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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 건축일지 외 1편/ 이중동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4.05.08|조회수30 목록 댓글 0

통증의 건축일지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계곡 물소리는 메말랐는지 들리지 않는다

후투티가 우관羽冠을 세우고 요란스러운 걸 보면

오래 살던 집이 쓰러졌나 보다

 

쓰러진 거목들이 비탈로 끌려가고

비명을 실은 트럭의 엔진소리가

천년 동굴 같은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목수의 대패질 소리에 잠시 눈을 감으니

절간이 멀지 않은지 목탁 소리도 들린다

 

석공의 망치 소리에 계단이 올라가고

붉게 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잘 다듬어진 기둥들이 주춧돌 위에 세워진다

목수와 석공의 연장 다루는 소리로 보아

이 집은 큰 기와집이 될 것이다

 

끌 치는 소리가 전두엽 근처에서 울린다

이마에 구멍이라도 나면 잘 지어진 집도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스라한 머리끝으로 들보가 올라가고

갈비뼈 닮은 서까래와 주심포도 조심스레 얹는다

마지막으로 맞배지붕에 기와를 올리니

중추신경을 오르내리던 통증이 조금 가벼워진다

 

부비동에 새벽이 오자 후투티도 집을 지으러 가고

달팽이관 저 너머에서 달팽이가 기어나와

처마 깊숙이 태양 하나 걸어 놓고 간다

 

 

 

월간 웹진 Nim20242월호.

 

 

 

보헤미안을 기다리는 저녁

 

 

 

오랑주리 카페에는 목이 긴 여인이 있어요

목을 빼든 오렌지나무 유리 천장을 기웃거리고

화목난로 불길이 천상으로 가는 길을 묻고 있어요

발밑 비단잉어는 물길에서만 자유로워요

 

의자에 기대앉아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 여인

기울어진 목을 거울 속에 늘어뜨리고 있어요

치렁한 스카프는 앞산 등성이에 집어 던지고

얼어붙은 호숫물은 검은 모자로 깨트리고 있어요

기러기는 식은 커피잔을 물고 어둠 속으로 날아가고요

 

신발을 벗어 던진 여인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요

맨발로는 유리 천장을 오를 수 없는데요

기울어진 목을 빳빳이 세우면 산등성을 넘을 수 있어요

턱을 괸 검지를 내리면 호수를 건널 수 있는데요

 

파리 자선병원*으로 가는 증기기관차를 타야 해요

누드 그림처럼 누운 그를 찾아가야 하는데요

화통처럼 헐떡이는 폐를 두 손으로 틀어막고

천국으로 가는 불길을 꺼야 하는데요

 

오지 않는 보헤미안을 기다려요

오렌지나무는 늘어지고 화목난로 허옇게 주저앉아요

비단잉어는 물길에서만 떠돌아요

 

오랑주리 카페에는 틀에 갇힌 여인이 있어요

가로막힌 천장을 바라보는 푸른 눈이 우묵해요

목 빠지게 기다리는 그녀의 시간이 길어요

 

 

* 모딜리아니가 사망한 병원

 

 

 

월간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공시사의 시선 202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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