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 성백군

작성자하늘호수.|작성시간24.04.13|조회수26 목록 댓글 0

볼펜 / 성백군

 

 

연필꽂이에

볼펜 여럿 꽂혀있다.

 

받은 것, 주운 것,

은행, 병원에서 슬쩍한 것,

버리기가 아까워 모아둔 것이 많은데

막상 쓸려고 잡아 보니

태반이 잉크가 나오지 않는다

 

겉모양이 허접한 것이야

그러느니 하면 되는데

고급스러워 아끼던 것들은

배신감이 든다

 

책꽂이 속, 먼지 뿌연 전집들,

해묵은 상장, 보편화된 자격증,

목사, 시인, 무슨 무슨 단체장.

사람 한평생 살면서 실속 없이 붙은 것들

본명은 없어지고 별명만 남았다

 

더듬더듬, 더듬어 찾다가

예로부터 쓰다만 모나미 볼펜 한 자루 잡았다

잘 나온다

내가 여기 있었구나 싶은데

저 많은, 외모가 멋지다고 뻐기는 것들은

어떻게 하지

나는 자꾸 늙어가는데

 

   1377 - 032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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