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출근
이제 여우 가면을 쓸 시간, 작은 인형 하나로 아픈 엄마를 가방에 매단다 우리는 가면 속 꽃씨를 나눠 가진 동족, 꽃잎이라는 비밀을 품고
여우 되기를 스스로 학습한다 여우의 문법과 화법으로 온몸을 여우로 물들인다 폼알데하이드 같은 말들로 독성을 뿌리며 꽃잎을 감추는 철근의 숲 부푸는 욕망이 접착제 같은 침묵을 가면에 새긴다
엄마, 꽃잎 한 장 더 피워 미소를 사 드릴게요
꽃밭 같은 마음이 달린다 가시덤불 같은 몸이 뛴다 고맙다 미안하다 말할 겨를도 없이 달린다
파스로 달랜 허리와 어깨가 뛴다 시간의 채찍에 쫓기는 도시 여우 시계추 꼬리로 발자국을 휘감으며 달린다
엄마 꽃잎이 방안에서 낙엽이 되어가는 동안 꽃의 향기를 다급히 지우는 지하철을 빠져나와 초침 소리가 콘크리트 정글의 장막을 미는 소리
유리문에 비친 꼬리 그림자가 긴장을 할퀴면 발톱이 더 날카로워진다 가면으로 둘러싸인 가면들 입속에 꽃씨를 물고 급히 립서비스를 가면에 장착한다
-계간 불교문예 2025년 여름호
강순 : 1998년 《현대문학》으로 시 등단. 시집으로 『크로노그래프』,『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가 있음. 이충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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