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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언제든지 그 이후이므로/ 조진태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4.03.29|조회수36 목록 댓글 0

그날은 언제든지 그 이후이므로

 

 

 

 

누군가는 잠을 이루기 위해 동굴의 시간을 허둥거리고

누군가는 피로 쓰인 타인의 시간을 제 것으로 떠들어대고

그리고 누군가는

살아있음의 밝은 날의 회색빛 정수리를 힘겹게 쪼아 먹기도 한다

 

날마다 애써 외면하는 이 일, 대체로 입을 가진 자는 말이 없다

 

가라앉은 자의 지워진 입술에 귀를 대고 조아린 밤이 지나

동트는 아침의 기지개가 자분자분 하루를 시작하고

잘 씻긴 젓가락 한 짝과 숟가락 가지런한 흰 쌀밥과 된장국 한 그릇

고스란히 땀에 젖은 하루의 신발을 댓돌에 올려놓고

아무 일없는 저녁의 밤을 혼곤하게 누워서 바라보는 나날들

부음 없는 자들의 말없음으로 떠도는 인간이라는 사건의 진상들

그러나 가라앉은 자들의 이름은 어떻게 호명될까

 

날마다 대면하는 이야기들,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자는 호사스럽다

 

운명일까, 수치를 모르는 자들의 영웅담을 곰곰이 들어야 하다니

다른 모두는 관객이거나 들러리이거나 치장의 도구

게걸스러운 입담에 묻어나는 탐욕의 부스러기들

잠시의 세상 밖에 처참하게 문드러졌던 날들은 불멸의 훈장 같은 것

모두는 아무도 아니거나 자기만의 모두

가라앉을 줄 모르는 저 불어터진 입술이여 꽉 막힌 귓구멍이여

피의 명예도 공치사의 탐욕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들이여 그럼에도 지나온 시대의 한 기둥이여

 

나날이 새로워야 할 그날 이후,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돌아올 수 없는 곳에 내팽개쳐진 말하지 않는 자들의 입을 열어야 하거니와

아우성 속에서 청색의 물음이 미동하는 아침과 저녁이 있으므로

듣는 땀과 말할 수 없음을 말하는 노동의 끈질김이 있을 것이므로

모두의 그날은 이후의 나날로 살아있을 것이므로

 

다만, 이 선택이 지겨움과 분노가 아니라

일말의 설렘과 희망이라는 선택의 나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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