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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트리 수필< 노병老病 체험> /김세영 (시인,문학평론가)

작성자김세영|작성시간24.04.12|조회수41 목록 댓글 1

 

포에트리 수필

 

노병老病 체험

                                    김세영 (시인,문학평론가)

 

 

이제 칠십 중반에 들어서니, 불교에서 말하는 네 가지 고통인 사고四苦 즉 생노병사生老病死중 노병의 실체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이십 년 이상 아침마다 양재천 걷기를 하고 있는데, 최근 노폭과 보행속도가 점차 줄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하체의 근력이 떨어진 탓에 지하철의 높은 상행계단을 오를 때는 허벅지 통증 때문에 잠시 쉬었다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트를 탈 때가 많다. 그리고 예전에는 돌부리에 걸려도 몸의 중심을 잡아서 넘어지지 않았는데, 요즈음엔 곧잘 넘어진다. 작년에는 10미터 전방 정류소의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가다, 학생들 앞에서 넘어져서 민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신체 기능의 저하뿐만 아니라 정신 기능의 저하도 느낄 때가 많다. 우선 기억력이 감퇴 되었다. 진료과목이 내과이므로 취급하는 약 종류가 많은 탓도 있지만 자주 쓰지 않는 약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약품 리스트를 찾아보아야 할 경우가 자주 생겼다. 이러다가 조만간 경도 인지장애라도 생겨서, 80세 전에 조기 폐업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이 자리에서 개업한 지 어느덧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종합병원에서 내과 과장으로 봉직하던 37세 때, 간암으로 폐업하게 된 선배의 병원 인수 제의를 받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 사거리에 병원이 있어 제의를 수락했다. 내과 전문의가 된 지 7년째 되는 해였다. 그 선배 선생은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워낙 두주불사하는 분이라서 최악의 상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의술인 면역치료를 받기 위해 미국에도 갔다 왔지만 끝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의 선배 나이가 44세였다. 의사로서의 무력감과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다. 의사이니까 질병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 건강 유지에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이 건강 장수를 자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월이 빨라 어느새 내 인생의 후 절반을 이 진료실에서 보낸 셈이다. 개업 생활 전반 이십몇 년간 점심 식사를 같이 하는 팀원이 다섯 사람이었다. 우리 반 내에서 제일 연장자 그룹이다. 나이 차가 3년에서 8년 사이이다. 내가 막내이다. 형과 아우처럼 사이가 좋았다. 1-2회 퇴근 후 만나서 저녁 식사하고, 가볍게 소주 한 두잔 하였다. 가끔 고스톱 하기도 하고, 바둑 두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기도 하였다. 팀의 첫 붕괴가 질병에 의해서 발생했다. 14년 전 맏형 되는 선생이 검진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서 폐업하게 되었다. 점심 팀이 4명이 되었다. 다행히 술후 상태가 좋아지면서 그 선생은 저녁 모임에는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병마는 우리 팀을 다시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8년 전 셋째 형 되는 선생이 진료 중에 갑자기 뇌졸중이 생겼다. 말이 어눌해지고 반신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급히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뇌 영상 촬영을 하니, 뇌경색으로 진단되었다. 평소 담배도 피우지 않고, 절주하고, 비만하지도 않았다. 작지만 단단한 체격이었으므로 너무나 뜻밖의 사태였다. 70세가 되면 누구도 건강을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폐업하고 재활치료를 하게 되면서, 휠체어를 타고 나온 그를 만나 저녁 식사도 하면서 안부와 담소를 나누곤 하였다.

 

이제 점심 팀이 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점심 식당에 가서 비어있는 의자를 보면 마음 한 곳이 허전해졌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난 후, 이번에는 소아청소년과의 둘째 선배 선생이 은퇴 폐업을 하게 되었다. 이제 3년 선배인 안과 선생하고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제약회사 직원과 점심 약속이 있다든지, 친구나 직원과 식사한다든지 해서 일주일에 2번 정도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그러다 기어코 2년 전에는 안과 선배마저 건강이 안 좋아 폐업하면서, 우리의 점심 팀은 완전히 종말을 고하였다. 질병과 노령에 의해서 우리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다.

근래에는 앉았다 일어날 때 어지러움을 느끼고, 가끔 두통도 생겼다. 그래서 작년에 뇌 MRI 촬영까지 받았다. 다행히 뇌실질 부위와 뇌혈관 상태에 특이 소견이 없다고 판독이 나와서 안심은 되었다.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예방목적으로 알포글리세레이트를 복용하고 있다.

 

나 역시 작년 하반기에서 금년 초까지 불과 5개월 사이에 연이어 두 차례나 수술을 받게 되었다. 작년 9월 초 일상적으로 하는 아침 양재천 걷기 운동 중에 갑자기 왼쪽 눈이 까맣게 보이지 않았다. 원반 같은 렌즈가 안구 속에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안과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2년 전 백내장 수술 시 삽입한 렌즈가 탈락하였다고 하였다. 노령에다 당뇨병이 있어서 수정체를 지주하는 조직이 약하고 헐거워져서 탈락이 되었다고 한다. 소개하는 전문 안과 병원에 가서 렌즈를 봉합하는 재건수술을 받았다. 몇 개월간 금주령이 내려지고 운동도 못하게 되었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 난간을 붙잡고 조심조심 걸어가니, 마치 팔십 대 노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눈이 안정되기 시작한 11월부터, 느닷없이 오른쪽 어깨 통증이 심해졌다. 특히 야간 통증이 심해서 취침 전 소염진통제를 먹어야만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난 6월에 이삿짐 정리로 어깨를 혹사한 것이 원인 같았다. 아랫층에서 천정에 누수가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이참에 전면적인 내부 공사를 하기로 하였다. 26년간 살아온 아파트의 벽지랑 가구가 집주인처럼 노후된 것이다.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 기간의 한 달 반 정도, 다른 집에 세를 들어 살아야 했다. 평수를 줄여서 이사해야 하므로, 살림 짐을 최소로 줄이기로 했다. 오래된 가구와 의류, 오래된 의학서적, 문학잡지와 시집 등, 묶음으로 내다 놓으니 작은 용달차 한 대 분량이다. 짐 정리할 때 무리한 탓에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 된 것 같다. 영상 검사에서 75% 파열이라 부득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술후 첫 2개월간 보조대를 착용하고, 그다음 2개월간 팔걸이를 착용하였다. 이와 병행해서 도루래 운동, 막대 운동, 스트레칭 운동 등 재활운동을 매일 수차례 계속해야 했다. 보조대를 24시간 착용해야 하는 첫 2개월이 가장 힘들었다. 보조대를 안고 잠자리에 드니, 갑갑해서 잠들기 힘들었다. 목에 나무 틀을 차고 갇혀 지낸 옛날 죄수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느껴졌다. 식사하는 것, 글 쓰는 것, 목욕하는 것, 옷 입는 것 등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장애인이 된 것 같았다. 이 기간에 쓴 진료 기록지의 글씨가 비뚤비뚤 유치원 아이의 글씨라서, 혹 진료차트 복사를 해야 할 경우, 보기에 민망할 것 같았다.

 

육신의 늙음과 병약함을 정신의 성숙함으로 보완해야 할 것 같다. 11월의 해바라기와 장미가 쇠락함을 거룩함의 모습으로 변환하듯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견디어야겠다. 점차 기억력과 분석력은 감퇴하겠지만, 넓은 시야의 조망과 사려 깊은 관조로 마음의 평정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미네르바시 등단(2007). 포에트리슬램평론 등단(2023)

시집: 하늘거미집4, 시론 시평 산문집: , 인 앤 아웃

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편집인, 상징학연구소 기획자문,

한국의사시인회 회장 역임, 시산맥시회 고문

미네르바 문학상(2016), 한국문협 작가상(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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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Xingilu 작성시간 24.04.14 70고개를 저만큼 앞두고 읽게 된 '노병 체험', 지금부터라도 정신의 성숙함을 준비해야겠다는 교훈에 많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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