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귀령의 전력질주-평론

작성자정동재|작성시간26.06.18|조회수36 목록 댓글 0

안귀령의 전력질주-평론

 

 

안귀령의 전력질주

정동재

 

구척은 어림도 없는

오척 오촌쯤의 거대한 기둥이 기습에 얼어붙어 전압이 꺾였다

죄책감 아닌 책임감의 누전언어와 사지가 사암과 화강암으로 굳은

소우주의 시스템 붕괴

찰나에 심연의 블랙박스를 열고 뒤엉킨 기억을 배설한다

 

주파수가 다시 잡히고 마비가 풀려 꺼진 코어가 다시 점화되는

바르고 곧은 소우주의 행성적 복원

보라점 하나로 수렴하는 일심(一心)의 폭발을

일 년이라는 폭발이 빚어내는 사계를

고로 일심으로 구동되는 우주의 하드웨어를

척추의 24절기와 오장육부의 파도이 육신은 단순한 질량이 아니다

 

가슴 한복판에 내리치는 서슬 퍼런 된서리,

양심(良心)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영혼을 갈아엎는 도덕적 경작

온몸사지로 대지를 활보할 때

기실 그것은 지구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하늘 자신이다

 

시퍼런 총구 앞에 기어이 맨손을 뻗어

철면의 총부리를 우악스럽게 붙잡고 뒤흔드는 한 여자안귀령!

지구 반대편의 모니터들이 일제히 깜빡인다

감전되는 세계의 영혼들 정신 개벽이 된다

모두의 눈에 하늘빛 푸른 불꽃이 튄다

 

여자의 몸을 입고 전력질주하던 하늘

청계천 왜가리 풍경과 발 담근 처자들에 분명히 옮겨붙었다

오후라는 찰나의 평화 속거친 숨 고른 전력질주하는 하늘

낄낄 깔깔 소리로 여여하다

 

*안귀령 님께 바치는 헌시 — 

 

 

[평론정동재의 시 안귀령의 전력질주

 

1. 우주적 거대 서사(Cosmic Scale)의 수사학

이 시의 가장 큰 문학적 성취는 '한 인간의 실천적 움직임과 고뇌'를 '우주적 사건'으로 치환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있습니다시인은 대상의 내면과 행동을 조명하기 위해 블랙박스코어주파수전압행성적 복원하드웨어 같은 거시적 과학 언어를 과감하게 차용합니다이는 인간의 육체를 단순한 피동적 물질이 아니라대우주의 알고리즘을 지상에 실현하는 최첨단 하드웨어로 재정의하는 비평적 정점에 도달하게 만듭니다.

 

특히 도입부의 구척은 어림도 없는 오척 오촌쯤의 거대한 기둥이 기습에 얼어붙어 전압이 꺾였다라는 구절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의 위대한 출발점입니다여기서 '거대한 기둥'은 다름 아닌 주인공(안귀령)의 신체적 실체이자 영혼의 중추입니다기습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폭력과 서슬 퍼런 현실의 무게 앞에구척의 영웅에 비하면 어림도 없이 가냘픈 '오척 오촌'의 인간이기에 그녀의 소우주는 순간적으로 경악하고 얼어붙는 시스템 붕괴를 겪습니다죄책감이 아닌 '책임감의 누전'으로 인해 언어와 사지가 사암과 화강암처럼 굳어버리는 좌절과 암전의 순간을 시인은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직시합니다찰나에 심연의 블랙박스를 열고 뒤엉킨 기억을 배설해야 할 만큼그 기습의 충격은 소우주의 존립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명명한 '거대한 기둥'은 시적 함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그것은 외적인 신장(身長)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시대를 온몸으로 지탱하는 '거대한 대장부(大丈婦)'로서의 위대한 기상과 영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주파수가 다시 잡히고 마비가 풀려 꺼진 코어가 다시 점화되는 '행성적 복원'의 순간현실의 폭압 앞에 잠시 얼어붙었던 연약한 여인의 몸은 "척추의 24절기와 오장육부의 파도"를 품은 우주의 하드웨어로 눈부시게 격상됩니다시인은 보라 외칩니다점 하나로 수렴하는 일심(一心)의 폭발을일 년이라는 폭발이 빚어내는 사계를그리하여 마침내 일심으로 구동되는 우주의 하드웨어를 말입니다오척 오촌이라는 외적 한계를 뚫고 나오는 이 대장부(大丈婦)의 신성(神性)과 우주적 부활은 독자에게 깊은 전율과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이러한 사유의 깊이는 전작인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등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맥락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물리적 에너지가 전하(電荷)를 띠고 전기(電氣)로 화하며 무극에서 태극의 기동과 음양의 질서로 구체화되듯이번 안귀령의 전력질주는 원시(元始)의 우주론적 거대한 사유가 현실 인물의 구체적인 신체성과 기습의 현장감에 결합하여 폭발한 위대한 성취라 볼 수 있습니다.

 

 

2. 강렬한 색채 대비와 영적 개벽(開闢)의 미학

시 전반을 관통하는 '푸른빛(청색)'의 변주가 탁월합니다가슴 한복판에 내리치는 "서슬 퍼런 된서리같은 도덕적 결기와 "시퍼런 총구"라는 억압적 현실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임계점에서시인은 마침내 모두의 눈에 튀는 "하늘빛 푸른 불꽃"을 터뜨립니다.

이 불꽃은 지상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지구 반대편의 모니터들을 일제히 깜빡이게 만들고마침내 "감전되는 세계의 영혼들"을 정신적으로 깨우는 '정신 개벽'의 빛으로 확산됩니다철면의 총부리를 우악스럽게 붙잡고 뒤흔드는 한 여성의 용기 있는 질주가 온 세상의 영혼을 깨우는 구원의 섬광으로 번지는 순간을 매우 화려하고 극적인 필치로 그려냈습니다이는 물리학과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한 여자의 거대한 '빛과 파동'이 공명으로 고차원 상승 에너지를 지상에 체현해낸 문학적 성취라 하겠습니다.

 

 

3.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일상으로의 감각적 착지

시의 후반부에서는 하늘(천상)과 인간(지상)이 하나로 녹아드는 화려한 수사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여자의 몸을 입고 전력질주하던 하늘

이 구절은 대상에 대한 가장 극진하고도 화려한 찬사입니다불의와 압박의 총부리에 맨손으로 맞서는 여인의 모습을 '지구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하늘 자신'으로 신성화합니다시인은 "양심(良心)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영혼을 갈아엎는 도덕적 경작"을 통해사지로 대지를 활보하는 행위가 기실 지구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하늘 자신임을 선언합니다.

 

거대한 기습 앞에 잠시 얼어붙었던 오척 오촌의 대장부(大丈婦)가 마침내 맨손을 뻗어 총부리를 뒤흔드는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투쟁이 아닙니다하늘이 우주를 경작하듯 인간 또한 제 안의 양심으로 자기 자신을 치열하게 경작해 나가는준엄한 천명(天命)과도 같다 할 것입니다이는 하늘의 알고리즘을 인간의 육신을 통해 지상에 구현해내는 고도의 '자기 진화'이자인간의 발걸음을 빌려 대지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하늘 자신의 역동적인 신성(神性)의 발현인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거대한 우주적 불꽃이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청계천 왜가리 풍경"과 "발 담근 처자들"이라는 가장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화려하게 옮겨붙는다는 점입니다오후라는 찰나의 평화 속에서 거친 숨을 고르며 전력질주하는 하늘은마침내 "낄낄 깔깔 소리로 여여하다"라는 경쾌하고 본연적인 삶의 소리로 갈무리됩니다.

 

웅장한 폭발음과 시퍼런 총구의 대치로 시작한 시가 이토록 여여(如如)한 일상의 풍경으로 안착하는 구조는숭고한 투쟁이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소박한 평화와 삶의 생동감을 위한 것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문학적 장치입니다시인이 말하는 하늘의 지상 구현은 결코 멀리 있거나 신비롭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안귀령이라는 한 여성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나가는 우리의 보금자리바로 그 일상의 풍경 속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시는 여여하게 증명해 냅니다.

헌사를 받는 이에게 이보다 더 벅찬 감동을 줄 수 없을 만큼 언어의 외연을 극대화한 수작입니다. (평론정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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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노벨문학상이 지상의 최고 언어인 한국어의 정수를 깨닫지 못한 채  주로 상형문자 집단에 머물러 있다는 점, 그리고 문학의 정수이자 경전인 시(詩)조차 비유와 은유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언어를 함부로 농락하는 문단의 아픈 현실 앞에서, 시인 정동재는 한국 문학사에 전편(全篇) '평론시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그는 철학, 종교학, 수리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등등 천문, 지리, 인사를 넘나드는 '영적 물리학'의 세계를 통해 기존 문학의 틀을 깨부수고, 우주의 탄생부터 완성까지를 관통하는 거대한 '천지인(天地人)의 설계도'를 펼쳐 보인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하늘을 만들다》, 《살리는 공부》,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가 있으며, 전편 평론시집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물리학으로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전편 평론시선집 《말못병 하느님》, 그리고 대장정의 전편 평론시선집 완결판인 《안귀령의 전력질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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