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시산맥시문학상 수상작 이령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2.05.26|조회수194 목록 댓글 0

사사로운 별

 

 

  꿈에서 깨자 나의 공의는 가까스로 정의로웠다 테이블 아래 아베크족의 엉킨 다리를 이해하고 애인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존중하기까지 반백이 지났다 마냥 선한 것이 미덕임을 주입하던 부모의 혈통을 거부하자 통장의 잔고가 늘었다 대체로 진영의 문제는 정의와 따로 놀았다 빨강과 파랑이 섞이면 보라색으로 고상해졌지만 내 눈엔 멍 같았다 사람들은 색을 잃어가면서 익어가는 거라고 우겼다

 

  칸트의 도덕과 밴담의 공리 사이에서 머리로 시소를 타던 시절이 있었지만 허기는 여전했다 바로크풍의 마차를 탄 공주를 조소하며 샤넬의 로고를 수집했고 여성을 강조하자 천공의 성이 무너졌다 운명은 신의 영역이고 인간을 거부하자 신은 빛의 속도로 컴퓨터 자판에서 부활했다 불면증으로 밤마다 깊은 새벽을 밝히며 정의는 어둠과 한통속이라 쓴다

 

  옆집 채식주의자의 개가 거세를 당하자 온순해진 건 아파트였고 사람들은 평화를 가장했다 놀랍게도 불면증은 옆집 개가 죽고 나서 완치됐다 아파트 소장의 잦은 훈화가 사라지자 으르렁거리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채도로 착해지고 목줄로 길들이면서 개를 사랑한다고 우기던 옆집 채식주의자는 점차 사나워졌다 피를 뚝뚝 흘리며 풀을 뜯고 있는 개의 싱싱한 혓바닥이 쓰윽 이마를 훑고 가자 난 꿈에서 깼다

 

  간혹 정의를 부정하자 정의가 생겨났다

 

  꿈속의 꿈처럼 모호한 생은 어디까지 견뎌야 할 불면증인가 시뮬레이션 같은 지구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당신들과 난 또 어느 지점의 불면증인가 저울과 칼을 들고 서 있는 꿈, 생이 영원하다면 잔인하다는 선인의 치명이 별로 뜨고 서슴지 않는 밤의 질문들이 빼곡하게 빛나는 밤, 아스트리아의 가려진 눈을 오래 생각하는 나는 정의를 섣불리 정의하지 않는 사사로운 별이 되겠다

 

 

2021년 『현대시학』 5-6월호에 게재

 

 

 

수상소감

 

 

  외적 관감의 모든 현상에 있어 시공간은 경험을 가능케 한다. 지혜의 한 축인 경험이 미천한 내게 있어 선험적 이상성, 한정된 경험의 실재성의 표출인 시는 삶의 다양한 가능성이자 최상의 풍부함이었다.

 

 

  영속과 애욕의 한 지점에서 시공간을 상회하는 울림과 위로이며 결국엔 사랑일 수밖에 없는 대상이 바로 시구나! 느꼈을 때, 시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인이다 인식하는 순간 이미 시인하지 못했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목왕(木旺)의 계절, 봄 지나 여름의 초입 산천초목 우주만물이 기력의 섭생을 꿈꾸며 울울창창 위엄을 더하는 계절이다. 꽃이 피기까지 지난해의 혹독한 비바람을 이겨내고 낙엽은 새로 핀 초록의 거름이 되었으니 어쩌면 꽃 피는 지금은 모조리 지난날의 덕이 아닐까 싶다.

 

 

  지식과 경험과 좌절이 빚어내는 지혜가 두루두루 부족한 나는 매우 어설프다. 일면 채워나가야 할 여지가 많음이 어쩌면 더 큰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일 테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살아간다는 것은 변함없이 기꺼운 도전일 것이다.

 

 

  부족함이 나의 특기이기에 빛이 되어 손잡아 주는 이들이 많다.

빛은 빚의 후광임을 안다. 어둠이 밝음의 배후인 것처럼.

 

 

  모든 인연의 빛이 가장 든든한 내 생의 배경임을 알기에 묵묵히 시인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늘 지금 바로 지금이라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나의 모든 인연들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 전한다.

 

 

 

 

이령 약력

 

■ 경북 경주 출생, 동국대 법정대학원 상사법 전공 석사학위 받음

■ 웹진시인광장 부주간, 계간 『시와사람』 편집위원, 젊은 시동인 Volume 고문,

(사)동리목월기념사업회 부회장, 경북여성체육회 인권상담위원,

경북균형발전위원회 사무국장

■ 2013년 계간 『시를사랑하는사람들』 신인문학상

■ 저서

1. 2018년 『시인하다』 시산맥 기획시선공모당선(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 선정)

2. 2020년 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편 -경상북도 경주시 후원, 한국문화관광콘텐츠협의회 기획발간

3. 2020년 울진대왕소나무발화법-경상북도 지원 사업 스토리텔링 집필

4. 2020년 3인 공동저서 『Beautiful in Gyeongju2020-문두루비법을 찾아서』

   경북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 창작활동 지원사업선정

5. 2014년 한중시인합동시집 『망각을거부하며』 발간, 중국 강소성 작가협회 초청 한국대표참가

■ 제10회 경주문학상 수상, 제2회 시산맥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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