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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정 시집 <뱀파이어의 봄> 대표시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2.12.09|조회수43 목록 댓글 0

뱀파이어의 봄

 

 

 

  우중충한 참나무 숲이 순간 일렁인다

  검은 망토를 들추는 바람

  보굿이 꿈틀거린다

  짓무른 땅에서 누군가 주검을 밀고 깨어난다

 

  까칠하던 나뭇가지가 반지레해졌다 화살나무 허리춤에 푸른 촉이 장전되었

다 물 오른 꽃봉오리들이 치마를 뒤집어쓰고 숨죽이고 있다

 

  봄은 뱀파이어처럼 온다

  저 산벚나무 피가 낭자하다

 

  Let me in*

  불면으로 누렇게 튼 산수유 입술에서

  노란 탄성이 터져 나온다

 

  나의 사랑은 늙지 않아요

  꽃나무 아래 나의 목덜미가 창백하다

 

 

 

*뱀파이어 영화 제목

 

 

 

 

 

 

오래된 끝에서

 

 

 

 

  흘러넘치듯 능소화가 담벼락에 매달려 있다

 

  열매는 꽃에 매달리고 꽃은 줄기에 매달리고 줄기는 뿌리에 매달린다 뿌리는 지구에 매달려 있고 지구는 우주에 매달려있다 매달린 것을 잊고 매달려 있다

 

  산다는 것이 매달리는 것일까 저 여자의 가슴에 젖이 매달리고 등에 아이가 매달리고 팔에 장바구니가 매달리고 장바구니는 시장에 매달리고 저 여자는 집에 매달려있다

 

  손가락은 카톡에 매달려 있고 수많은 당신에 매달려 있다 당신은 씨줄과 날줄, 그물에 매달려 있다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오래된 슬픔이 묻어난다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핏방울이 맺혀있다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굴욕의 기미가 있다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솟구치다’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다 그 끝에 거꾸로 솟은 종유석이 자란다

 

  매달리는 것은 추락을 견디는 것 오래 바람을 견디는 것 길게 휘어지는 촉수를 말아 안고 잎사귀 뒤 나뭇가지 끝에서 잠을 청한다

 

 

 

 

 

 

 

우남정 : 충남서천 출생,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16회 김포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구겨진 것은 공간을 품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저녁이 오고 있다》- 2020년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뱀파이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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