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성백선/ 삼족오, 돌새, 날아가다

작성자성백선|작성시간11.06.29|조회수145 목록 댓글 0

 

삼족오, 돌새, 날아가다


성백선

-충남 예산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졸.

-2008년 『시작』 등단.





   1. 인사동의 봄


바람 좋은 날 홀로 인사동길을 걷는다. 올해는 유독 긴 한파가 매서웠던지라 봄을 맞는 설렘이 그 어느 때보다 새롭다. 사람들 옷차림이 검은색에서 파스텔 톤으로 바뀌고, 이곳에선 외국인들도 내국인들처럼 자연스럽게 보인다.

전통의 거리에서 엽전, 자물쇠, 나한상 등 옛 풍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판대를 기웃거리다 보면 어쩐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하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그림자 짝의 동행이 있어 외롭지 않다. 외롭기는커녕 오가는 사람들의 화사한 표정에 덩달아 달뜨고, 느리게 가는 시간의 뒷덜미 담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정겹기까지 하다. 인사동은 세월의 뒤안길에서 내 지나온 길을 즐겁게 돌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저기 항아리 뒤, 어린 시절 술래잡기 하다가 장독대 깨트린 상고머리 여자애가 설핏 스치는 것 같아 자꾸 눈길이 간다.

며칠 전 쌈지길 2층에 전각가 김성숙 선생님께서 <돌꽃>이란 아담한 전각작품 가게를 내셨다. 선생님은 지난여름 경인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때 내 졸시를 전각시화로 작품화해 전시하였다. 동료 시인들과 지인들이 보고는 시와 전각이 만나니 한층 격조 높은 예술성이 느껴진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한 시인 친구는 요목조목 늘어놓는 내 설명에 눈빛을 반짝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남다른 감상에 젖은 걸 기억한다.

늘 화장기 없는 민낯에 돌을 다루는 예인(藝人)다운 공손한 손으로 내 손을 반갑게 잡아준 선생님한테서는 잊혀져가는 사람냄새가 은은히 풍겨 마음이 기울고, 단단한 돌 속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엔 남모를 재미가 쏠쏠하다.


   2. 돌 속의 4차원 세계    


달빛 스민 강가에서 돌을 사포질한다


아버지는 해남석을 바이스에 물리고 날마다 세상을 벼리셨다 달빛이 유독 강심을 파고드는 날엔 묵묵히 물에 비친 편백나무를 양각하고, 어쩌다 뜬구름이 지날 때는 더욱 날 세워 가슴속 뼈대를 하얗게 음각했다 단단한 아날로그에 무채색 이미지들이 어지러운 밤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한 마리 새를 쫀다 반듯이 앉아서 꼭 가고 싶은 반대 방향으로 날개를 펼치고, 무언가 내게 할 전언도 반자反字로 쓴다 이때 아버지 눈은 세상의 안쪽, 손은 바깥쪽에 둔다 바로 보고 거꾸로 판다 난 아버지 눈빛에 V자를 그리거나 고구려의 아이처럼 깃발을 흔들었다 정正과 반反 사이 경계를 수시로 오가는 동안 아버지는 무소뿔 같은 점과 선을 넘어, 돌 속 음양을 휘젓기도, 어머니의 강을 건너기도 한다 그러다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호각소리 울려오면 내게 귀 닳은 낙관을 남기고 세 발 달린 까마귀와 합체한다 마침내 햇귀가 탁본되는 순간, 세상 벽 뚫고 태양을 삼킬 듯 어둠 홰쳐 날아가는 것이다.

                ―성백선, 「돌새, 날아가다」 전문


내가 이 시를 썼을 때엔 확실히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다. 일상에서 응어리진 마음속 결빙을 전각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갖고 싶어 한다. 그 세계에서 극한의 즐거움을 맛보고, 행복을 극대화시키려는 열망을 누구도 욕심이라 일갈하지 못한다. 살며 발목 잡히는 순간들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럴 때마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슬럼프를 헤쳐 나가고, 마음 아닌 물질에 닿아 있는 자신의 내면을 채찍질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리고,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버리듯 욕심을 다스리는 나름의 생활철학인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나를 찾아 떠나는 힘겨운 여정이기에.

우리는 무엇을 손에 넣으려 아등바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격앙된 목소리와 혈안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세상 끝에는 과연 그토록 갈망하던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제각기 알 수 없는 혼자만의 물음표를 가슴에 새긴 채 하루하루 빛바래어 갈 때, 조금만 느린 걸음과 따듯한 시선으로 곁을 돌아보면 번뜩이는 예지가 길을 안내해 줄 때도 있다.

오래 산 사람의 세상 보는 잣대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하여 마치 도인의 신통력을 보는 듯 신기하다. 생의 뜬구름을 벼려가며 진솔한 의미를 불어넣고, 말랑말랑한 세상 안쪽과 단단한 바깥쪽을 읽어내며 마음을 쪼는 일은 단순히 연마된 재주가 아니다. 돌 속에서 돌보다 더 강한 것들을 깨트리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밝은 세상을 미리 예견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은 이르지 못할 4차원의 세계이다. 어쩌면 갈고 닦은 마음을 돌에 새긴다는 것은 접신(接神)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붉은 인주에 탁본된 태양을 보니 짧은 연륜으로는 결코 넘볼 수 없었던 예술가의 얼이 삼족오(三足烏)와 함께 내 몸속으로 날아오는 듯하다.


   3. 시와 전각의 만남


‘전각시화’란 새로운 예술 장르가 언제부터 태동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가 전각시화에 매료된 것은 5년 전이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이 모두 그렇듯 나도 종종걸음으로 종로3가 지하철역을 꾸역꾸역 기어들어갔을 때다. 스크린도어 앞에 다른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타이틀은 고암 정병례 전각가가 주축이 된 「풍경소리」였다. 고암 선생님은 내가 교정 일을 돕고 있는 선출판사 사장님과 각별한 사이여서 나중에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김성숙 전각가가 고암 선생님으로부터 십여 년간 사사 받은 수제자라 한다. 따로따로 알게 된 두 선생님이 사제지간이라니 인연이란 참으로 전각의 첫 느낌만큼이나 묘해서 뒷골이 당길 때가 많다.

전철역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간결한 시에 단순한 색채의 그림이 조형적으로 어우러진 전각시화는 절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시화를 그린 것이 아닌 돌에 새겨 도장처럼 찍었다는 사실이 생소하게 다가오면서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시화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고,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질박하면서도 세련된 멋이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그 후로 전각시화는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대학원 강의실에도 공원 벤치에도….

신석기시대 질그릇에 문양을 찍은 것이 기원인 전각은 시를 공부하는 나에게 점점 깊이 스며들었다. 가슴 속에서 절절한 그 무엇을 시로 풀어낸 다음날은 시의 중심부를 전각으로 새기고 싶어 근질근질해진다. 시가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면 전각은 칼로 새기는 마음이라 했던가. 시와 전각 이 두 그릇에는 삶의 정신과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어떤 그릇을 빚느냐보다는 그 그릇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항시 관건이다. 시의 정갈한 이미지 위에 전각의 고박한 품격이 얹어지면 아름다움에도 높낮이가 있다는 안목을 갖게 된다.

사람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인파에 떠밀려 내가 가지 않아도 몸이 순간이동 된다. 인사동 사거리를 지나자 고암 선생님의 전각갤러리가 보인다. 우리 고유의 전통을 사랑하는 전각가의 예술혼이 손끝에 만져지는 듯 따듯하다. 돌에 새겨지는 시는 동적이면서 입체적이고, 심오하면서 서정적이다. 그 정서 속에서 무엇이든 만나보고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투박해서 더 정이 가는 전각시화, 그 단아하고 고졸한 아름다움에 흠뻑 반해 빠져나오지 못해도 나는 좋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문학아카데미 방산사숙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