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단평 리뷰
피부의 깊이
시 나희덕
단평 김세영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너는
확신에 찬 꿈을 꾸면서
어디 먼 곳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네 눈과 뺨과 팔과 다리를 쓸어내리니
손끝을 파고드는 냉기가
싸늘한 돌멩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네 삶을 봉인한 자루 속에서
다른 세계의 빙산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 침묵의 벽을 탕탕 쳐보아도
단 한 마디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을 흘러보내도
단 한줄기 물도 녹아내리지 않았다
나사로여, 일어나 걸으라, 걸으라, 아무리 소리쳐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를 만진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희노애락으로 출렁거리는 표면,
오직 너의 잠든 얼굴만이 잔잔하였다
아,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유심』 (09/10호)
내면의 깊이를 피부의 깊이로 치환한 것이 감각적이고 참신하다. 피부가 깊은 자는 외부의 자극에도 내면의 고요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잠의 두께도 깊다. 깊은 잠을 자는 사람은 ‘확신에 찬 꿈’을 꿀 수 있다. 그의 피부는 심해어처럼 깊고 싸늘하고, 그의 눈과 뺨과 팔과 다리는 ‘싸늘한 돌멩이를 만지는 것’ 같이 냉기가 손 끝에 파고든다.
그의 삶을 봉인한 수심 깊은 자루 속에는 북극해처럼 ‘다른 세계의 빙산이 떠다니고’ 있다. 그 침묵의 빙벽은 너무도 견고하여 아무리 주먹으로 쳐보고 소리쳐 보아도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피부는 빙벽처럼 차고 단단하여, 나의 뜨거운 눈물에 녹아내리지 않는다. 나사로는 죽은 지 사일 후에도 예수의 부름에 무덤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지 않았는가! 너의 피부는 심해처럼 깊고, 너의 잠은 빙산처럼 견고하여 ‘일어나 걸으라, 걸으라, 아무리 소리쳐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구나!
너의 잠든 얼굴은 ‘고요의 바다’처럼 잔잔한데, 내 얼굴의 피부는 작은 ‘희노애락으로 출렁거리는’ 수심 얕은 표면이다. 안온의 잠에 든 너의 피부는 얼마나 깊은 것인가! 그 잠의 두께가 얼마나 두터운 것인가! 그 잠 속의 꿈은 얼마나 믿음에 차 있을까? 그 침묵의 벽 안, 내면의 방은 얼마나 고요하고 평안할까? 혹한 속에서 극기훈련을 하면 피하지방층이 북극곰처럼 두터워져서, 나의 피부도 너처럼 깊어질 수 있을까? 내 얼굴의 피부도 희노애락으로 출렁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김세영/시인)
『미네르바』 2010년 겨울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