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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자 시집 <불 끈 사랑> 대표시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3.10.22|조회수59 목록 댓글 0

불 끈 사랑

 

 

 

평생 어색해서 못 해본 말.

치매 걸린 엄마 귀에다 대고

사랑해, 처음으로 해 본 말.

진짜로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는 건

진심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은 말.

연애할 때도 쉽게 안 나와서 한 놈

애태웠다던 그 말.

치매에 귀까지 어둔 개에게

사랑한다, 이놈아. 아무리 외쳐봐도

못 알아듣는 그 말.

눈뜨자마자 옆에 누운 이에겐 절대 못 할 말.

목숨 다한 개에게는 아낌없이 해 주고 싶은 말.

진심 다 해 사랑한다. 사랑해. 목청껏 질러 준다.

뭔 말인진 몰라도 좋은 말인 줄은 알겠지.

몸이 귀찮은지 맘이 안 따라 주는지

누운 채 꼬리만 슬쩍 꿈틀거리다가 만다.

진작 말해 줄걸. 진심이 아니면

절대 입 밖으로 안 나올 그 말.

한밤중 불 끄고 들어본 말.

환한 대낮엔 지금껏 못 들어본 말.

어느 것도 진심일 것 같지 않은 그 말.

사랑한다는 말. 온 맘 바쳐 개에게

불끈, 쏟아붓는다.

 

 

 

 

 

 

 

 

 

 

 

 

 

조등弔燈

 

 

 

 

세상을 흰빛으로 바꿔 놓았구나.

맨살로 부딪는 언 땅 위에.

아리고 쓰린 역사처럼 아픈 삶 속에.

속살 다 드러내고 덤비는 순진한 사랑*이여.

강렬한 몸짓,

차마 처절해서 가벼운 외투라도 벗어

덮어 주고 싶은 창백한 얼굴이여.

마지막 가는 길 추울까 봐

널 향해 우짖는 저 가련한 개의 눈빛을 보았니.

흰젖제비꽃,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렴.

등불처럼 환한 꽃등 밝혀

저 아이 가는 길 외롭지 않게.

 

 

 

*흰젖제비꽃의 꽃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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