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나는 나의 시간을 모른다
걸핏하면 마음은 먼 하늘가 구름 위를 거닐었다
거기 있다고 생각했던 그대 안의 극지에서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
기억 밖에서 찬란하게
아침 창가에 부서지는 햇살이 무슨 색으로 빛나는지
가끔 그 시간이 나에게 왜 푸르게 찾아오는지
시간은 안개로 떠돌다
어느새 들판에 서서 들어 보면
한겨울 저수지 물밑 속 꽝꽝한 얼음장을 지나가고 있으며
그리하여 망각의 주변을 떠도는 자에게
시간은 푸르다, 희다
온몸에 푸른 멍이 들도록 겨우내 뒤척이던 슬픈 짐승
검푸른 대해를 꿈꾸던 지느러미가 지나간 흔적이다
나는 나를 모르고
시간은 시간을 모른다
며칠째 식탁 위에 놓인 소주병에 푸른곰팡이가 핀다
저녁이면 서녘으로 나는 길, 왜 나에게 흰빛으로 보이는지
아무도 마루에 등불을 내다 걸지 않는 밤이 언제 끝나려는지
오색의 별빛을 파종하던 계절을 돌아 광야로부터
백 년이 흐르는 동안
아직도 씩씩하게 걷는 걸음
세상 밖으로 이미 출발하였으나
여기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영원의 부음
먼 하늘 아래 구름을 지나는
이제 나는 빈 들의 맨발이다
달의 지문
1.
달빛이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물가에
파문이 인다
눈먼 물고기가 나뭇잎을 물고 간다
누군가 수색(水色)처럼 차가운 주검 한 장을 들여다본다
2.
한때 이 나뭇잎에도 싱싱한 시절이 있었으리라
바람이 불어오면
아름답고 푸른 이파리들
어린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일 때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이었으랴
하루에도 십만 번이나 흔들리던 이파리에는
단 일 초도 멈추지 않은 생명의 흐름이 있었고
저 혼자서
하루에도 십만 번씩 뛰던 심장에는
단 일 초도 멈추지 않은 사랑의 역사가 있었다
3.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란
심장을 시간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심장으로 느끼는 일이다
4.
하루살이는 수천 개의 알을 낳고
일생에 단 하루의 시간을 가진다
죽기 전까지 저녁을 가지지 못하는 심장은
달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5.
검시관은 사망 시간을 달포 전
달 뜨는 저녁으로 추정하였다
시간을 심장으로 측정하는 새로운 수사법 덕분이었다
그러나 달의 지문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