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개와 산책을/ 지관순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4.04.13|조회수29 목록 댓글 0

늙은 개와 산책을

 

 

 

낡은 의자는 인내한다

 

첨탑 위에 반짝이는 정오의 햇살을 올려다보며

발톱을, 꼬리를

 

은행나무에 묶인 채

네 발로 얼어붙은 엉거주춤 개의 본질을,

 

가구점 의자들은 새로운 스타일로 주문이 넘쳐나고

 

짙어가는 그늘 아래

망각한 의자의 자세를, 멀어지는 개의 의지를

 

오래 반성하던 낡은 의자는

낮게 깔리는 구름에서 익숙한 비의 냄새를 맡는다

 

되살아나는 후각은 의자를 인도할 목줄

 

얽매인 그늘을 뒷발로 걷어차고

컹컹, 짖던 회로가 꿈틀거리기 시작해

코에 의지하여 더듬는다

 

익숙한 냄새에 이끌려 매번 같은 냄새의 덧칠은 발목을 잡히는 일

 

언젠가는 소화될 낯선 냄새를 향해

쉽게 버리지 못해 질질 끌려가는 타성을

 

건너가자 목줄을 끊고, 신선한 풀밭으로

 

에둘러 멀리 달아나는 구름 개,

움츠러든 목을 펴고

귀가 휘날리도록 가구 골목에서 멀어져가는 의자

 

 

 

모던포엠 11월호 발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