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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린 시집 <데칼코마니> 대표시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2.12.08|조회수51 목록 댓글 2

메모리아트

 

 

  몸을 통과한 풍경은 기억이 된다 그 때 그 숲은 시간에 새겨진 타투, 오래토록 간직한 푸른 책의 배경이다 숲을 에워싼 시간은 더디 흐르고 고요했으나 멀지 않은 곳에서 쇠톱질 소리가 들리곤 했다 틈만 나면 나는 반딧불이를 따라 숲의 가장자리를 옮겨 다녔다 새들은 빛을 떨구며 알지 못하는 먼 시간에 닿게 해주었다 민들레 엉겅퀴 버들강아지는 돌보지 않아도 끈질기게 피었다 지고를 반복하며 커져가는 공허를 메꾸어 주었다

 

  기억과 망각을 저장하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숲, 어느 날 주변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은 그 숲을 기록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녹지 않는 거대한 덩어리 숲, 꿈꾸며 사라진 시간을 재생하는 액자 속 기울어진 달이 튼실한 나뭇가지 하나 붙들고 있다

 

 

 

 

나무

-선택적 함묵증

 

 

 

꿈속에서 가끔

언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빨갛게 익은 사과 한 알

그 햇살을 기억한다

 

언어가 언어를 덮고

까마득히

발음조차 잊었을 땐

사과 꽃 하얀

그 향기를 기억한다

 

꿈속에서조차

기억나지 않는 언어

사과와 햇살과 향기와의

그 아득한 연관어

 

너의 언어는 언제나

그곳에 멈춰 있지

 

동산에서 빨갛게 사과가 익어가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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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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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유정 작성시간 22.12.08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린 작성시간 22.12.0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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