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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 담론 외1편/ 조필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4.04.05|조회수48 목록 댓글 0

사우나 담론

 

 

 

앉은 자세로 갈비뼈를 만진다 폐기된 물방울이 자르르 뼈마디 사이를 흐르다 하강하자 불현듯 시어가 스쳐가며 굴곡진 피부에 마사지를 한다 사우나를 하다 시가 생각나다니 시인은 별종이라 생각하며 얼굴을 비벼댄다 진부한 노폐물을 빨아내자 싱그런 제목이 떠오른다. '사우나의 밥맛'

 

기발한 착상에 달달한 밥알을 꿀꺽꿀꺽 들이마시고 뱃가죽을 다리에 붙여본다 등에 느껴지는 김 화백의 물방울 이제야 이런 작품을 기억하다니 나이가 들어 세상을 제대로 본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물방울의 흔들림을 음미한다 질퍽하게 스며드는 물방울 사이로 타인의 냄새가 코를 쥐어짜고 남의 시를 읽지 않던 버르장머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들어 문장하나를 흥건하게 갈긴다

'사우나는 배가 고프다'

 

진정성 있는 호소를 담고 모래시계를 뒤집어 흘린 물의 양을 비교하며 힐끗힐끗 곁눈질하자 연신 눈을 비벼대며 쳐다보는 건너편 사내의 눈에 글자가 보인다 '달걀' 허기진 뇌 속에 각인된 직설화법 어느 시인의 '시여, 직설하자'가 스쳐간다 '사우나에 오면 콜럼버스 달걀이 생각나고 배고픈 내장을 만족시킬 풍요의 계란을 흡입한다' 이런, 은유나 비유로 돌려 말하지 말고 제발 직설하자 이러면 얼마나 리얼한가! ' 겁나 배고프다 달걀 먹자'

 

모래시계가 어지러울 쯤 일어나 들여다본 바닥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하다 마음에 울어나는 심상을 허심탄회하게 쏟아 부은 덕택인지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무심천을 향해 제 길을 가는 게 보인다 억지로 쥐어짜댄 기형적 시를 읽으며 쥐 내리던 때의 감각의 무세포를 생각하며 사우나를 나서자 예상치 못한 시어의 울림이 귀를 붙잡는다 '사우나는 찰지다'

 

 

 

노교수의 착란

 

 

노교수의 머릿속에 암각화가 있다 파피루스에 고해성사를 기록하고 상형문자의 심미안에 상상을 버무리더니 기하학의 점성술에 붓 끝을 담그며 죽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심령사 머릿속은 온통 그리다 만 군상들의 이름으로 번잡하고 입에 문 펜 끝에선 주술이 흘러나온다 즐비한 퍼즐 꾸러미 풀었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굳어진 의식에 뜨거운 물을 끼얹고 돌아서 가슴 치더니 스핑크스를 회상하고 이스터섬의 문자를 풀기 위한 노교수의 가슴은 차갑다 휘갈긴 화선지에 독선적 빛깔을 뿌려대며 5행 시조의 결구를 드러내놓고 읊조리는 노교수의 머릿속이 하얗다 채우고 비우기를 생리현상처럼 반복하며 펜촉 끝자락을 뭉개더니 무명씨에게 편지를 쓴다 시구로 가득 찬 편지를 읽고 할 말을 잃은 채 지나온 행적을 살피다 직인을 허락하고 노교수의 얼굴을 쳐다본다 마주친 벽에 붙은 이름들이 제각기 몸매를 뽐내며 얼굴을 들이대자 노교수 입가에 올리브 향내가 묻어 나온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머릿속 풍차 시대적 흐름을 거역 한 채 던져둔 바람은 문풍지를 뚫고 의뢰인 방문을 두드리고 되돌아 나온 회오리바람은 세뇌하기 바쁘다 무릎 꿇고 찬양하는 의뢰인은 순응하듯 제자리를 맴돈다 반역을 허용하지 않는 노교수의 커지는 머릿속 용량 조각칼을 마주한 바위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직 노교수의 머릿속엔 찾지 못한 암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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