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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소 시집 <불타는 행성이 달려온다> 대표시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4.04.05|조회수29 목록 댓글 0

불타는 행성이 달려온다 

 

 

 

 

  안과병원 수술대에서 레이저 불빛을 바라본다

  불타는 행성이 달려온다 세 개의 행성이 덮쳐오고 있다

  내 유년 시절의 회전목마를 불태우고 내 청년 시절 독서실을 불태우며 내 전생애를 달리던 도로의 가로수들을 불태우는 동안

  의사는 수정체를 빼고 인공수정체를 삽입한다

  아, 사라진 내 눈의 고유성

 

  만약에 관절마저 인공관절로 대체한다면

  심장마저 인공심장으로 대체한다면

  항문마저 인공항문으로 대체한다면

  나는 안드로이드가 되는 것일까

 

  아직도 보이는 세계에 대한 미련이 강해

  백내장 수술실에 누워 있지만

  언제쯤 눈을 감고서도

  보이지 않은 세계를 볼 수 있을까

 

  눈은 있지만 정신맹이 있듯이

  보이는 세계에 집착하고 살아온 생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얼마나 광활한지 알 수 없지만

 

  태양은 어둠 속으로 아침을 끌고 다시 떠오르고

  사과나무밭 사과알 속으로

  헷빛이 둥글게 익어가는 계절도 모르고

  우리는 그늘진 곳만 찾아다녔지만

 

  진흙에 침을 개어서 눈에 바른 후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고 눈 뜬 사람도 있어

  보이지 않은 세계를 통찰할 수 있도록

  보이는 세계를 열어주심에 감사히 여길 일이다

 

  7년 동안 땅 속에서 유충으로 보낸

  매미의 전생이 보이지 않듯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르고

 

  햇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별

  지금 나는 새로운 공간계로 진입을 하고 있다

  여기 있음과 거기 있음의 사이에서

  불타는 행성에 실려

 

 

 

 

 

 

(zoom)으로 달려가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은 흔한 사랑이라는 듯

역병으로 인해 대면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절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도 몸에서 발산하는 빛으로

심해 수천 미터까지 달리는 향유고래처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지

 

바람 한 점도 불지 않는

햇빛 한 가닥도 들지 않는

지하실 잠긴 문 앞에서

MRI처럼

CT처럼

수술한 관절을 PET로 검사 확인하듯

너의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흰머리오목눈이 눈망울처럼

시시각각 움직이는 현존재를

(zoom)으로 확인할 것이다

 

사람의 심장엔 우주를 횡단하는

고압의 파장이 흐르는 것

안녕!

너의 표정을 확인하고

너의 음색을 식별하며

 

스마트폰을 주시하면서

감정을 다운받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사랑법인 것을

어찌 하랴

 

거리두기는 억누르는 용수철처럼 심장을 더 두근가리게 해!

피는 어둠 속에서도 별의 또렷한 음성을 듣는다

 

은폐된 진실은 보이는 사실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

세상이 우리를

더 혹독하게 갈라놓을지라도

우리의 사랑은 전파를 타고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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