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학매거진 포엠포엠 봄호 등단작품/ 김수예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2.05.20|조회수105 목록 댓글 0

바다와 밀대

 

 

 

바람이 물 위를 얼마나 달려왔는지 밀대는 안다

 

해변에서 밀대를 짚고 걸음을 옮기는 여자와

하품을 삼키며 뒤따르는 젊은 여자를 발코니에서 내려다본다

 

지팡이가 나서고

뒤처진 한 팔과 한 다리가 치맛자락 붙들고

처얼썩, 따라 붙는다

 

거품을 물고 여자가 일생 벼리어 온 것들

 

물걸레로 바닥을 민다

먼지가 습한 무게를 업고 선명해져서 줄줄이 밀려다닌다

 

무릎 꿇지 못해 서서 하는 걸레질

여자는 끝내 바닥에서 손을 떼지 못한 것

 

밀대가 찍히고 따라 나서는 발자국

남은 길을 지워 간다

 

파도의 등을 두드려

모래흙을 게워내는 바다

 

파도는 파도의 길을 밀고 온다

어미와 아이가 늙은 한 몸에 살고 있다

 

어미가 된 아이가

아이가 된 어미를 밀고 간다

 

 

 

터널

 

 

 

장의차가 빠져나가고 있다

나를 지나쳐

이 세상에서 달아나고 있다

 

한 죽음이 빠져나갈 때마다

터널은 부풀었다 쭈그러든다

 

터널 속을 걷는 나도 터널이다

 

이 남자도 터널을 빠져나와

연립주택 복도를

너덜너덜 걸어왔을 것이다

 

두 팔이 작업복을 빠져나간 뒤

남자는 추리닝에 다리를 갈아 끼우고 있다

 

통과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터널이 되는 것

 

나를 지나간 터널을 길 끝에 누인다

당신, 괜찮아?

 

터널의 턱이 빠졌다가

서서히 다물어지고 있다

 

 

 

 

 

황사

 

 

 

속살 꽉 채운 배꽃망울

벌의 날갯짓에 파들거린다

 

오르막에서 숨이 거칠어지고 있다

황달이 찾아온 낮은 하늘을 끌어다 덮고

비탈길에 복수가 차오르고 있다

 

기도원에서 나와 사내는 술을 찾았다

통증을 게우다 삼키다

독주에서 곡주로 바꾸어 마시며 부연 하늘을 달랬다

어린 딸을 졸라 술 받으러 보내던 길

 

주전자에 막걸리가 차오르듯

노오랗게 부풀어 오르던 낮달

 

면회 시각은 아직 멀고

중환자실 앞에서 의사 나오라며

난동을 부리던 인근이 삼촌

주전자는 부끄럼도 모르고 찰랑거렸다

 

면포가 얼굴에 덮이고

낙과는 밭을 구른다

꼭지에서 떨어진 배꽃망울 즙을 내며 밟힌다

솎아낸 열매는 더디 썪는데

 

머리맡 철골 그물

회청빛 하늘을 조각 낸다

 

단칸방에서 꽃망울이 부화하고 있다

 

 

 

 

 

 

기차의 배꼽

 

 

 

기차가 달린다

발밑은 차여 공중을 잠깐 들어 올린다

 

눈앞에 한 선을 누이고

마주 보는 침목의 거리

 

선로는 나란하다

 

씨를 나눈 속살처럼

신이 똑같이 나누어준 반쪽

 

밀월의 탯줄을 자르고

배꼽 떨어져 가랑이 사이로 구른다

 

철로 끝을 뻥, 차 올려

바지에 볼을 문대며 늙은 달이 떠오르고

 

기차는 달린다 대기를 격파하며

다가서는 만큼 물러나는 너를

 

쫓아 왔는지 얼마나 나는 쫓겨 왔는지

기적을 복기하며 기차가 달린다

 

가지런히 콧김을 뿜는

선의 마음을 연장하여

 

윙크하듯 소실점을 찍고

엇갈리어 지나간다

 

무게에 밀려 길이를 따라

달리는 기차는 평행이 감당한다

 

바람을 밀매하던 개망초

소맷부리에 콧등을 비빈다

 

 

 

 

목발을 짚은 사나이

 

 

 

원의 중심이다

그는 좀더 뾰족해져야 한다

 

무른 심으로 원둘레를 그려 가장을 시도하지만

멈춰서 있는 것이 최선의 진격임을 알게 된다

 

매일 아침 볼트를 조인다

수와 숫자 사이에 걸치고 서서

피를 보지 않을 만큼 가랑이를 찢는다

 

처음과 끝이란 없다

보폭을 줄여가며 자기 중심에 꿰뚫린다

점점 더 깊이 박혀 파동이 되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껌을 씹으며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는다

 

온몸이 이빨자국 투성이다

동심원의 중심에서 깃발을 든 사람들과 산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늘 원만함을 추구하나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채 계단을 앞에 두고 낙오된다

모기떼가 극성이다

 

몸이 헐거워지면 뿌리를 들어 올려

산허리 어디쯤 침을 박고 돌아나가야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손바닥을 펼치는 가지는

서로 다른 원의 한쪽 팔뚝이다

 

울타리를 벗어나는 날다람쥐 바라보며

그는 뭉툭해지고 있다

 

 

 

 

 

 

 

 

2020 문학매거진 포엠포엠 봄호 등단 (바다와 밀대 외 4편)

2021 전주문화재단 미디어북 선정 발간

현 전북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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