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겐세일 / 박일만

작성자박일만|작성시간24.05.02|조회수24 목록 댓글 0

바겐세일 / 박일만

 

 

서둘러 챙겨 입고 첫차에 오른다

모닥불이 혓바닥을 날름대는 곳

추레한 행색으로 빙 둘러 도열한다

그 거리의 모퉁이

드럼통을 달군 불이 얼굴을 익힌다

큰 과일, 작은 과일, 건장한 과일

풋과일, 익은 과일, 삭아가는 과일

저마다 모양새를 조건삼아 진열된다

최선을 다해 단내를 풍겨야 선택되는 생들

봉고차가 다가와 손가락 호명하는 잠깐 사이

동으로, 서으로, 남으로, 북으로

일당 몇 만원중식제공!

줄 맞춰 저렴하게 몸 팔러 간다

그들이 사라진 후 덩그러니 남은 잔챙이들

서리 맞은 낙과처럼 추락을 맛본다

그마저도 허기가 진다

북새통이 지나가고 바람만 휘도는 거리 모퉁이

선택받지 못한 생들은 또다시 쪽방으로 처박힐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생들 저희끼리 모여

온기 사그라드는 드럼통을 껴안고

두 손을 함께 구워 먹는다

 

 

<내일을 여는 작가, 202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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