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원시/김정식/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관점에서 읽기

작성자김정식|작성시간26.06.17|조회수18 목록 댓글 0

[시와 철학]
「원시」
— 하이데거적 관점에서

김정식의 「원시」는 노년의 신체적 쇠약을 말하는 시처럼 보이지만, 존재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마감하고 어떻게 계속 이어갈 것인가를 묻는 존재론적 성찰의 시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통해 읽으면 이 작품은 '존재와 시간'의 긴장을 일상의 언어인 쉼표와 마침표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첫 연의

나이가 들수록
쉼표와 마침표 구분이 어렵군

은 단순한 문장부호의 혼란이 아니다. 하이데거에게 인간(Dasein)은 언제나 자신의 끝을 향해 살아가는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이다. 그러나 그 끝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인간은 매 순간 끝과 지속 사이를 살아간다. 시의 '쉼표'는 아직 계속되는 존재이고, '마침표'는 삶의 종결이다. 노년은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며, 존재는 그 경계에서 흔들린다.
이어지는

몸살이 들어
조퇴해야 할지
수업해야 할지

에서는 육체의 피로보다 존재의 책임이 먼저 드러난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방식이다. 몸은 쉬라고 하지만 존재는 여전히 수업을 선택하려 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처럼 인간이 자신의 역할과 세계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려는 모습이다.
다음 부분,

내일의 수업을 위해
교재를 보며
쉼표를 찍어야 할지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에서는 삶의 시간이 문법으로 바뀐다. 쉼표는 내일을 전제하지만, 마침표는 내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계획과 죽음의 가능성이 한 문장 안에서 공존한다. 하이데거는 미래가 단순히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존재를 규정하는 가능성이라고 보았다. 이 시 역시 '내일'을 준비하면서도 동시에 끝을 의식하는 존재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더욱 깊어진다.

인생 시 한 편 쓰고
종지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쉼표를 찍어야 할지

여기서 인생은 하나의 시가 된다. 시인은 자신의 생애를 문학적 작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마지막을 결정하는 권한은 자신에게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끝을 의식하는 순간 더욱 충만해진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본래적 존재의 모습이다.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자신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때 삶은 비로소 진정성을 획득한다.
마지막의 반전은 인상적이다.

멀리서 보니,
그놈들
쇠똥구리처럼 손잡고 굴러가는
일란성 진행형이군.

앞에서 쉼표와 마침표를 고민하던 화자는 멀리 떨어져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쉼표도 마침표도 결국 하나의 거대한 진행 속에서 함께 굴러간다. 쇠똥구리는 자신의 삶을 끝없이 굴려 나간다. 쉼도 끝도 결국 생명의 운동 안에서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일란성 진행형'이라는 독창적인 표현은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근원에서 나온 쌍둥이임을 암시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한다. 이 시 역시 문장부호라는 가장 일상적인 기호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시간을 사유한다. 특히 쉼표와 마침표를 생애의 은유로 전환한 발상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철학적 깊이를 지닌다. 마지막의 쇠똥구리는 삶을 무겁게만 보지 않는다. 끝과 이어짐은 대립하지 않고 함께 굴러가는 동일한 운동이라는 깨달음으로 시를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다.
총평
「원시」는 노년의 육체를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에서 문장부호 하나를 고르는 인간 존재의 시간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 읽을 때 이 시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가 오히려 오늘의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담아낸다. 작은 쉼표 하나와 마침표 하나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게 만드는 점에서, 일상어를 철학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존재론적 서정시라 평가할 수 있다.

*김정식 시인의 시집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190722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