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엄세원 시집 『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 대표시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4.03.27|조회수45 목록 댓글 0

아라가야 낙타

 

 

 

 

나는 뼈와 살과 생각조차 다 사그라진 낙타다

토기라는 이름이 덧붙여졌다

 

새 몸통에 네발짐승의 머리  우는 듯 웃는 듯 벌어진 입은

영락없는 사막의 족속으로 태어났다

 

낙타를 처음 본 아라가야 도공의 눈은 반짝 빛났을 거다

오래전 대양을 건너온 그 기척이

꿈틀거리는 소소리바람이

못 가본 사막, 꿈속에서 터벅터벅 걷던 그의 손끝이

묘한 떨림으로 가락가락 이끌렸을

 

어느 날 도공은

고운 흙과 바람을 몇 날 며칠 빚어 나의 몸통을 만들고

바람에서 건져낸 갈기를 넣었다

속눈썹을 빗살무늬로 긁어 모래바람 대비하고

눈동자 생생하게 새겨 넣으니

먼 곳은 가까워지고 상상은 부풀었겠지

 

이국의 계절 속에서 이국을 업은 나는

아라가야 한 모서리에서 전설로 태어났다가

, 안개와 모래의 강을 건너려 할 때 순장되었다

 

한때 나무덧널무덤을 껴안고 끝까지 사막의 길 품었으니

내가 나를 건너간,

어쩌면 부장품이 아니라 무덤의 주인이었던 것

 

곁을 내어주고도 어둠 속에서 지상을 염원한, 발골

흙에서 다시 시작되는 몸의 결정체

동서로 교류하던 걸음 위에 다시 선다

 

몸속의 힘을 모두 비워내고

긴 기다림이 먹먹하도록 베일 벗는 중이다

쌍봉낙타로 거듭나는 중이다

 

 

 

 

공갈못 출사出寫

 

 

 

 

연잎 사이에서 줄기가 솟아오르더니

꽃이 봉곳하게 들뜨고 있다

그 옛날 연잎 따던 아낙의 것이었을까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많이야 보면 탈 난단다 조그만치만 보고 가소*

삼각대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렌즈들

 

입잎의 포즈, 셔터 위 검지가 움찔한다

가릴 것이 더 이상 없다는 듯

이제 막 피어난 연꽃이 터질 듯 부푼다

 

수양버들이 해금처럼 가지를 늘어뜨리면

활시위가 4음보 1행을 켜갈 때

바람을 가르며 되받아 읊는 눈빛들

 

연못 왼쪽에 늘어선 카메라들 파동을 감지한다

순간 포착을 위해 어안렌즈를 켠다

 

이쪽저쪽에서 찰칵찰칵 찰칵찰칵

셔터음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한 잎씩 벗겨지는 꽃 속의 수줍은 연밥

 

뿌리에서 전승된 천오백 년 전 가야의 아낙이  

누드를 취하고 있다고,

햇무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멈추지 않는다

 

 

* 상주 함창 연밥 따는 노래.

 

 

 

이름 엄세원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사)한국소비자연합 문화예술부 시문회 사임당문학상

홍성군 문화ㆍ관광 디카시 공모전 대상

제2회 강원시니어 문학상 대상

시집 『숨, 들고나는 내력』 『우린, 어디에서 핼리 혜성을 볼까』

2021 춘천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 수혜

2022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 선정

2023 강원문화재단 나래예술지원 수혜

2024 대구신문 신춘 디카시 공모대전 우수상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