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상이 변기를 미술관에 들여놓은 후, 예술작품을 일상의 사물과 구별해주던 물리적 차이는 사실상 폐기되었다. 문제는 하나의 사물이 ‘언제’ 작품이 되는지, 그 사물을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조건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편은 사실 진중권의 시선이 아니라 그린버그를 비롯한 몇 평론가들의 시각을 통하여 본 미술사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그들의 평론을 보고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문학에서도 어느 정도 비평의 역할이 있지만 미술에서는 화가들이 언어를 매개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잡지나 매체를 통해 작품을 말해주고 규정해주는 평론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본문에서도 그렇지만 저자의 말에서도 진중권은 그것을 명확하게 밝혔다.
“전후의 모더니즘에서 그린버그와 폴록은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폴록은 1950년대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예술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색면추상, 탈회화적 추상,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나아가 카프로의 해프닝 등은 ‘폴록의 유산’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비평이었다. 폴록 이후 예술은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원리’를 추구하거나, 혹은 거기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 동시대 미술을 이끈 이들은 모두 그린버그의 자식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탕아들이었다.”
어쨌든 시인으로서 그림에 관심을 갖고 살아온 시간이 오래 되었고 등단작에도 그림을 보고 쓴 작품이 들어가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의 독파는 필수불가결이었다.
전후 수많은 유파와 화가들, 이젤 속으로 몸소 들어가서 공업용 물감을 흘리는 드리핑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폴록이나, 이젤을 버리고 나온 탈회화 작가들, 무의미를 거부하고 개념을 찾아 돌아간 작가들, 다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일회성이나 얼마 후에 사라지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 그야말로 피아노 한 대를 몇이서 부셔버리는 쇼와 같은 해프닝, 이 모든 것을 한 몸으로 저질러보는 카멜레온과 같은 다원주의 작가, 그러다 다시 구상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이 다양하고 거세고 격렬한 몸짓 속에서 내가 읽은 것은 역동逆動이었다. 의고주의, 전통에 요람처럼 안주해 온 나의 시작詩作의 행태에 전신으로 반역을 일으키는 충동을 느꼈다.
이 책을 읽는 당신. 이 많은 작가들 이름은 잊어도 좋으니 이들 속에 내재되어 표출된 격정을 만질 수 있기를... 많은 작가들이 표현을 위해 몸부림치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언급되어 있는데, 대표되는 그림의 사진과 그에 따른 적절한 해설을 먼저 읽으시고...
무엇보다 도도히 흐르는 홍수 같은 그 작가혼을 만지시라.
그리고 시인들이여!
지면에나 연연하는 값싼 정신을 이제 땅에다 묻어버리고, 화가들이 갖지못한 무한표상인 언어에 선택되었음을 감사하고 그들보다 더욱 맹렬히 불타시기를! 인생에, 작품에, 인류에....
그리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나 의심하고, 언제라도 가차없이 버릴수 있기를!
(포스트모던은 이렇게 나에게 우리에게 와 있고 접수되고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