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박수현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4.04.18|조회수23 목록 댓글 0

강릉

 

 

 

 

  편지는 일년 만에 당도했다 작년 여름 바닷가에서 부친 편지였다 흰 봉투를 나이프로 뜯자 파도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모래펄에 팬 낯선 발자국들이 동봉되어 있었다 내가 송부한 것은 눈부신 수평선과 수평선 끝에 눈썹처럼 걸린 흰 돛과 그보다 더 흰 팔월의 뭉게구름과 그 곁의 연필 밑그림 같은 낮달이었다 그런데 내가 평생 바다만 바라보는 해변의 낡은 우체통처럼 서서 받아 든 것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신새벽 꿈 같은, 해식애(海蝕崖)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와서 괭이갈매기 무수한 울음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내 청춘의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파도에 닳아 조금씩 없어지는 모래펄의 낯선 발자국 같은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이의 뒷모습이 어느 황폐한 별자리처럼 자꾸 어두워지는 그해 여름 강릉 앞바다, 또는 내 청춘의 불온하고 아름다운 미제 사건 파일

 

 

-《동리목월》 23년 가을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