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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깎으며/김정식 /레비나스의 윤리학으로 읽기

작성자김정식|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0

[시와 철학]
「손톱을 깎으며」를 레비나스의 윤리학으로 읽기

레비나스는 철학의 출발점을 '존재'가 아니라 '타자'에게 두었다. 그는 타자를 이해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의지보다, 타자의 고유한 다름 앞에서 책임을 느끼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손톱을 깎으며」는 일상의 사소한 경험을 통해 타자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손톱을 깎다가 뜻하지 않게 살을 파고들어 상처를 낸다.

"또각또각
손톱깎이로
모난 손톱을
반듯하게 깎다가
살을 파고 들어가
상처를 주었다"

손톱을 깎는 행위는 본래 정돈과 배려를 위한 행동이다. 그러나 '반듯하게' 만들려는 지나친 개입은 오히려 상처를 만든다. 이 장면은 인간관계에서도 선의가 언제든 폭력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후반부에서 화자는 이 경험을 타인과의 관계로 확장한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가
모난 손톱을 반듯하게
깎아 주진 않았는가?"

여기서 '모난 손톱'은 타인의 결점만이 아니라 개성, 상처, 삶의 방식, 고유한 존재성을 상징한다. 화자는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삶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 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레비나스는 타자는 결코 나의 이해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타자를 나와 같은 기준으로 해석하고 교정하려는 태도는 타자의 고유성을 지우는 '동일화(totalization)'의 폭력이다. 화자가 반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무의식적인 폭력이다.
특히 시에서 반복되는 '파고 들어가'라는 표현은 레비나스의 윤리와 깊게 맞닿아 있다. 손톱깎이가 살을 파고들면 상처가 생기듯, 인간 역시 타인의 내면에 과도하게 개입할 때 그의 존재를 훼손할 수 있다. 레비나스가 말한 '얼굴(face)'은 타자가 나에게 드러나는 방식이며, 동시에 "너는 죽이지 말라"는 윤리적 명령이다. 여기서 '죽임'은 육체적 살해만이 아니라 타자를 내 생각 속으로 환원하고 지배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화자는 자신의 충고와 판단, 간섭이 혹시 타자의 얼굴을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조용히 성찰한다.
이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마지막이 질문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깎아 주진 않았는가?"

레비나스에게 윤리적 주체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자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책임을 묻는 사람이다. 화자는 타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행위를 먼저 심문한다. 이러한 자기 질문은 죄책감의 표현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무한책임(infinite responsibility)의 시작이다.

「손톱을 깎으며」는 손톱을 깎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쉽게 드러나는 '선의의 폭력'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으로 읽으면 이 시는 타자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반성하고, 타자의 다름과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윤리적 각성을 보여준다.
'모난 손톱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이 반드시 사랑은 아니다. 때로는 그 모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곁에 머무는 일이 더 깊은 사랑이며 더 근원적인 윤리이다. 「손톱을 깎으며」는 타자를 내 기준으로 고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타자의 다름 앞에서 겸허하게 책임을 묻는 태도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레비나스의 윤리학과 깊이 공명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정식 시인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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