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의 배후
사막을 옮기는 바람을 보았다
자고 나면 사막의 등뼈가 휘어 있었다
사막 긴 등뼈의 굴곡이 움직인다
수족이 없는 사막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알 것 같았다
생명의 알집 하나만 오염되어도 전체가 고비인 내 몸과 다르게
고비사막은
바람 외 어떤 생명도 키우지 않는다
생명이 가장 위험한 고비라는 것을 깨우친 후일 것이다
생명은 위험하고 성가시고 손이 많이 가는 성질을 가졌다
사막의 유일한 성분은 모래뿐
고비사막은 그것조차도 성가셔서 바람을 부려
먼지의 먹이로 줘 버린다
나는 이곳에서
그렇게나 궁금했던 내 후생의 거처를 확인한다
고비사막이 자신의 영토에서 모든 생명을 제거한 후
생명 이전의 것들만 배치한 덕분이다
생명이 되기 이전의 것들
생명이 될 필요가 없었던 것들
생명에서 급히 빠져나온 흔적도 없었다
생명은 중심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허비하는데
내가 확인한 고비사막은 자신에게 중심을 두지 않았고
아주 작은 중심이 생기는 순간
바람이 와서 금세 지워버렸다
2021년 『시와반시』 겨울호 발표작
수상소감
모든 것이 의미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어디서 휴식할 것인가
언제 침을 뱉을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은 의미가 있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순식간이어서 그것이 의미라는 것을 인식
하기도 전에 의미는 가치없는 것으로 분해되고 만다
다만 어떤 느낌만이 남아서 생을 이어가게 한다
이 느낌 역시 의미없는 것이지만
다행히 이 느낌은 계산할 수 없고 더 작은 것으로 분해되지도 않는다
계산할 수 없는 느낌의 세계
시는 이 느낌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때로 시를 쓰다보면 어떤 느낌만 있을 뿐 의미나 질서는 사라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일은 태풍의 중심에 들어가는 일
중력도 없는 그 고요 속에서만 비로소 사랑은 탄생할 수 있다
태풍의 씨앗으로 남아 있는 사랑
누가 그 씨앗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여 어떠한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불가능한 사랑만이 사랑을 대체하고 있다
사랑과 비슷한 것을 사랑이라 느끼며 우리는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 느낌이 당신과 나를 참혹하게 할 것을 알면서도 자진해서 속아야 한다
부족한 글을 예쁘게 봐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김대호
경북 김천 출생
2012년 『시산맥』 등단
2019년 천강문학상 수상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현재 김천에서 시남커피집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