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캐나다거위 이야기
-거위 나홀로가 승리하기까지-
우리가 사는 에센 시는 2차대전이 한창일 때 독일에서는 가장 큰 철광회사 쿠룹 재단 본부가 있고 대형무기를 생산해내는 큰 공장과 광대한 공장부지 안에 이곳저곳 수많은 공장이 산재해 있었다. 전쟁 말엽 연합군이 들어와서 이 에센 시를 집중적으로 폭격해 에센 시 70%가 잿더미로 변했었다. 시일이 지나며 에센의 모든 시가는 복귀되었지만 알텐도르프 지역의 넓은 공장부지는 오랜 세월 폐허로 남아있다가 약 15여 년 전에 시에서 그곳에 큰 자연공원을 만들고 무기를 운반하던 폐쇄된 철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전거 길과 산책길로 변경하였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고 난 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그 공원을 향해 산책길에 나선다. 가랑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고 산책하고 겨울엔 눈길을 다니기도 하는데 하얀 눈이 덮인 공원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에 달한다.
집에서 대략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먼저 니어펠드 호수가 있다. 에센에서 후진 지역에 속했던 알텐도르프에 쿠룹 공원이 생기고 큰 인공호수가 두 개나 형성되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라서 매주 2회씩 자진 동원으로 모여 그 지대를 깨끗이 청소해서 어디를 가도 종잇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어느 한 남성은 매일 작은 집게를 가지고 그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을 볼 수 있다.
니어펠드 호수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가면 쿠룹공원이 나오고 거기에 큰 호수가 있고 공원 안에는 높직한 동산들도 여기저기 있어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평지만 걷는 것보다는 몸을 단련하기에도 아주 좋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다 보면 자그마한 거위 한 마리가 벌써 며칠 전부터 쿠룹공원 호숫가 잔디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거위는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날갯죽지 아래 넣고 조는 듯이 앉아있거나 한 발로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위는 대부분 한 쌍이나 아니면 한 가족 단위로 함께 모여 집단으로 거동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저 거위는 저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혹시 눈이 안 보이나? 아니면 날개가 상해 날지를 못하나? 아니면 무슨 심한 병이 들어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홀로 있는 건 아닐까?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보며 매일 그곳을 지나칠 때면 저러다 저 거위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으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거위는 더욱 야위어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잘게 썬 빵 조각을 가지고 가서 그 거위 앞에 던져주면 겨우 몇 조각을 먹는 사이 많은 비둘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빵을 가져다 그 거위 앞에 던져주고 때론 비둘기들을 쫓아 버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일이 지나서 그 거위가 걸어서 잔디 위에 어정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거위를 나홀로 거위라고 했다.
하루는 그가 처음으로 호수 물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수 주일 동안 잔디 위에만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 거였다. 우리는 일부러 빵 조각을 나홀로 앞에 던져주고 비둘기들을 위해 잔디 위에도 던져주었다. 잔디 위에만 던져주면 행동 빠른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나홀로 차지가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홀로는 물 위의 빵 조각 한두 개를 건져 먹다가 바로 잔디밭으로 나와서 거기 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둘기들이 잽싸게 다 주워 먹어버리니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서 물 위의 빵조각을 건져 먹었다. 나홀로는 홀로 살아남는 방편을 나름대로 터득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연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상식은 잘 알지만 나홀로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노파심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그는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온다.
매일 먹이를 주다 보면 물 위에서 놀던 다른 거위들도 잔디밭으로 올 때가 있다. 거위는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큰 거위가 항상 앞장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온 그 거위는 빨리 빵 조각을 주워 먹어도 몇 조각 얻어먹을까 말까 한데 뭍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그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쫓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거위들이 그곳으로 와도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그 거위들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그사이에 비둘기들이 빵 조각을 다 주워 먹어버리고 그 거위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 그 거위는 자기 가족을 위해 다른 새를 쫓아주는 모양이었다. 동물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 나홀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척 야위고 털이 부슬부슬하고 병색이 완연해서 정말 가엽게 보였는데 지금은 털도 매끄럽고 살도 올라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홉 새끼 거위 가족이 나타나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이제 갓 부화했음 직한 새끼 아홉 마리를 거느린 거위 한 쌍이 나타났다. 그 거위는 아마 호숫가 물가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새끼들을 부화한 모양이었다. 앞장서서 헤엄쳐가는 엄마 거위 뒤를 이어 너무 귀여운 새끼 아홉 마리가 뒤따라 헤엄치고 맨 끝에 아빠 거위가 헤엄쳐 다녔다. 정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하루는 나홀로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어 살펴보니, 그 거위 가족 뒤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줄곧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홀로는 이제껏 너무 외롭고 고독했던 거다.
이곳 쿠룹공원 호수에 다른 거위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상당히 많은 거위가 몰려와서 헤엄치고 또 잔디 위에서 어정거리고 논다. 그러나 나홀로 거위는 늘 혼자였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캐나다거위는 색깔이 다른 두 부류가 있다. 한 종류는 짙은 회색 거위인데 검은 목에 흰 턱받이와 흰 꼬리 깃털을 지니고 날개와 몸통엔 온통 회색 무늬 깃털을 가진 회색 거위가 보편적으로 대다수고 가끔은 덩치가 훨씬 작은 밤색 거위들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거위는 밤색 거위다. 이 색깔이 다른 거위들은 절대 서로 어울리는 법이 없다. 가끔 외로운 나홀로가 회색 거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덩치 큰 거위가 어김없이 목을 길게 늘어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멀리 쫓아낸다. 그러니 나홀로는 이제껏 늘 외로운 거위였다. 그런데 그 새끼 거위 가족이 밤색 거위들이다. 너무 외로웠던 나홀로는 종류가 같은 거위를 보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렇지만 어린 새끼를 거느린 그 거위 가족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몇 미터 뒤에서 헤엄쳐 다녔다.
이날부터 우리는 빵을 더 잘게 많이 썰어 가지고 가서 나홀로와 그 새끼 거위 가족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침 산책 중에 한 일과가 되었다. 나홀로와 우리는 이제 제법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호수 저쪽 끝에서 헤엄치다가 우리가 이쪽 호숫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알아보고 앞장서서 헤엄쳐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거위 가족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몇 주가 흐르는 중 새끼 거위들의 깃털도 밤색으로 짙어 가고 제법 애송이 거위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서 먼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고 공원 제일 높은 동산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호숫가 야외공연장 돌계단에 앉아 휴식한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호수에 거위들과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물닭은 먹이를 건지러 쉴 사이 없이 물속을 들락날락한다. 가끔은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물고 나와 꿀꺽 삼키고 뭍으로 올라와 큰 검은 날개를 쫙 펼치고 날개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날짐승들이 생동하는 모습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한 다음 천천히 집을 향해 돌아선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고 나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수의 총성이 울리던 날
그날도 우리가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고막을 째는 듯한 총성이 연달아 몇 방 터졌다. 놀라서 급히 호숫가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포수가 거위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았는데 거위 다섯 마리가 총탄에 맞아 호수에 둥둥 떠 있는데 그중엔 밤색 거위도 한 마리 보였다. 그 거위가 나홀로가 아니면 새끼 거위의 엄마 아빠 중 한 마리일 것이 뻔했다. 호수에 뜬 거위들을 사냥개 두 마리가 물로 들어가서 물고 나온다.
나는 포수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올해는 새끼 거위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이른 시기에 사냥을 나올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벌써 8월에 사냥 허가가 나왔는데 일부러 늦게 나왔다고 하면서 사냥개가 건져온 거위들을 배낭에 담아 떠났다.
나는 나홀로와 거위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거위들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도 없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이곳 중부 독일에는 캐나다거위가 무척 번성하여 호수마다 너무 많은 거위가 집단으로 모여들어 자연 서식하는 들오리들에게 피해가 되고 아무 데나 똥을 싸 놓아 환경미화를 방해한다고 겨울철이면 거위사냥을 허가해준다. 이 쿠룹 호수에도 작년까지는 11월로 들어서면 사냥을 하러 왔는데 올해는 겨울도 아니고 새끼 거위들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가을에 벌써 포수가 사냥을 나온 거다. 나는 이렇게 일찍 거위사냥에 나선 포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홀로와 거위 가족의 걱정으로 애탔지만,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동산으로 향해가는데 아! 동산 꼭대기에 한 밤색 거위가 깍깍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고 서 있고 동산 아래쪽에서 밤색 거위 한 마리가 꼭대기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듯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 거위가 나홀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홀로는 날지를 못하는 거위였나 보다. 아마 날개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위가 날아올라 가면 될 것인데 저리 바쁘게 뛰다시피 달려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홀로는 호수에서 나와 그곳 근처 숲속에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가 있었을 텐데 날지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달려와 동산 위의 거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짝을 잃고 목놓아 우는 거위를 홀로 둘 수 없었나 보다.
동산 한 바퀴를 돌아 쉼터로 가니 놀랍게도 그 호수 한 귀퉁이에 거위 새끼들과 큰 거위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도 거위들은 먹이를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 놀란 쇼크로 사람들을 피하는 건지 아니면 나홀로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포수가 왔을 때 새끼 거위들은 호숫가 우거진 수풀 속에 몸을 피했던 모양이다.
나홀로가 거위 가족 파수꾼이 되다
다음날 호수는 너무 고요했다. 비둘기들도 다른 거위들도 오리들도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마리가 없다. 새들은 아마 서로 말이 통하나 싶다. 이곳이 위험지대라는 소문이 확 퍼진 모양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한 번 포수가 다녀가고 나면 수 주일 동안 간혹 오리 한두 쌍이 찾아와 헤엄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거위는 한 마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니어펠드 호수에는 회색 거위들이 수없이 많이 논다. 그곳은 인가와 근접한 호수라서 사냥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동산으로 가서 정상을 한 바퀴 돌고 쉼터로 오니 나홀로가 반갑게 다가오고 그 뒤로 거위 가족이 다가왔다. 아마 그들은 야외관람장 아래 숨어있었던 것 같다. 나홀로는 목 아래 흰 부분에 유난히 큰 짙은 밤색 반점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나홀로는 그 거위 가족 일원으로 합류하여 늘 같이 다녔다. 캐나다거위는 사는 동안 자기 짝과 절개를 지킨다고 하던데, 아마 그 엄마 거위가 자기 짝이 총에 맞아 죽고 나니 나홀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홀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거위 가족은 호수 한복판으로는 가지 않고 야외관람장 뒤 한적한 한쪽 귀퉁이에서 헤엄쳐 다녔다. 거위 가족이 거기서 놀면 그때부터 나홀로는 야외공연장 물가에 세워 둔 큰 쓰레기통 위에 서서 언제나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보는 파수꾼 노릇을 했다. 가족 단위로 거동하는 거위는 가장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가족의 안전을 위해 파수꾼 노릇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나홀로는 거위 가족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빵조각을 가지고 가서 던져주면 나홀로는 거기서 내려오지도 않고 우리더러 빵을 자기 앞에 놓아 달라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촉했다. 그러면 남편은 빵을 그 앞에 놓아주고 또 손으로 빵을 주면 손에서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는 나홀로가 어떻게 그 높은 쓰레기통 위로 날아올라 갔는지 의문이었다. 아마 그는 이제 날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일이 지나고 새끼 거위들은 다 성숙해서 호수 위를 나는 연습을 했다.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훨훨 날아다니면 나홀로도 그 뒤를 따라 날았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먹이 주는 일을 접었다. 우리가 돌계단에 앉아 쉬면 나홀로가 거위 가족과 함께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목을 끄덕이며 먹이를 달라고 했지만 매정하게 외면했다. 이렇게 며칠을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그곳에 가도 그 거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호수로 가서 보니 나홀로와 그 거위 가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홀로가 이젠 혼자가 아니고 거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다 이기고 승리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젖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그 거위들이 다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 거위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거위 나홀로가 승리하기까지-
우리가 사는 에센 시는 2차대전이 한창일 때 독일에서는 가장 큰 철광회사 쿠룹 재단 본부가 있고 대형무기를 생산해내는 큰 공장과 광대한 공장부지 안에 이곳저곳 수많은 공장이 산재해 있었다. 전쟁 말엽 연합군이 들어와서 이 에센 시를 집중적으로 폭격해 에센 시 70%가 잿더미로 변했었다. 시일이 지나며 에센의 모든 시가는 복귀되었지만 알텐도르프 지역의 넓은 공장부지는 오랜 세월 폐허로 남아있다가 약 15여 년 전에 시에서 그곳에 큰 자연공원을 만들고 무기를 운반하던 폐쇄된 철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전거 길과 산책길로 변경하였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고 난 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그 공원을 향해 산책길에 나선다. 가랑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고 산책하고 겨울엔 눈길을 다니기도 하는데 하얀 눈이 덮인 공원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에 달한다.
집에서 대략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먼저 니어펠드 호수가 있다. 에센에서 후진 지역에 속했던 알텐도르프에 쿠룹 공원이 생기고 큰 인공호수가 두 개나 형성되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라서 매주 2회씩 자진 동원으로 모여 그 지대를 깨끗이 청소해서 어디를 가도 종잇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어느 한 남성은 매일 작은 집게를 가지고 그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을 볼 수 있다.
니어펠드 호수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가면 쿠룹공원이 나오고 거기에 큰 호수가 있고 공원 안에는 높직한 동산들도 여기저기 있어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평지만 걷는 것보다는 몸을 단련하기에도 아주 좋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다 보면 자그마한 거위 한 마리가 벌써 며칠 전부터 쿠룹공원 호숫가 잔디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거위는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날갯죽지 아래 넣고 조는 듯이 앉아있거나 한 발로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위는 대부분 한 쌍이나 아니면 한 가족 단위로 함께 모여 집단으로 거동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저 거위는 저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혹시 눈이 안 보이나? 아니면 날개가 상해 날지를 못하나? 아니면 무슨 심한 병이 들어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홀로 있는 건 아닐까?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보며 매일 그곳을 지나칠 때면 저러다 저 거위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으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거위는 더욱 야위어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잘게 썬 빵 조각을 가지고 가서 그 거위 앞에 던져주면 겨우 몇 조각을 먹는 사이 많은 비둘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빵을 가져다 그 거위 앞에 던져주고 때론 비둘기들을 쫓아 버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일이 지나서 그 거위가 걸어서 잔디 위에 어정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거위를 나홀로 거위라고 했다.
하루는 그가 처음으로 호수 물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수 주일 동안 잔디 위에만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 거였다. 우리는 일부러 빵 조각을 나홀로 앞에 던져주고 비둘기들을 위해 잔디 위에도 던져주었다. 잔디 위에만 던져주면 행동 빠른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나홀로 차지가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홀로는 물 위의 빵 조각 한두 개를 건져 먹다가 바로 잔디밭으로 나와서 거기 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둘기들이 잽싸게 다 주워 먹어버리니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서 물 위의 빵조각을 건져 먹었다. 나홀로는 홀로 살아남는 방편을 나름대로 터득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연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상식은 잘 알지만 나홀로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노파심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그는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온다.
매일 먹이를 주다 보면 물 위에서 놀던 다른 거위들도 잔디밭으로 올 때가 있다. 거위는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큰 거위가 항상 앞장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온 그 거위는 빨리 빵 조각을 주워 먹어도 몇 조각 얻어먹을까 말까 한데 뭍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그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쫓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거위들이 그곳으로 와도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그 거위들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그사이에 비둘기들이 빵 조각을 다 주워 먹어버리고 그 거위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 그 거위는 자기 가족을 위해 다른 새를 쫓아주는 모양이었다. 동물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 나홀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척 야위고 털이 부슬부슬하고 병색이 완연해서 정말 가엽게 보였는데 지금은 털도 매끄럽고 살도 올라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홉 새끼 거위 가족이 나타나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이제 갓 부화했음 직한 새끼 아홉 마리를 거느린 거위 한 쌍이 나타났다. 그 거위는 아마 호숫가 물가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새끼들을 부화한 모양이었다. 앞장서서 헤엄쳐가는 엄마 거위 뒤를 이어 너무 귀여운 새끼 아홉 마리가 뒤따라 헤엄치고 맨 끝에 아빠 거위가 헤엄쳐 다녔다. 정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하루는 나홀로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어 살펴보니, 그 거위 가족 뒤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줄곧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홀로는 이제껏 너무 외롭고 고독했던 거다.
이곳 쿠룹공원 호수에 다른 거위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상당히 많은 거위가 몰려와서 헤엄치고 또 잔디 위에서 어정거리고 논다. 그러나 나홀로 거위는 늘 혼자였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캐나다거위는 색깔이 다른 두 부류가 있다. 한 종류는 짙은 회색 거위인데 검은 목에 흰 턱받이와 흰 꼬리 깃털을 지니고 날개와 몸통엔 온통 회색 무늬 깃털을 가진 회색 거위가 보편적으로 대다수고 가끔은 덩치가 훨씬 작은 밤색 거위들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거위는 밤색 거위다. 이 색깔이 다른 거위들은 절대 서로 어울리는 법이 없다. 가끔 외로운 나홀로가 회색 거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덩치 큰 거위가 어김없이 목을 길게 늘어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멀리 쫓아낸다. 그러니 나홀로는 이제껏 늘 외로운 거위였다. 그런데 그 새끼 거위 가족이 밤색 거위들이다. 너무 외로웠던 나홀로는 종류가 같은 거위를 보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렇지만 어린 새끼를 거느린 그 거위 가족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몇 미터 뒤에서 헤엄쳐 다녔다.
이날부터 우리는 빵을 더 잘게 많이 썰어 가지고 가서 나홀로와 그 새끼 거위 가족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침 산책 중에 한 일과가 되었다. 나홀로와 우리는 이제 제법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호수 저쪽 끝에서 헤엄치다가 우리가 이쪽 호숫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알아보고 앞장서서 헤엄쳐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거위 가족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몇 주가 흐르는 중 새끼 거위들의 깃털도 밤색으로 짙어 가고 제법 애송이 거위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서 먼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고 공원 제일 높은 동산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호숫가 야외공연장 돌계단에 앉아 휴식한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호수에 거위들과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물닭은 먹이를 건지러 쉴 사이 없이 물속을 들락날락한다. 가끔은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물고 나와 꿀꺽 삼키고 뭍으로 올라와 큰 검은 날개를 쫙 펼치고 날개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날짐승들이 생동하는 모습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한 다음 천천히 집을 향해 돌아선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고 나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수의 총성이 울리던 날
그날도 우리가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고막을 째는 듯한 총성이 연달아 몇 방 터졌다. 놀라서 급히 호숫가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포수가 거위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았는데 거위 다섯 마리가 총탄에 맞아 호수에 둥둥 떠 있는데 그중엔 밤색 거위도 한 마리 보였다. 그 거위가 나홀로가 아니면 새끼 거위의 엄마 아빠 중 한 마리일 것이 뻔했다. 호수에 뜬 거위들을 사냥개 두 마리가 물로 들어가서 물고 나온다.
나는 포수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올해는 새끼 거위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이른 시기에 사냥을 나올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벌써 8월에 사냥 허가가 나왔는데 일부러 늦게 나왔다고 하면서 사냥개가 건져온 거위들을 배낭에 담아 떠났다.
나는 나홀로와 거위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거위들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도 없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이곳 중부 독일에는 캐나다거위가 무척 번성하여 호수마다 너무 많은 거위가 집단으로 모여들어 자연 서식하는 들오리들에게 피해가 되고 아무 데나 똥을 싸 놓아 환경미화를 방해한다고 겨울철이면 거위사냥을 허가해준다. 이 쿠룹 호수에도 작년까지는 11월로 들어서면 사냥을 하러 왔는데 올해는 겨울도 아니고 새끼 거위들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가을에 벌써 포수가 사냥을 나온 거다. 나는 이렇게 일찍 거위사냥에 나선 포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홀로와 거위 가족의 걱정으로 애탔지만,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동산으로 향해가는데 아! 동산 꼭대기에 한 밤색 거위가 깍깍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고 서 있고 동산 아래쪽에서 밤색 거위 한 마리가 꼭대기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듯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 거위가 나홀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홀로는 날지를 못하는 거위였나 보다. 아마 날개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위가 날아올라 가면 될 것인데 저리 바쁘게 뛰다시피 달려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홀로는 호수에서 나와 그곳 근처 숲속에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가 있었을 텐데 날지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달려와 동산 위의 거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짝을 잃고 목놓아 우는 거위를 홀로 둘 수 없었나 보다.
동산 한 바퀴를 돌아 쉼터로 가니 놀랍게도 그 호수 한 귀퉁이에 거위 새끼들과 큰 거위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도 거위들은 먹이를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 놀란 쇼크로 사람들을 피하는 건지 아니면 나홀로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포수가 왔을 때 새끼 거위들은 호숫가 우거진 수풀 속에 몸을 피했던 모양이다.
나홀로가 거위 가족 파수꾼이 되다
다음날 호수는 너무 고요했다. 비둘기들도 다른 거위들도 오리들도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마리가 없다. 새들은 아마 서로 말이 통하나 싶다. 이곳이 위험지대라는 소문이 확 퍼진 모양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한 번 포수가 다녀가고 나면 수 주일 동안 간혹 오리 한두 쌍이 찾아와 헤엄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거위는 한 마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니어펠드 호수에는 회색 거위들이 수없이 많이 논다. 그곳은 인가와 근접한 호수라서 사냥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동산으로 가서 정상을 한 바퀴 돌고 쉼터로 오니 나홀로가 반갑게 다가오고 그 뒤로 거위 가족이 다가왔다. 아마 그들은 야외관람장 아래 숨어있었던 것 같다. 나홀로는 목 아래 흰 부분에 유난히 큰 짙은 밤색 반점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나홀로는 그 거위 가족 일원으로 합류하여 늘 같이 다녔다. 캐나다거위는 사는 동안 자기 짝과 절개를 지킨다고 하던데, 아마 그 엄마 거위가 자기 짝이 총에 맞아 죽고 나니 나홀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홀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거위 가족은 호수 한복판으로는 가지 않고 야외관람장 뒤 한적한 한쪽 귀퉁이에서 헤엄쳐 다녔다. 거위 가족이 거기서 놀면 그때부터 나홀로는 야외공연장 물가에 세워 둔 큰 쓰레기통 위에 서서 언제나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보는 파수꾼 노릇을 했다. 가족 단위로 거동하는 거위는 가장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가족의 안전을 위해 파수꾼 노릇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나홀로는 거위 가족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빵조각을 가지고 가서 던져주면 나홀로는 거기서 내려오지도 않고 우리더러 빵을 자기 앞에 놓아 달라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촉했다. 그러면 남편은 빵을 그 앞에 놓아주고 또 손으로 빵을 주면 손에서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는 나홀로가 어떻게 그 높은 쓰레기통 위로 날아올라 갔는지 의문이었다. 아마 그는 이제 날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일이 지나고 새끼 거위들은 다 성숙해서 호수 위를 나는 연습을 했다.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훨훨 날아다니면 나홀로도 그 뒤를 따라 날았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먹이 주는 일을 접었다. 우리가 돌계단에 앉아 쉬면 나홀로가 거위 가족과 함께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목을 끄덕이며 먹이를 달라고 했지만 매정하게 외면했다. 이렇게 며칠을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그곳에 가도 그 거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호수로 가서 보니 나홀로와 그 거위 가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홀로가 이젠 혼자가 아니고 거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다 이기고 승리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젖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그 거위들이 다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 거위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에센 시는 2차대전이 한창일 때 독일에서는 가장 큰 철광회사 쿠룹 재단 본부가 있고 대형무기를 생산해내는 큰 공장과 광대한 공장부지 안에 이곳저곳 수많은 공장이 산재해 있었다. 전쟁 말엽 연합군이 들어와서 이 에센 시를 집중적으로 폭격해 에센 시 70%가 잿더미로 변했었다. 시일이 지나며 에센의 모든 시가는 복귀되었지만 알텐도르프 지역의 넓은 공장부지는 오랜 세월 폐허로 남아있다가 약 15여 년 전에 시에서 그곳에 큰 자연공원을 만들고 무기를 운반하던 폐쇄된 철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전거 길과 산책길로 변경하였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고 난 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그 공원을 향해 산책길에 나선다. 가랑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고 산책하고 겨울엔 눈길을 다니기도 하는데 하얀 눈이 덮인 공원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에 달한다.
집에서 대략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먼저 니어펠드 호수가 있다. 에센에서 후진 지역에 속했던 알텐도르프에 쿠룹 공원이 생기고 큰 인공호수가 두 개나 형성되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라서 매주 2회씩 자진 동원으로 모여 그 지대를 깨끗이 청소해서 어디를 가도 종잇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어느 한 남성은 매일 작은 집게를 가지고 그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을 볼 수 있다.
니어펠드 호수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가면 쿠룹공원이 나오고 거기에 큰 호수가 있고 공원 안에는 높직한 동산들도 여기저기 있어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평지만 걷는 것보다는 몸을 단련하기에도 아주 좋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다 보면 자그마한 거위 한 마리가 벌써 며칠 전부터 쿠룹공원 호숫가 잔디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거위는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날갯죽지 아래 넣고 조는 듯이 앉아있거나 한 발로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위는 대부분 한 쌍이나 아니면 한 가족 단위로 함께 모여 집단으로 거동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저 거위는 저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혹시 눈이 안 보이나? 아니면 날개가 상해 날지를 못하나? 아니면 무슨 심한 병이 들어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홀로 있는 건 아닐까?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보며 매일 그곳을 지나칠 때면 저러다 저 거위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으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거위는 더욱 야위어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잘게 썬 빵 조각을 가지고 가서 그 거위 앞에 던져주면 겨우 몇 조각을 먹는 사이 많은 비둘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빵을 가져다 그 거위 앞에 던져주고 때론 비둘기들을 쫓아 버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일이 지나서 그 거위가 걸어서 잔디 위에 어정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거위를 나홀로 거위라고 했다.
하루는 그가 처음으로 호수 물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수 주일 동안 잔디 위에만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 거였다. 우리는 일부러 빵 조각을 나홀로 앞에 던져주고 비둘기들을 위해 잔디 위에도 던져주었다. 잔디 위에만 던져주면 행동 빠른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나홀로 차지가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홀로는 물 위의 빵 조각 한두 개를 건져 먹다가 바로 잔디밭으로 나와서 거기 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둘기들이 잽싸게 다 주워 먹어버리니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서 물 위의 빵조각을 건져 먹었다. 나홀로는 홀로 살아남는 방편을 나름대로 터득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연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상식은 잘 알지만 나홀로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노파심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그는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온다.
매일 먹이를 주다 보면 물 위에서 놀던 다른 거위들도 잔디밭으로 올 때가 있다. 거위는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큰 거위가 항상 앞장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온 그 거위는 빨리 빵 조각을 주워 먹어도 몇 조각 얻어먹을까 말까 한데 뭍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그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쫓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거위들이 그곳으로 와도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그 거위들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그사이에 비둘기들이 빵 조각을 다 주워 먹어버리고 그 거위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 그 거위는 자기 가족을 위해 다른 새를 쫓아주는 모양이었다. 동물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 나홀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척 야위고 털이 부슬부슬하고 병색이 완연해서 정말 가엽게 보였는데 지금은 털도 매끄럽고 살도 올라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홉 새끼 거위 가족이 나타나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이제 갓 부화했음 직한 새끼 아홉 마리를 거느린 거위 한 쌍이 나타났다. 그 거위는 아마 호숫가 물가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새끼들을 부화한 모양이었다. 앞장서서 헤엄쳐가는 엄마 거위 뒤를 이어 너무 귀여운 새끼 아홉 마리가 뒤따라 헤엄치고 맨 끝에 아빠 거위가 헤엄쳐 다녔다. 정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하루는 나홀로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어 살펴보니, 그 거위 가족 뒤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줄곧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홀로는 이제껏 너무 외롭고 고독했던 거다.
이곳 쿠룹공원 호수에 다른 거위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상당히 많은 거위가 몰려와서 헤엄치고 또 잔디 위에서 어정거리고 논다. 그러나 나홀로 거위는 늘 혼자였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캐나다거위는 색깔이 다른 두 부류가 있다. 한 종류는 짙은 회색 거위인데 검은 목에 흰 턱받이와 흰 꼬리 깃털을 지니고 날개와 몸통엔 온통 회색 무늬 깃털을 가진 회색 거위가 보편적으로 대다수고 가끔은 덩치가 훨씬 작은 밤색 거위들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거위는 밤색 거위다. 이 색깔이 다른 거위들은 절대 서로 어울리는 법이 없다. 가끔 외로운 나홀로가 회색 거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덩치 큰 거위가 어김없이 목을 길게 늘어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멀리 쫓아낸다. 그러니 나홀로는 이제껏 늘 외로운 거위였다. 그런데 그 새끼 거위 가족이 밤색 거위들이다. 너무 외로웠던 나홀로는 종류가 같은 거위를 보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렇지만 어린 새끼를 거느린 그 거위 가족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몇 미터 뒤에서 헤엄쳐 다녔다.
이날부터 우리는 빵을 더 잘게 많이 썰어 가지고 가서 나홀로와 그 새끼 거위 가족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침 산책 중에 한 일과가 되었다. 나홀로와 우리는 이제 제법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호수 저쪽 끝에서 헤엄치다가 우리가 이쪽 호숫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알아보고 앞장서서 헤엄쳐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거위 가족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몇 주가 흐르는 중 새끼 거위들의 깃털도 밤색으로 짙어 가고 제법 애송이 거위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서 먼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고 공원 제일 높은 동산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호숫가 야외공연장 돌계단에 앉아 휴식한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호수에 거위들과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물닭은 먹이를 건지러 쉴 사이 없이 물속을 들락날락한다. 가끔은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물고 나와 꿀꺽 삼키고 뭍으로 올라와 큰 검은 날개를 쫙 펼치고 날개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날짐승들이 생동하는 모습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한 다음 천천히 집을 향해 돌아선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고 나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수의 총성이 울리던 날
그날도 우리가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고막을 째는 듯한 총성이 연달아 몇 방 터졌다. 놀라서 급히 호숫가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포수가 거위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았는데 거위 다섯 마리가 총탄에 맞아 호수에 둥둥 떠 있는데 그중엔 밤색 거위도 한 마리 보였다. 그 거위가 나홀로가 아니면 새끼 거위의 엄마 아빠 중 한 마리일 것이 뻔했다. 호수에 뜬 거위들을 사냥개 두 마리가 물로 들어가서 물고 나온다.
나는 포수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올해는 새끼 거위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이른 시기에 사냥을 나올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벌써 8월에 사냥 허가가 나왔는데 일부러 늦게 나왔다고 하면서 사냥개가 건져온 거위들을 배낭에 담아 떠났다.
나는 나홀로와 거위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거위들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도 없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이곳 중부 독일에는 캐나다거위가 무척 번성하여 호수마다 너무 많은 거위가 집단으로 모여들어 자연 서식하는 들오리들에게 피해가 되고 아무 데나 똥을 싸 놓아 환경미화를 방해한다고 겨울철이면 거위사냥을 허가해준다. 이 쿠룹 호수에도 작년까지는 11월로 들어서면 사냥을 하러 왔는데 올해는 겨울도 아니고 새끼 거위들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가을에 벌써 포수가 사냥을 나온 거다. 나는 이렇게 일찍 거위사냥에 나선 포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홀로와 거위 가족의 걱정으로 애탔지만,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동산으로 향해가는데 아! 동산 꼭대기에 한 밤색 거위가 깍깍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고 서 있고 동산 아래쪽에서 밤색 거위 한 마리가 꼭대기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듯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 거위가 나홀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홀로는 날지를 못하는 거위였나 보다. 아마 날개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위가 날아올라 가면 될 것인데 저리 바쁘게 뛰다시피 달려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홀로는 호수에서 나와 그곳 근처 숲속에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가 있었을 텐데 날지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달려와 동산 위의 거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짝을 잃고 목놓아 우는 거위를 홀로 둘 수 없었나 보다.
동산 한 바퀴를 돌아 쉼터로 가니 놀랍게도 그 호수 한 귀퉁이에 거위 새끼들과 큰 거위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도 거위들은 먹이를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 놀란 쇼크로 사람들을 피하는 건지 아니면 나홀로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포수가 왔을 때 새끼 거위들은 호숫가 우거진 수풀 속에 몸을 피했던 모양이다.
나홀로가 거위 가족 파수꾼이 되다
다음날 호수는 너무 고요했다. 비둘기들도 다른 거위들도 오리들도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마리가 없다. 새들은 아마 서로 말이 통하나 싶다. 이곳이 위험지대라는 소문이 확 퍼진 모양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한 번 포수가 다녀가고 나면 수 주일 동안 간혹 오리 한두 쌍이 찾아와 헤엄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거위는 한 마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니어펠드 호수에는 회색 거위들이 수없이 많이 논다. 그곳은 인가와 근접한 호수라서 사냥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동산으로 가서 정상을 한 바퀴 돌고 쉼터로 오니 나홀로가 반갑게 다가오고 그 뒤로 거위 가족이 다가왔다. 아마 그들은 야외관람장 아래 숨어있었던 것 같다. 나홀로는 목 아래 흰 부분에 유난히 큰 짙은 밤색 반점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나홀로는 그 거위 가족 일원으로 합류하여 늘 같이 다녔다. 캐나다거위는 사는 동안 자기 짝과 절개를 지킨다고 하던데, 아마 그 엄마 거위가 자기 짝이 총에 맞아 죽고 나니 나홀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홀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거위 가족은 호수 한복판으로는 가지 않고 야외관람장 뒤 한적한 한쪽 귀퉁이에서 헤엄쳐 다녔다. 거위 가족이 거기서 놀면 그때부터 나홀로는 야외공연장 물가에 세워 둔 큰 쓰레기통 위에 서서 언제나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보는 파수꾼 노릇을 했다. 가족 단위로 거동하는 거위는 가장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가족의 안전을 위해 파수꾼 노릇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나홀로는 거위 가족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빵조각을 가지고 가서 던져주면 나홀로는 거기서 내려오지도 않고 우리더러 빵을 자기 앞에 놓아 달라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촉했다. 그러면 남편은 빵을 그 앞에 놓아주고 또 손으로 빵을 주면 손에서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는 나홀로가 어떻게 그 높은 쓰레기통 위로 날아올라 갔는지 의문이었다. 아마 그는 이제 날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일이 지나고 새끼 거위들은 다 성숙해서 호수 위를 나는 연습을 했다.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훨훨 날아다니면 나홀로도 그 뒤를 따라 날았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먹이 주는 일을 접었다. 우리가 돌계단에 앉아 쉬면 나홀로가 거위 가족과 함께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목을 끄덕이며 먹이를 달라고 했지만 매정하게 외면했다. 이렇게 며칠을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그곳에 가도 그 거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호수로 가서 보니 나홀로와 그 거위 가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홀로가 이젠 혼자가 아니고 거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다 이기고 승리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젖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그 거위들이 다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 거위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에센 시는 2차대전이 한창일 때 독일에서는 가장 큰 철광회사 쿠룹 재단 본부가 있고 대형무기를 생산해내는 큰 공장과 광대한 공장부지 안에 이곳저곳 수많은 공장이 산재해 있었다. 전쟁 말엽 연합군이 들어와서 이 에센 시를 집중적으로 폭격해 에센 시 70%가 잿더미로 변했었다. 시일이 지나며 에센의 모든 시가는 복귀되었지만 알텐도르프 지역의 넓은 공장부지는 오랜 세월 폐허로 남아있다가 약 15여 년 전에 시에서 그곳에 큰 자연공원을 만들고 무기를 운반하던 폐쇄된 철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전거 길과 산책길로 변경하였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고 난 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그 공원을 향해 산책길에 나선다. 가랑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고 산책하고 겨울엔 눈길을 다니기도 하는데 하얀 눈이 덮인 공원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에 달한다.
집에서 대략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먼저 니어펠드 호수가 있다. 에센에서 후진 지역에 속했던 알텐도르프에 쿠룹 공원이 생기고 큰 인공호수가 두 개나 형성되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라서 매주 2회씩 자진 동원으로 모여 그 지대를 깨끗이 청소해서 어디를 가도 종잇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어느 한 남성은 매일 작은 집게를 가지고 그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을 볼 수 있다.
니어펠드 호수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가면 쿠룹공원이 나오고 거기에 큰 호수가 있고 공원 안에는 높직한 동산들도 여기저기 있어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평지만 걷는 것보다는 몸을 단련하기에도 아주 좋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다 보면 자그마한 거위 한 마리가 벌써 며칠 전부터 쿠룹공원 호숫가 잔디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거위는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날갯죽지 아래 넣고 조는 듯이 앉아있거나 한 발로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위는 대부분 한 쌍이나 아니면 한 가족 단위로 함께 모여 집단으로 거동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저 거위는 저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혹시 눈이 안 보이나? 아니면 날개가 상해 날지를 못하나? 아니면 무슨 심한 병이 들어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홀로 있는 건 아닐까?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보며 매일 그곳을 지나칠 때면 저러다 저 거위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으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거위는 더욱 야위어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잘게 썬 빵 조각을 가지고 가서 그 거위 앞에 던져주면 겨우 몇 조각을 먹는 사이 많은 비둘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빵을 가져다 그 거위 앞에 던져주고 때론 비둘기들을 쫓아 버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일이 지나서 그 거위가 걸어서 잔디 위에 어정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거위를 나홀로 거위라고 했다.
하루는 그가 처음으로 호수 물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수 주일 동안 잔디 위에만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 거였다. 우리는 일부러 빵 조각을 나홀로 앞에 던져주고 비둘기들을 위해 잔디 위에도 던져주었다. 잔디 위에만 던져주면 행동 빠른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나홀로 차지가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홀로는 물 위의 빵 조각 한두 개를 건져 먹다가 바로 잔디밭으로 나와서 거기 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둘기들이 잽싸게 다 주워 먹어버리니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서 물 위의 빵조각을 건져 먹었다. 나홀로는 홀로 살아남는 방편을 나름대로 터득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연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상식은 잘 알지만 나홀로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노파심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그는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온다.
매일 먹이를 주다 보면 물 위에서 놀던 다른 거위들도 잔디밭으로 올 때가 있다. 거위는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큰 거위가 항상 앞장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온 그 거위는 빨리 빵 조각을 주워 먹어도 몇 조각 얻어먹을까 말까 한데 뭍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그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쫓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거위들이 그곳으로 와도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그 거위들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그사이에 비둘기들이 빵 조각을 다 주워 먹어버리고 그 거위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 그 거위는 자기 가족을 위해 다른 새를 쫓아주는 모양이었다. 동물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 나홀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척 야위고 털이 부슬부슬하고 병색이 완연해서 정말 가엽게 보였는데 지금은 털도 매끄럽고 살도 올라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홉 새끼 거위 가족이 나타나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이제 갓 부화했음 직한 새끼 아홉 마리를 거느린 거위 한 쌍이 나타났다. 그 거위는 아마 호숫가 물가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새끼들을 부화한 모양이었다. 앞장서서 헤엄쳐가는 엄마 거위 뒤를 이어 너무 귀여운 새끼 아홉 마리가 뒤따라 헤엄치고 맨 끝에 아빠 거위가 헤엄쳐 다녔다. 정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하루는 나홀로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어 살펴보니, 그 거위 가족 뒤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줄곧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홀로는 이제껏 너무 외롭고 고독했던 거다.
이곳 쿠룹공원 호수에 다른 거위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상당히 많은 거위가 몰려와서 헤엄치고 또 잔디 위에서 어정거리고 논다. 그러나 나홀로 거위는 늘 혼자였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캐나다거위는 색깔이 다른 두 부류가 있다. 한 종류는 짙은 회색 거위인데 검은 목에 흰 턱받이와 흰 꼬리 깃털을 지니고 날개와 몸통엔 온통 회색 무늬 깃털을 가진 회색 거위가 보편적으로 대다수고 가끔은 덩치가 훨씬 작은 밤색 거위들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거위는 밤색 거위다. 이 색깔이 다른 거위들은 절대 서로 어울리는 법이 없다. 가끔 외로운 나홀로가 회색 거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덩치 큰 거위가 어김없이 목을 길게 늘어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멀리 쫓아낸다. 그러니 나홀로는 이제껏 늘 외로운 거위였다. 그런데 그 새끼 거위 가족이 밤색 거위들이다. 너무 외로웠던 나홀로는 종류가 같은 거위를 보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렇지만 어린 새끼를 거느린 그 거위 가족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몇 미터 뒤에서 헤엄쳐 다녔다.
이날부터 우리는 빵을 더 잘게 많이 썰어 가지고 가서 나홀로와 그 새끼 거위 가족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침 산책 중에 한 일과가 되었다. 나홀로와 우리는 이제 제법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호수 저쪽 끝에서 헤엄치다가 우리가 이쪽 호숫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알아보고 앞장서서 헤엄쳐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거위 가족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몇 주가 흐르는 중 새끼 거위들의 깃털도 밤색으로 짙어 가고 제법 애송이 거위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서 먼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고 공원 제일 높은 동산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호숫가 야외공연장 돌계단에 앉아 휴식한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호수에 거위들과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물닭은 먹이를 건지러 쉴 사이 없이 물속을 들락날락한다. 가끔은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물고 나와 꿀꺽 삼키고 뭍으로 올라와 큰 검은 날개를 쫙 펼치고 날개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날짐승들이 생동하는 모습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한 다음 천천히 집을 향해 돌아선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고 나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수의 총성이 울리던 날
그날도 우리가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고막을 째는 듯한 총성이 연달아 몇 방 터졌다. 놀라서 급히 호숫가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포수가 거위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았는데 거위 다섯 마리가 총탄에 맞아 호수에 둥둥 떠 있는데 그중엔 밤색 거위도 한 마리 보였다. 그 거위가 나홀로가 아니면 새끼 거위의 엄마 아빠 중 한 마리일 것이 뻔했다. 호수에 뜬 거위들을 사냥개 두 마리가 물로 들어가서 물고 나온다.
나는 포수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올해는 새끼 거위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이른 시기에 사냥을 나올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벌써 8월에 사냥 허가가 나왔는데 일부러 늦게 나왔다고 하면서 사냥개가 건져온 거위들을 배낭에 담아 떠났다.
나는 나홀로와 거위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거위들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도 없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이곳 중부 독일에는 캐나다거위가 무척 번성하여 호수마다 너무 많은 거위가 집단으로 모여들어 자연 서식하는 들오리들에게 피해가 되고 아무 데나 똥을 싸 놓아 환경미화를 방해한다고 겨울철이면 거위사냥을 허가해준다. 이 쿠룹 호수에도 작년까지는 11월로 들어서면 사냥을 하러 왔는데 올해는 겨울도 아니고 새끼 거위들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가을에 벌써 포수가 사냥을 나온 거다. 나는 이렇게 일찍 거위사냥에 나선 포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홀로와 거위 가족의 걱정으로 애탔지만,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동산으로 향해가는데 아! 동산 꼭대기에 한 밤색 거위가 깍깍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고 서 있고 동산 아래쪽에서 밤색 거위 한 마리가 꼭대기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듯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 거위가 나홀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홀로는 날지를 못하는 거위였나 보다. 아마 날개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위가 날아올라 가면 될 것인데 저리 바쁘게 뛰다시피 달려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홀로는 호수에서 나와 그곳 근처 숲속에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가 있었을 텐데 날지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달려와 동산 위의 거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짝을 잃고 목놓아 우는 거위를 홀로 둘 수 없었나 보다.
동산 한 바퀴를 돌아 쉼터로 가니 놀랍게도 그 호수 한 귀퉁이에 거위 새끼들과 큰 거위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도 거위들은 먹이를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 놀란 쇼크로 사람들을 피하는 건지 아니면 나홀로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포수가 왔을 때 새끼 거위들은 호숫가 우거진 수풀 속에 몸을 피했던 모양이다.
나홀로가 거위 가족 파수꾼이 되다
다음날 호수는 너무 고요했다. 비둘기들도 다른 거위들도 오리들도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마리가 없다. 새들은 아마 서로 말이 통하나 싶다. 이곳이 위험지대라는 소문이 확 퍼진 모양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한 번 포수가 다녀가고 나면 수 주일 동안 간혹 오리 한두 쌍이 찾아와 헤엄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거위는 한 마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니어펠드 호수에는 회색 거위들이 수없이 많이 논다. 그곳은 인가와 근접한 호수라서 사냥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동산으로 가서 정상을 한 바퀴 돌고 쉼터로 오니 나홀로가 반갑게 다가오고 그 뒤로 거위 가족이 다가왔다. 아마 그들은 야외관람장 아래 숨어있었던 것 같다. 나홀로는 목 아래 흰 부분에 유난히 큰 짙은 밤색 반점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나홀로는 그 거위 가족 일원으로 합류하여 늘 같이 다녔다. 캐나다거위는 사는 동안 자기 짝과 절개를 지킨다고 하던데, 아마 그 엄마 거위가 자기 짝이 총에 맞아 죽고 나니 나홀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홀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거위 가족은 호수 한복판으로는 가지 않고 야외관람장 뒤 한적한 한쪽 귀퉁이에서 헤엄쳐 다녔다. 거위 가족이 거기서 놀면 그때부터 나홀로는 야외공연장 물가에 세워 둔 큰 쓰레기통 위에 서서 언제나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보는 파수꾼 노릇을 했다. 가족 단위로 거동하는 거위는 가장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가족의 안전을 위해 파수꾼 노릇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나홀로는 거위 가족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빵조각을 가지고 가서 던져주면 나홀로는 거기서 내려오지도 않고 우리더러 빵을 자기 앞에 놓아 달라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촉했다. 그러면 남편은 빵을 그 앞에 놓아주고 또 손으로 빵을 주면 손에서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는 나홀로가 어떻게 그 높은 쓰레기통 위로 날아올라 갔는지 의문이었다. 아마 그는 이제 날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일이 지나고 새끼 거위들은 다 성숙해서 호수 위를 나는 연습을 했다.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훨훨 날아다니면 나홀로도 그 뒤를 따라 날았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먹이 주는 일을 접었다. 우리가 돌계단에 앉아 쉬면 나홀로가 거위 가족과 함께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목을 끄덕이며 먹이를 달라고 했지만 매정하게 외면했다. 이렇게 며칠을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그곳에 가도 그 거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호수로 가서 보니 나홀로와 그 거위 가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홀로가 이젠 혼자가 아니고 거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다 이기고 승리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젖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그 거위들이 다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 거위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고 난 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그 공원을 향해 산책길에 나선다. 가랑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고 산책하고 겨울엔 눈길을 다니기도 하는데 하얀 눈이 덮인 공원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에 달한다.
집에서 대략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먼저 니어펠드 호수가 있다. 에센에서 후진 지역에 속했던 알텐도르프에 쿠룹 공원이 생기고 큰 인공호수가 두 개나 형성되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라서 매주 2회씩 자진 동원으로 모여 그 지대를 깨끗이 청소해서 어디를 가도 종잇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어느 한 남성은 매일 작은 집게를 가지고 그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을 볼 수 있다.
니어펠드 호수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가면 쿠룹공원이 나오고 거기에 큰 호수가 있고 공원 안에는 높직한 동산들도 여기저기 있어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평지만 걷는 것보다는 몸을 단련하기에도 아주 좋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다 보면 자그마한 거위 한 마리가 벌써 며칠 전부터 쿠룹공원 호숫가 잔디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거위는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날갯죽지 아래 넣고 조는 듯이 앉아있거나 한 발로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위는 대부분 한 쌍이나 아니면 한 가족 단위로 함께 모여 집단으로 거동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저 거위는 저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혹시 눈이 안 보이나? 아니면 날개가 상해 날지를 못하나? 아니면 무슨 심한 병이 들어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홀로 있는 건 아닐까?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보며 매일 그곳을 지나칠 때면 저러다 저 거위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으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거위는 더욱 야위어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잘게 썬 빵 조각을 가지고 가서 그 거위 앞에 던져주면 겨우 몇 조각을 먹는 사이 많은 비둘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빵을 가져다 그 거위 앞에 던져주고 때론 비둘기들을 쫓아 버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일이 지나서 그 거위가 걸어서 잔디 위에 어정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거위를 나홀로 거위라고 했다.
하루는 그가 처음으로 호수 물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수 주일 동안 잔디 위에만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 거였다. 우리는 일부러 빵 조각을 나홀로 앞에 던져주고 비둘기들을 위해 잔디 위에도 던져주었다. 잔디 위에만 던져주면 행동 빠른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나홀로 차지가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홀로는 물 위의 빵 조각 한두 개를 건져 먹다가 바로 잔디밭으로 나와서 거기 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둘기들이 잽싸게 다 주워 먹어버리니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서 물 위의 빵조각을 건져 먹었다. 나홀로는 홀로 살아남는 방편을 나름대로 터득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연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상식은 잘 알지만 나홀로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노파심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그는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온다.
매일 먹이를 주다 보면 물 위에서 놀던 다른 거위들도 잔디밭으로 올 때가 있다. 거위는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큰 거위가 항상 앞장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온 그 거위는 빨리 빵 조각을 주워 먹어도 몇 조각 얻어먹을까 말까 한데 뭍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그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쫓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거위들이 그곳으로 와도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그 거위들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그사이에 비둘기들이 빵 조각을 다 주워 먹어버리고 그 거위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 그 거위는 자기 가족을 위해 다른 새를 쫓아주는 모양이었다. 동물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 나홀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척 야위고 털이 부슬부슬하고 병색이 완연해서 정말 가엽게 보였는데 지금은 털도 매끄럽고 살도 올라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홉 새끼 거위 가족이 나타나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이제 갓 부화했음 직한 새끼 아홉 마리를 거느린 거위 한 쌍이 나타났다. 그 거위는 아마 호숫가 물가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새끼들을 부화한 모양이었다. 앞장서서 헤엄쳐가는 엄마 거위 뒤를 이어 너무 귀여운 새끼 아홉 마리가 뒤따라 헤엄치고 맨 끝에 아빠 거위가 헤엄쳐 다녔다. 정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하루는 나홀로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어 살펴보니, 그 거위 가족 뒤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줄곧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홀로는 이제껏 너무 외롭고 고독했던 거다.
이곳 쿠룹공원 호수에 다른 거위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상당히 많은 거위가 몰려와서 헤엄치고 또 잔디 위에서 어정거리고 논다. 그러나 나홀로 거위는 늘 혼자였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캐나다거위는 색깔이 다른 두 부류가 있다. 한 종류는 짙은 회색 거위인데 검은 목에 흰 턱받이와 흰 꼬리 깃털을 지니고 날개와 몸통엔 온통 회색 무늬 깃털을 가진 회색 거위가 보편적으로 대다수고 가끔은 덩치가 훨씬 작은 밤색 거위들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거위는 밤색 거위다. 이 색깔이 다른 거위들은 절대 서로 어울리는 법이 없다. 가끔 외로운 나홀로가 회색 거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덩치 큰 거위가 어김없이 목을 길게 늘어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멀리 쫓아낸다. 그러니 나홀로는 이제껏 늘 외로운 거위였다. 그런데 그 새끼 거위 가족이 밤색 거위들이다. 너무 외로웠던 나홀로는 종류가 같은 거위를 보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렇지만 어린 새끼를 거느린 그 거위 가족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몇 미터 뒤에서 헤엄쳐 다녔다.
이날부터 우리는 빵을 더 잘게 많이 썰어 가지고 가서 나홀로와 그 새끼 거위 가족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침 산책 중에 한 일과가 되었다. 나홀로와 우리는 이제 제법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호수 저쪽 끝에서 헤엄치다가 우리가 이쪽 호숫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알아보고 앞장서서 헤엄쳐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거위 가족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몇 주가 흐르는 중 새끼 거위들의 깃털도 밤색으로 짙어 가고 제법 애송이 거위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서 먼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고 공원 제일 높은 동산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호숫가 야외공연장 돌계단에 앉아 휴식한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호수에 거위들과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물닭은 먹이를 건지러 쉴 사이 없이 물속을 들락날락한다. 가끔은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물고 나와 꿀꺽 삼키고 뭍으로 올라와 큰 검은 날개를 쫙 펼치고 날개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날짐승들이 생동하는 모습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한 다음 천천히 집을 향해 돌아선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고 나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수의 총성이 울리던 날
그날도 우리가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고막을 째는 듯한 총성이 연달아 몇 방 터졌다. 놀라서 급히 호숫가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포수가 거위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았는데 거위 다섯 마리가 총탄에 맞아 호수에 둥둥 떠 있는데 그중엔 밤색 거위도 한 마리 보였다. 그 거위가 나홀로가 아니면 새끼 거위의 엄마 아빠 중 한 마리일 것이 뻔했다. 호수에 뜬 거위들을 사냥개 두 마리가 물로 들어가서 물고 나온다.
나는 포수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올해는 새끼 거위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이른 시기에 사냥을 나올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벌써 8월에 사냥 허가가 나왔는데 일부러 늦게 나왔다고 하면서 사냥개가 건져온 거위들을 배낭에 담아 떠났다.
나는 나홀로와 거위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거위들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도 없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이곳 중부 독일에는 캐나다거위가 무척 번성하여 호수마다 너무 많은 거위가 집단으로 모여들어 자연 서식하는 들오리들에게 피해가 되고 아무 데나 똥을 싸 놓아 환경미화를 방해한다고 겨울철이면 거위사냥을 허가해준다. 이 쿠룹 호수에도 작년까지는 11월로 들어서면 사냥을 하러 왔는데 올해는 겨울도 아니고 새끼 거위들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가을에 벌써 포수가 사냥을 나온 거다. 나는 이렇게 일찍 거위사냥에 나선 포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홀로와 거위 가족의 걱정으로 애탔지만,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동산으로 향해가는데 아! 동산 꼭대기에 한 밤색 거위가 깍깍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고 서 있고 동산 아래쪽에서 밤색 거위 한 마리가 꼭대기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듯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 거위가 나홀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홀로는 날지를 못하는 거위였나 보다. 아마 날개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위가 날아올라 가면 될 것인데 저리 바쁘게 뛰다시피 달려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홀로는 호수에서 나와 그곳 근처 숲속에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가 있었을 텐데 날지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달려와 동산 위의 거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짝을 잃고 목놓아 우는 거위를 홀로 둘 수 없었나 보다.
동산 한 바퀴를 돌아 쉼터로 가니 놀랍게도 그 호수 한 귀퉁이에 거위 새끼들과 큰 거위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도 거위들은 먹이를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 놀란 쇼크로 사람들을 피하는 건지 아니면 나홀로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포수가 왔을 때 새끼 거위들은 호숫가 우거진 수풀 속에 몸을 피했던 모양이다.
나홀로가 거위 가족 파수꾼이 되다
다음날 호수는 너무 고요했다. 비둘기들도 다른 거위들도 오리들도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마리가 없다. 새들은 아마 서로 말이 통하나 싶다. 이곳이 위험지대라는 소문이 확 퍼진 모양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한 번 포수가 다녀가고 나면 수 주일 동안 간혹 오리 한두 쌍이 찾아와 헤엄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거위는 한 마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니어펠드 호수에는 회색 거위들이 수없이 많이 논다. 그곳은 인가와 근접한 호수라서 사냥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동산으로 가서 정상을 한 바퀴 돌고 쉼터로 오니 나홀로가 반갑게 다가오고 그 뒤로 거위 가족이 다가왔다. 아마 그들은 야외관람장 아래 숨어있었던 것 같다. 나홀로는 목 아래 흰 부분에 유난히 큰 짙은 밤색 반점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나홀로는 그 거위 가족 일원으로 합류하여 늘 같이 다녔다. 캐나다거위는 사는 동안 자기 짝과 절개를 지킨다고 하던데, 아마 그 엄마 거위가 자기 짝이 총에 맞아 죽고 나니 나홀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홀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거위 가족은 호수 한복판으로는 가지 않고 야외관람장 뒤 한적한 한쪽 귀퉁이에서 헤엄쳐 다녔다. 거위 가족이 거기서 놀면 그때부터 나홀로는 야외공연장 물가에 세워 둔 큰 쓰레기통 위에 서서 언제나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보는 파수꾼 노릇을 했다. 가족 단위로 거동하는 거위는 가장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가족의 안전을 위해 파수꾼 노릇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나홀로는 거위 가족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빵조각을 가지고 가서 던져주면 나홀로는 거기서 내려오지도 않고 우리더러 빵을 자기 앞에 놓아 달라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촉했다. 그러면 남편은 빵을 그 앞에 놓아주고 또 손으로 빵을 주면 손에서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는 나홀로가 어떻게 그 높은 쓰레기통 위로 날아올라 갔는지 의문이었다. 아마 그는 이제 날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일이 지나고 새끼 거위들은 다 성숙해서 호수 위를 나는 연습을 했다.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훨훨 날아다니면 나홀로도 그 뒤를 따라 날았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먹이 주는 일을 접었다. 우리가 돌계단에 앉아 쉬면 나홀로가 거위 가족과 함께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목을 끄덕이며 먹이를 달라고 했지만 매정하게 외면했다. 이렇게 며칠을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그곳에 가도 그 거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호수로 가서 보니 나홀로와 그 거위 가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홀로가 이젠 혼자가 아니고 거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다 이기고 승리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젖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그 거위들이 다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 거위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집에서 대략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먼저 니어펠드 호수가 있다. 에센에서 후진 지역에 속했던 알텐도르프에 쿠룹 공원이 생기고 큰 인공호수가 두 개나 형성되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휴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라서 매주 2회씩 자진 동원으로 모여 그 지대를 깨끗이 청소해서 어디를 가도 종잇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다. 어느 한 남성은 매일 작은 집게를 가지고 그 넓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을 볼 수 있다.
니어펠드 호수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가면 쿠룹공원이 나오고 거기에 큰 호수가 있고 공원 안에는 높직한 동산들도 여기저기 있어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평지만 걷는 것보다는 몸을 단련하기에도 아주 좋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다 보면 자그마한 거위 한 마리가 벌써 며칠 전부터 쿠룹공원 호숫가 잔디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거위는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날갯죽지 아래 넣고 조는 듯이 앉아있거나 한 발로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위는 대부분 한 쌍이나 아니면 한 가족 단위로 함께 모여 집단으로 거동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저 거위는 저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혹시 눈이 안 보이나? 아니면 날개가 상해 날지를 못하나? 아니면 무슨 심한 병이 들어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홀로 있는 건 아닐까?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보며 매일 그곳을 지나칠 때면 저러다 저 거위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으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거위는 더욱 야위어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잘게 썬 빵 조각을 가지고 가서 그 거위 앞에 던져주면 겨우 몇 조각을 먹는 사이 많은 비둘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빵을 가져다 그 거위 앞에 던져주고 때론 비둘기들을 쫓아 버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일이 지나서 그 거위가 걸어서 잔디 위에 어정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거위를 나홀로 거위라고 했다.
하루는 그가 처음으로 호수 물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수 주일 동안 잔디 위에만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 거였다. 우리는 일부러 빵 조각을 나홀로 앞에 던져주고 비둘기들을 위해 잔디 위에도 던져주었다. 잔디 위에만 던져주면 행동 빠른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나홀로 차지가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홀로는 물 위의 빵 조각 한두 개를 건져 먹다가 바로 잔디밭으로 나와서 거기 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둘기들이 잽싸게 다 주워 먹어버리니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서 물 위의 빵조각을 건져 먹었다. 나홀로는 홀로 살아남는 방편을 나름대로 터득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연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상식은 잘 알지만 나홀로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노파심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그는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온다.
매일 먹이를 주다 보면 물 위에서 놀던 다른 거위들도 잔디밭으로 올 때가 있다. 거위는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큰 거위가 항상 앞장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온 그 거위는 빨리 빵 조각을 주워 먹어도 몇 조각 얻어먹을까 말까 한데 뭍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그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쫓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거위들이 그곳으로 와도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그 거위들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그사이에 비둘기들이 빵 조각을 다 주워 먹어버리고 그 거위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 그 거위는 자기 가족을 위해 다른 새를 쫓아주는 모양이었다. 동물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 나홀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척 야위고 털이 부슬부슬하고 병색이 완연해서 정말 가엽게 보였는데 지금은 털도 매끄럽고 살도 올라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홉 새끼 거위 가족이 나타나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이제 갓 부화했음 직한 새끼 아홉 마리를 거느린 거위 한 쌍이 나타났다. 그 거위는 아마 호숫가 물가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새끼들을 부화한 모양이었다. 앞장서서 헤엄쳐가는 엄마 거위 뒤를 이어 너무 귀여운 새끼 아홉 마리가 뒤따라 헤엄치고 맨 끝에 아빠 거위가 헤엄쳐 다녔다. 정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하루는 나홀로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어 살펴보니, 그 거위 가족 뒤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줄곧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홀로는 이제껏 너무 외롭고 고독했던 거다.
이곳 쿠룹공원 호수에 다른 거위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상당히 많은 거위가 몰려와서 헤엄치고 또 잔디 위에서 어정거리고 논다. 그러나 나홀로 거위는 늘 혼자였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캐나다거위는 색깔이 다른 두 부류가 있다. 한 종류는 짙은 회색 거위인데 검은 목에 흰 턱받이와 흰 꼬리 깃털을 지니고 날개와 몸통엔 온통 회색 무늬 깃털을 가진 회색 거위가 보편적으로 대다수고 가끔은 덩치가 훨씬 작은 밤색 거위들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거위는 밤색 거위다. 이 색깔이 다른 거위들은 절대 서로 어울리는 법이 없다. 가끔 외로운 나홀로가 회색 거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덩치 큰 거위가 어김없이 목을 길게 늘어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멀리 쫓아낸다. 그러니 나홀로는 이제껏 늘 외로운 거위였다. 그런데 그 새끼 거위 가족이 밤색 거위들이다. 너무 외로웠던 나홀로는 종류가 같은 거위를 보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렇지만 어린 새끼를 거느린 그 거위 가족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몇 미터 뒤에서 헤엄쳐 다녔다.
이날부터 우리는 빵을 더 잘게 많이 썰어 가지고 가서 나홀로와 그 새끼 거위 가족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침 산책 중에 한 일과가 되었다. 나홀로와 우리는 이제 제법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호수 저쪽 끝에서 헤엄치다가 우리가 이쪽 호숫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알아보고 앞장서서 헤엄쳐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거위 가족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몇 주가 흐르는 중 새끼 거위들의 깃털도 밤색으로 짙어 가고 제법 애송이 거위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서 먼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고 공원 제일 높은 동산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호숫가 야외공연장 돌계단에 앉아 휴식한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호수에 거위들과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물닭은 먹이를 건지러 쉴 사이 없이 물속을 들락날락한다. 가끔은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물고 나와 꿀꺽 삼키고 뭍으로 올라와 큰 검은 날개를 쫙 펼치고 날개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날짐승들이 생동하는 모습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한 다음 천천히 집을 향해 돌아선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고 나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수의 총성이 울리던 날
그날도 우리가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고막을 째는 듯한 총성이 연달아 몇 방 터졌다. 놀라서 급히 호숫가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포수가 거위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았는데 거위 다섯 마리가 총탄에 맞아 호수에 둥둥 떠 있는데 그중엔 밤색 거위도 한 마리 보였다. 그 거위가 나홀로가 아니면 새끼 거위의 엄마 아빠 중 한 마리일 것이 뻔했다. 호수에 뜬 거위들을 사냥개 두 마리가 물로 들어가서 물고 나온다.
나는 포수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올해는 새끼 거위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이른 시기에 사냥을 나올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벌써 8월에 사냥 허가가 나왔는데 일부러 늦게 나왔다고 하면서 사냥개가 건져온 거위들을 배낭에 담아 떠났다.
나는 나홀로와 거위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거위들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도 없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이곳 중부 독일에는 캐나다거위가 무척 번성하여 호수마다 너무 많은 거위가 집단으로 모여들어 자연 서식하는 들오리들에게 피해가 되고 아무 데나 똥을 싸 놓아 환경미화를 방해한다고 겨울철이면 거위사냥을 허가해준다. 이 쿠룹 호수에도 작년까지는 11월로 들어서면 사냥을 하러 왔는데 올해는 겨울도 아니고 새끼 거위들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가을에 벌써 포수가 사냥을 나온 거다. 나는 이렇게 일찍 거위사냥에 나선 포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홀로와 거위 가족의 걱정으로 애탔지만,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동산으로 향해가는데 아! 동산 꼭대기에 한 밤색 거위가 깍깍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고 서 있고 동산 아래쪽에서 밤색 거위 한 마리가 꼭대기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듯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 거위가 나홀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홀로는 날지를 못하는 거위였나 보다. 아마 날개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위가 날아올라 가면 될 것인데 저리 바쁘게 뛰다시피 달려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홀로는 호수에서 나와 그곳 근처 숲속에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가 있었을 텐데 날지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달려와 동산 위의 거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짝을 잃고 목놓아 우는 거위를 홀로 둘 수 없었나 보다.
동산 한 바퀴를 돌아 쉼터로 가니 놀랍게도 그 호수 한 귀퉁이에 거위 새끼들과 큰 거위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도 거위들은 먹이를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 놀란 쇼크로 사람들을 피하는 건지 아니면 나홀로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포수가 왔을 때 새끼 거위들은 호숫가 우거진 수풀 속에 몸을 피했던 모양이다.
나홀로가 거위 가족 파수꾼이 되다
다음날 호수는 너무 고요했다. 비둘기들도 다른 거위들도 오리들도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마리가 없다. 새들은 아마 서로 말이 통하나 싶다. 이곳이 위험지대라는 소문이 확 퍼진 모양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한 번 포수가 다녀가고 나면 수 주일 동안 간혹 오리 한두 쌍이 찾아와 헤엄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거위는 한 마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니어펠드 호수에는 회색 거위들이 수없이 많이 논다. 그곳은 인가와 근접한 호수라서 사냥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동산으로 가서 정상을 한 바퀴 돌고 쉼터로 오니 나홀로가 반갑게 다가오고 그 뒤로 거위 가족이 다가왔다. 아마 그들은 야외관람장 아래 숨어있었던 것 같다. 나홀로는 목 아래 흰 부분에 유난히 큰 짙은 밤색 반점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나홀로는 그 거위 가족 일원으로 합류하여 늘 같이 다녔다. 캐나다거위는 사는 동안 자기 짝과 절개를 지킨다고 하던데, 아마 그 엄마 거위가 자기 짝이 총에 맞아 죽고 나니 나홀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홀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거위 가족은 호수 한복판으로는 가지 않고 야외관람장 뒤 한적한 한쪽 귀퉁이에서 헤엄쳐 다녔다. 거위 가족이 거기서 놀면 그때부터 나홀로는 야외공연장 물가에 세워 둔 큰 쓰레기통 위에 서서 언제나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보는 파수꾼 노릇을 했다. 가족 단위로 거동하는 거위는 가장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가족의 안전을 위해 파수꾼 노릇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나홀로는 거위 가족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빵조각을 가지고 가서 던져주면 나홀로는 거기서 내려오지도 않고 우리더러 빵을 자기 앞에 놓아 달라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촉했다. 그러면 남편은 빵을 그 앞에 놓아주고 또 손으로 빵을 주면 손에서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는 나홀로가 어떻게 그 높은 쓰레기통 위로 날아올라 갔는지 의문이었다. 아마 그는 이제 날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일이 지나고 새끼 거위들은 다 성숙해서 호수 위를 나는 연습을 했다.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훨훨 날아다니면 나홀로도 그 뒤를 따라 날았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먹이 주는 일을 접었다. 우리가 돌계단에 앉아 쉬면 나홀로가 거위 가족과 함께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목을 끄덕이며 먹이를 달라고 했지만 매정하게 외면했다. 이렇게 며칠을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그곳에 가도 그 거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호수로 가서 보니 나홀로와 그 거위 가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홀로가 이젠 혼자가 아니고 거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다 이기고 승리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젖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그 거위들이 다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 거위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니어펠드 호수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를 가면 쿠룹공원이 나오고 거기에 큰 호수가 있고 공원 안에는 높직한 동산들도 여기저기 있어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평지만 걷는 것보다는 몸을 단련하기에도 아주 좋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다 보면 자그마한 거위 한 마리가 벌써 며칠 전부터 쿠룹공원 호숫가 잔디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거위는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날갯죽지 아래 넣고 조는 듯이 앉아있거나 한 발로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위는 대부분 한 쌍이나 아니면 한 가족 단위로 함께 모여 집단으로 거동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저 거위는 저렇게 혼자가 되었을까? 혹시 눈이 안 보이나? 아니면 날개가 상해 날지를 못하나? 아니면 무슨 심한 병이 들어 부모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저렇게 홀로 있는 건 아닐까?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보며 매일 그곳을 지나칠 때면 저러다 저 거위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으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거위는 더욱 야위어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잘게 썬 빵 조각을 가지고 가서 그 거위 앞에 던져주면 겨우 몇 조각을 먹는 사이 많은 비둘기가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빵을 가져다 그 거위 앞에 던져주고 때론 비둘기들을 쫓아 버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일이 지나서 그 거위가 걸어서 잔디 위에 어정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거위를 나홀로 거위라고 했다.
하루는 그가 처음으로 호수 물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수 주일 동안 잔디 위에만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 거였다. 우리는 일부러 빵 조각을 나홀로 앞에 던져주고 비둘기들을 위해 잔디 위에도 던져주었다. 잔디 위에만 던져주면 행동 빠른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나홀로 차지가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홀로는 물 위의 빵 조각 한두 개를 건져 먹다가 바로 잔디밭으로 나와서 거기 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둘기들이 잽싸게 다 주워 먹어버리니 바로 다시 물로 들어가서 물 위의 빵조각을 건져 먹었다. 나홀로는 홀로 살아남는 방편을 나름대로 터득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연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상식은 잘 알지만 나홀로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노파심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그는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온다.
매일 먹이를 주다 보면 물 위에서 놀던 다른 거위들도 잔디밭으로 올 때가 있다. 거위는 무리 중에 덩치가 가장 큰 거위가 항상 앞장으로 나선다. 그런데 그곳으로 올라온 그 거위는 빨리 빵 조각을 주워 먹어도 몇 조각 얻어먹을까 말까 한데 뭍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그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쫓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거위들이 그곳으로 와도 목을 길게 빼고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그 거위들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그사이에 비둘기들이 빵 조각을 다 주워 먹어버리고 그 거위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 그 거위는 자기 가족을 위해 다른 새를 쫓아주는 모양이었다. 동물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 나홀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척 야위고 털이 부슬부슬하고 병색이 완연해서 정말 가엽게 보였는데 지금은 털도 매끄럽고 살도 올라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홉 새끼 거위 가족이 나타나다
어느 날 아침 그곳에 이제 갓 부화했음 직한 새끼 아홉 마리를 거느린 거위 한 쌍이 나타났다. 그 거위는 아마 호숫가 물가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새끼들을 부화한 모양이었다. 앞장서서 헤엄쳐가는 엄마 거위 뒤를 이어 너무 귀여운 새끼 아홉 마리가 뒤따라 헤엄치고 맨 끝에 아빠 거위가 헤엄쳐 다녔다. 정말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하루는 나홀로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어 살펴보니, 그 거위 가족 뒤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줄곧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홀로는 이제껏 너무 외롭고 고독했던 거다.
이곳 쿠룹공원 호수에 다른 거위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상당히 많은 거위가 몰려와서 헤엄치고 또 잔디 위에서 어정거리고 논다. 그러나 나홀로 거위는 늘 혼자였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는 캐나다거위는 색깔이 다른 두 부류가 있다. 한 종류는 짙은 회색 거위인데 검은 목에 흰 턱받이와 흰 꼬리 깃털을 지니고 날개와 몸통엔 온통 회색 무늬 깃털을 가진 회색 거위가 보편적으로 대다수고 가끔은 덩치가 훨씬 작은 밤색 거위들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거위는 밤색 거위다. 이 색깔이 다른 거위들은 절대 서로 어울리는 법이 없다. 가끔 외로운 나홀로가 회색 거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면 덩치 큰 거위가 어김없이 목을 길게 늘어 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멀리 쫓아낸다. 그러니 나홀로는 이제껏 늘 외로운 거위였다. 그런데 그 새끼 거위 가족이 밤색 거위들이다. 너무 외로웠던 나홀로는 종류가 같은 거위를 보자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렇지만 어린 새끼를 거느린 그 거위 가족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몇 미터 뒤에서 헤엄쳐 다녔다.
이날부터 우리는 빵을 더 잘게 많이 썰어 가지고 가서 나홀로와 그 새끼 거위 가족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침 산책 중에 한 일과가 되었다. 나홀로와 우리는 이제 제법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호수 저쪽 끝에서 헤엄치다가 우리가 이쪽 호숫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알아보고 앞장서서 헤엄쳐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거위 가족이 뒤따라왔다.
이렇게 몇 주가 흐르는 중 새끼 거위들의 깃털도 밤색으로 짙어 가고 제법 애송이 거위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서 먼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고 공원 제일 높은 동산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호수로 돌아와서 호숫가 야외공연장 돌계단에 앉아 휴식한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호수에 거위들과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물닭은 먹이를 건지러 쉴 사이 없이 물속을 들락날락한다. 가끔은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물고 나와 꿀꺽 삼키고 뭍으로 올라와 큰 검은 날개를 쫙 펼치고 날개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날짐승들이 생동하는 모습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한 다음 천천히 집을 향해 돌아선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고 나면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수의 총성이 울리던 날
그날도 우리가 공원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고막을 째는 듯한 총성이 연달아 몇 방 터졌다. 놀라서 급히 호숫가로 다가가니 다섯 명의 포수가 거위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았는데 거위 다섯 마리가 총탄에 맞아 호수에 둥둥 떠 있는데 그중엔 밤색 거위도 한 마리 보였다. 그 거위가 나홀로가 아니면 새끼 거위의 엄마 아빠 중 한 마리일 것이 뻔했다. 호수에 뜬 거위들을 사냥개 두 마리가 물로 들어가서 물고 나온다.
나는 포수들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올해는 새끼 거위들이 다 자라지도 못한 이른 시기에 사냥을 나올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벌써 8월에 사냥 허가가 나왔는데 일부러 늦게 나왔다고 하면서 사냥개가 건져온 거위들을 배낭에 담아 떠났다.
나는 나홀로와 거위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거위들은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도 없다. 새끼 거위들은 아직 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이곳 중부 독일에는 캐나다거위가 무척 번성하여 호수마다 너무 많은 거위가 집단으로 모여들어 자연 서식하는 들오리들에게 피해가 되고 아무 데나 똥을 싸 놓아 환경미화를 방해한다고 겨울철이면 거위사냥을 허가해준다. 이 쿠룹 호수에도 작년까지는 11월로 들어서면 사냥을 하러 왔는데 올해는 겨울도 아니고 새끼 거위들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가을에 벌써 포수가 사냥을 나온 거다. 나는 이렇게 일찍 거위사냥에 나선 포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홀로와 거위 가족의 걱정으로 애탔지만,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동산으로 향해가는데 아! 동산 꼭대기에 한 밤색 거위가 깍깍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고 서 있고 동산 아래쪽에서 밤색 거위 한 마리가 꼭대기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듯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 거위가 나홀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홀로는 날지를 못하는 거위였나 보다. 아마 날개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위가 날아올라 가면 될 것인데 저리 바쁘게 뛰다시피 달려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홀로는 호수에서 나와 그곳 근처 숲속에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가 있었을 텐데 날지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달려와 동산 위의 거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동안 친분이 두터워진 짝을 잃고 목놓아 우는 거위를 홀로 둘 수 없었나 보다.
동산 한 바퀴를 돌아 쉼터로 가니 놀랍게도 그 호수 한 귀퉁이에 거위 새끼들과 큰 거위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도 거위들은 먹이를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 놀란 쇼크로 사람들을 피하는 건지 아니면 나홀로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포수가 왔을 때 새끼 거위들은 호숫가 우거진 수풀 속에 몸을 피했던 모양이다.
나홀로가 거위 가족 파수꾼이 되다
다음날 호수는 너무 고요했다. 비둘기들도 다른 거위들도 오리들도 눈을 씻고 보아도 한 마리가 없다. 새들은 아마 서로 말이 통하나 싶다. 이곳이 위험지대라는 소문이 확 퍼진 모양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한 번 포수가 다녀가고 나면 수 주일 동안 간혹 오리 한두 쌍이 찾아와 헤엄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거위는 한 마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니어펠드 호수에는 회색 거위들이 수없이 많이 논다. 그곳은 인가와 근접한 호수라서 사냥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동산으로 가서 정상을 한 바퀴 돌고 쉼터로 오니 나홀로가 반갑게 다가오고 그 뒤로 거위 가족이 다가왔다. 아마 그들은 야외관람장 아래 숨어있었던 것 같다. 나홀로는 목 아래 흰 부분에 유난히 큰 짙은 밤색 반점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나홀로는 그 거위 가족 일원으로 합류하여 늘 같이 다녔다. 캐나다거위는 사는 동안 자기 짝과 절개를 지킨다고 하던데, 아마 그 엄마 거위가 자기 짝이 총에 맞아 죽고 나니 나홀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홀로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거위 가족은 호수 한복판으로는 가지 않고 야외관람장 뒤 한적한 한쪽 귀퉁이에서 헤엄쳐 다녔다. 거위 가족이 거기서 놀면 그때부터 나홀로는 야외공연장 물가에 세워 둔 큰 쓰레기통 위에 서서 언제나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보는 파수꾼 노릇을 했다. 가족 단위로 거동하는 거위는 가장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가족의 안전을 위해 파수꾼 노릇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 나홀로는 거위 가족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빵조각을 가지고 가서 던져주면 나홀로는 거기서 내려오지도 않고 우리더러 빵을 자기 앞에 놓아 달라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촉했다. 그러면 남편은 빵을 그 앞에 놓아주고 또 손으로 빵을 주면 손에서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는 나홀로가 어떻게 그 높은 쓰레기통 위로 날아올라 갔는지 의문이었다. 아마 그는 이제 날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일이 지나고 새끼 거위들은 다 성숙해서 호수 위를 나는 연습을 했다.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훨훨 날아다니면 나홀로도 그 뒤를 따라 날았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먹이 주는 일을 접었다. 우리가 돌계단에 앉아 쉬면 나홀로가 거위 가족과 함께 찾아와서 입을 벌리고 목을 끄덕이며 먹이를 달라고 했지만 매정하게 외면했다. 이렇게 며칠을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가 그곳에 가도 그 거위들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호수로 가서 보니 나홀로와 그 거위 가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홀로가 이젠 혼자가 아니고 거위 가족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다 이기고 승리했다는 생각으로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젖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그 거위들이 다시 나타나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 거위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