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너지는 가정의 울타리, 천륜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책무
정숙영 [칼럼니스트]
최근 뉴스를 장식하는 기사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다 못해 참담해진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해하는 존속살해와 패륜 범죄 소식이 간간이,
그러나 끊이지 않고 들려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안전해야 할 울타리인 가정에서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존재에게
가장 잔인한 칼날을 겨누게 되었을까.
인간 행동 과학의 대가이자 문명 비평가인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현대 사회의 위기를 진단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 바 있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기술의 지체나 경제적 빈곤이 아니다.
인간 관계의 단절과 공동체성의 붕괴야말로
사회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그의 말처럼, 패륜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 존엄성의 상실’과 ‘지독한 고립’에 있다.
과거의 가정이 정서적 유대감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었다면
현대의 가정은 극심한 무한 경쟁과 경제적 스트레스가 그대로 투영되는 압력밥솥이 되었다.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가족마저도 감정적·경제적 도구로 전락했고,
소통이 단절된 방 한칸에서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키우다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하는 것이다.
소중할수록 아껴야 하는 ‘사랑의 역설’,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 주기도 가장 쉽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기대치의 비대칭'으로 설명한다.
"내 부모니까, 내 자식이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과도한 기대와 집착이
통제 불능의 분노로 변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리두기가 포함된 존중’이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서로의 감정적 한계를 존중해야 한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아끼는 것이다.
가정 내에서 건강한 대화법을 배우고,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익히는
정서적 훈련이 개인과 가정 차원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 내부의 비극을 한 개인의 일탈이나 '집안싸움'으로 치부하던 시대는 끝났다.
국가와 사회는 이 거대한 정신적 붕괴를 막아설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생애주기별 정서·가족 교육의 의무화
학교 교육은 입시 중심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감하고 분노를 다스리는
'인성 및 소통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또한 부모가 되기 전, 그리고 결혼을 앞둔 이들을 위한 '예비 부모 교육'과 '가족 관계 상담 프로그램'을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신건강 및 위기 가정 지원 시스템 확충
존속 범죄의 이면에는 우울증,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나 극심한 생활고가 방치된 경우가 많다.
덴마크 등 복지 선진국처럼 위기에 처한 가정을 조기에 발견하고,
정신의학적 치료와 경제적 지원을 동시에 제공하는 '지역사회 밀착형 케어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문턱 낮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 연결망의 구축
고립된 가정은 썩기 마련이다.
이웃이 서로를 돌보는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사회적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과 프로그램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명과 성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 역시 거저 주어지는 본능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기술'이자 '책임'이다.
천륜이 무너지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비극적인 뉴스를 보며 한순간 혀를 차고 돌아서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멍든 가정의 손을 잡아주고,
단절된 마음을 이어주는 거대한 '치유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때다.
그것이 더 이상의 비극을 막고 인간다운 사회를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정숙영 KALN 한국예술문학신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