인 것들/사라지는 것들//우주의 먼 곳에서는 지금 눈이 내리고/내 얼굴을 파리하다//손등에 내리는 눈과 같이/뜨겁게 타다/사라지는 것들을 본다//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사이/여기까지 온 길이/ 생간처럼 뜨겁다//햇살이 머문 자리/괭이 갈매기 한 마리/뜨겁게 눈을 쪼아 먹는다”

‘밤 물때’에서 받았던 느낌이 ‘먹염바다’에 와서는 한층 더 확장되어 지나온 삶의 자리가 ‘생간처럼 뜨겁다’고 토로한다. 이 표현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두울 것임을 암시한다. 이 어둠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둠이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갯티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들이 부서진 조개껍질처럼 흔하게 발견된다. 이처럼 바다는 섬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제삿날’ 에서는 “저문 어루뿌리에 어루너머를 넘어온 바닷바람에선 가끔씩 피 묻은 이야기가 묻어올 것만 같다”고 한다. 또 ‘서쪽’이란 시에서는 “배를 타고 월북하였던 둘째 작은 아버지는 반공법”에 걸리고, “월남에서 돌아온 매형은 목발을 한 채 이틀 밤을 묵고” 떠났고, “흙을 파 먹다 부황이 들었다는 배를 타지 못한 흐냉이 삼촌은 죽어서 쉬쉬하는 소리와 함께 언 땅에 묻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더 이상 바다에 살 수 없게 된 아버지와 털보 작은아버지와 넙잭이 작은아버지가 인천과 목포로 떠나야 했던 집안의 내력이 펼쳐진다.

시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바다에 나갔다가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해안의 경계를 넘어 북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 등장인물들이 겪은 삶의 애환은 단순히 <먹염바다>에 살았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이 겪어야했던 삶의 애환은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현실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남북분단문제부터 남의 나라 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내 보내야 하는 이 약소국의 현실을 어떻게 감안하지 않고 이 시집을 읽어낼 수 있을까.

‘당너머 집’이란 시에서도 “조깃배를 타던 쌍둥이 아들이/월경을 하였다는/소문이 들리던 그 겨울 이후/그 집에는 밤마다 부엉이가 운다고 하였다”고 묘사한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쌍둥이 아들을 기다리는 어미의 마음은 하얀 백발이 되어서도 멈출 수 가 없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혹은 육지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애잔한 기다림이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슬픈 가족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또 갯바닥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려야 했던 고독한 시간은 시인의 가슴에 사유의 씨앗을 뿌린 詩의 공간이다. 사리를 만나 텅 비어 있는 집에서 “둠범에 갇힌 중틀이마냥/아가미를 뻐끔거리며/새까맣게 게운 밤을 쫍는다”는 표현에서처럼 큰 기다림과 작은 기다림이 교차되고 있는 시인의 유년은 바다를 고향으로 둔 한 소년을 시인으로 키워낸다.

또 이 시집에는 연좌제라는 반공법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야했던 사람들의 낮은 숨소리가 배어있다. 그래서 이 섬사람들은 말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방법에 더 익숙해져 있는것 같다. 이처럼 몸으로 익힌 삶의 습성처럼 이 시집에서도 말을 많이 아낀다는 느낌이 강하다. 말을 아낀 대신 <먹염바다>라는 공간과 시간을 펼쳐 보여주려고 애쓴 흔적이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세기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대해서 웅진도서지역 그곳에서의 갯티 범부의 삶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시인은 “한갓 미물에게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범부의 말씀을 받들며 살았다.”며 “갯티 범부의 삶을 존중하고 또 그들이 제 시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인의 기억에 내장된 유년의 트라우마가 자신의 시집 속에 흔적처럼 각인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시인의 말처럼 <먹염바다>는 시인을 키워낸 시적 자궁으로 환원된다.

시인은 이 자궁 문을 열고 나오면서 우렁차게 울어댔다. 그래서 많은 시의 평자들로 하여금 그의 탄생에 귀 기울이게 하고 또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이 울음은 단순히 한 시인의 탄생만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 가 있는 평자들의 시선을 주변이라는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래서 중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주변에도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그런데 가만히 그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바다바람과 갯내와 바다사람들의 숨소리가 들어있는 그런 울음이다. 그래서 이세기 시인의 언어의 매력은 남다른 비린 맛에 있다.

갱물, 아홉무날, 무쉬날, 두무날, 되진바람, 푸신바람, 갯티, 굴구적, 게통배, 조새, 돌중게, 박하지, 선새미, 깐팽이, 팔랭이와 같은 어업사전을 옮겨놓은 듯한 구절들이 있다면, 먹염, 어루뿌리, 어루너머, 호망너머, 긴뿌리, 까마개, 동막, 굴업도, 이작도, 새섬, 할미염뿌리, 당섬, 소야도 등등 섬사람들의 삶의 무늬로 빛나는 단어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먹염바다’에는 시를 쓴 시인의 세계관이 강하게 드러난다. 낮은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시인의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집을 타고 흐르는 기류는 순도 100%를 자랑하는 짭짤한 바닷물이다. 그래서 이 시집 속에 푹 빠졌다 나오면 저절로 짭짤하게 절여져서 한동안은 썩지 않을 것 같다. 소외되고 낮은 사람들에게 향해 있는 시인의 시선이 이제는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서 육지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또 배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서 더 많은 인류의 아픔을 끌어 앉는 폭 넓은 사랑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기대감을 낳게 하는 시집이다.

 

 

 

한신대대학원 제 1히 문학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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