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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의 여인처럼 나는 분해된다/ 박수원 시인

작성자박수원|작성시간24.05.02|조회수55 목록 댓글 0

                    <  아비뇽의 여인처럼 나는 분해된다  >

                                                                                  박수원

 

 

   1)

   오월의 담장은 장미빛 시대

   페인트를 막 뿌려놓은 빨강과 초록의 울림, 위대한 장미빛 시대다

   만약 세월을 건너서

   피카소의 장미빛 시대에 나도 살았더라면

   겉으론 저 분홍, 빨강장미처럼 향기를 뿜어내며

   가시라도 뾰족뾰족 품으면서 여린 듯 칠칠히 살아가는 광대일지도

   한참을 담장 곁에서 내 생애 마지막 피우는 꽃처럼

   섣불리 진단할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건 

   다시는 피우지 못할 내 치열함이 없어서였다

   징검다릴 건너서야 아비뇽의 여인처럼

   분해된 모습을 그릴 걸 뻔히 알면서도

 

   2)

   우리 시유의 레고, 정원의 집은

   꽃, 나무, 풀, 바람의 냄새들에 킁킁대는 미끄럼틀, 시소까지 방대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그 레고에서

   어느 날은,

   꽃이 마차가 됐다가 거만한 주인이 마부가 됐다가

   어느 날은,

   집을 바닥에 눕히고 꽃을 눕히고 나무를 눕히고 그건 바람의 횡포라고 했다

   어느 날은,

   아예 완전히 해체해 순수를 잃었다가 순수를 찾아서

   가히, 피카소를 모르는 아이에서 피카소로 옮아가는 중

 

   시유의 정원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난 시소에 올라 엉덩방아를 찧어볼 때다

   찬란한 장미빛 시대에 맞서 아비뇽의 여인처럼 분해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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