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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엽서 - 정미셸 / 시읽기 권귀순 시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6.06.14|조회수20 목록 댓글 0

흑백엽서

 

정미셸

 

 

어둠과 공존하며 어둠을 차별하는 밤의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된다. 구리빛 번쩍이며 밤새 돌던 시계 부속이 유마 준주 감옥* 입구에서 멈췄다. 죄없이 감방에서 태어나야 했던 아기 이름이 검은 석판 위 흉악범들 이름 사이에서 반짝인다. 단추를 훔친 죄로 잡혀온 여자도 그곳에서 일 년을 지냈다지, 도망치다 잡혀온 남자가 짰다는 흰 레이스가 박물관 유리 상자 안에 아직도 갇혀 있다. 콜로라도 강의 범람으로 고립된 땅에서 이중 철창을 뚫고 도망칠 자 없었다. 백 년에 두 명만은, 이후로 아무도 보지 못했을 뿐. ‘해가 나지 않으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가장 밝고 화창한 도시라지만 어두운 독방에 박혀 있는 그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람. 날씨 덕을 보기는커녕 아직도 묻지 못한 죄가 박쥐와 함께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빈 감방 안으로 누군가 용감하게 들어간다. 갑작스런 박쥐 떼의 소동에 놀라 방문객이 떨어뜨린 전화기에서 짧고 강한 빛이 새어나온다. 뱀에 물려 죽어가기도 했다던 죄수들이 벽에 긁어놓은 낙서. 흑백 엽서처럼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다. 죄보다 무서운 어둠, 어둠보다 무거운 죄, 아프게 견딘 세월이 걸어 나간다.

 

 

 

 

*아리조나주 감옥을 개조한 유마감옥주립역사공원(Yuma Territorial Prison)

*‘햇빛이 비치지 않으면, 날마다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는, 그 당시 유마시의 슬로건

 

 

 

 

『한맥문학』 시부문 등단(1997)/『문학과 의식』 평론부문 등단(2010)/제14회 가산문학상(2008) 제25회 에피포도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시집 『꽃의 문을 열다』(2020, 곰곰나루) 외 4권/미주 동아일보기자 역임/시 전문지 『미주시학』 발행인 및 편집주간.

 

 

 

 

흑백엽서, 그 어둡고 쓸쓸한 그림자

 

 

 

 

망각이 신의 선물이라면 기억 또한 신이 주신 선물이다. 기억하는 기능이 우리에게 있다는 건 축복이다. 사랑하고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들은 기억이라는 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릴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잘 갈무리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광화문 중심에 있던 중앙청 건물을 일제 잔재라며 철거했을 때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그대로 남겨 보존하면서 후손들에게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할, 긴 안목 부재에 대한 원망이었다.

서구로 눈을 돌려보면 제2차 세계 대전(1941년-1945년)이 일어나던 때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홀로코스트라는 잔혹한 유대인 학살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어둡고 음흉하고 끔찍한 역사를 지워버리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안고 가면서 흉물스런 커다란 흉터 앞에 눈물 흘

리고 다짐하는 마음들을 생각해보라. 상처와 흉터를 드러내 공개하고 자자손손 보존하게 하는 것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으로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다짐일 것이다.

누구나 흉터를 들어내기 두려워한다. 그것이 약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흉터를 과감하게 들어낼 때 치유도 의외로 빠르다. 햇빛 앞에서 상처라고 어떻게 마르지 않겠는가.

고아로 자란 어느 시인이 최고의 문학상을 받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제 몸속 상처의 기억을 더 적극적으로 꺼내 세상에 펴 말리고 싶다.’

상처를 꺼내 말리는 일이 이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일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삶이 안겨주는 상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 상처와 깨달음으로 치유하는 힘이 생겨나는 것이고 시를 씀으로써 자신의 상처가 마를 뿐 아니라 시를 읽는 독자의 상처도 함께 마를 수 있는 것, 시는 바로 그런 힘이 있다.

 

시 ‘흑백 엽서’는 유마 준주 감옥 주립 역사공원을 다녀온 시인의 감옥에 대한 기록이다. 유마에 존재했던 악명 높은 감옥은 1875년에 시작해 다음 해 7월 1일부터 죄수를 수감하고 1909년 문을 닫을 때까지 약 3천 명의 죄수가 수감되었는데 당시 미국 남서부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였기 때문에 이후로 많은 서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유마 준주 교도소라고 하는 이유는 교도소가 만들어진 1875년 당시에 애리조나는 아직 주가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준주(Terriotory)였기 때문이다. 애리조나에서 가장 무서운 흉악범들을 수감하는 주립 교도소였던 것.

 

어둠과 공존하며 어둠을 차별하는 밤의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된다. 구리빛 번쩍이며 밤새 돌던 시계 부속이 유마 준주 감옥 입구에서 멈췄다. 죄없이 감방에서 태어나야 했던 아기 이름이 검은 석판 위 흉악범들 이름 사이에서 반짝인다.

 

시인은 이 어둠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에 담아낼까 고민했을 듯하다. 그러다 망설임 없이 산문 이야기체를 선택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 감옥의 역사를 이야기체 말고 어떤 다른 형식으로 전할 수 있을까.

감방에서 죄없이 태어난, 석판에 새겨진 아기 이름이라니, 너무 아프고 아리다. 어둡고 죄 된 음지에서도 아기는 탄생해 검은 석판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 캄캄한 곳에서 탄생의 첫울음을 터뜨렸을 아기를 생각하면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생명이거늘, 훗날 아기가 자라 소년이 되고 청년이나 숙녀가 되었을 때 자신의 출생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 흔히들 하는데 죄와 죄를 저지른 사람은 빛과 어둠처럼 그냥 선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인지---.

범죄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죄를 짓고도 전혀 뉘우침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은 본래 악한 본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 들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추를 훔친 죄로 잡혀 온 여자도 그곳에서 일 년을 지냈다지 도망치다 잡혀 온 남자가 짰다는 흰 레이 스가 박물관 유리 상자 안에 아직도 갇혀 있다. 콜로라도강의 범람으로 고립된 땅에서 이중 철창을 뚫고 도망칠 자 없었다.

 

단추를 훔쳐도 죄여서 감옥에 갇히는데, 죄를 짓고도 힘 있고 돈만 있으면 감옥에 가지 않는 현실도 버젓이 있다. 그래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도 생겨났다.

나는 단추를 훔친 여자가 자꾸 걸린다, 단추는 몇 개 훔쳤을까, 한 개일까, 한 상자였을까. 훔친 단추의 가치가 어느 정도여서 일 년 형을 받고 감옥에 있었을까.

문득 굶주리는 일곱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십구 년 감옥살이한 장발장과 그 소설을 쓴 빅토르 위고가 떠오른다. 프랑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낭만파 시인이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국민작가, 소설 ‘레 미제라블’은 출간되자마자 대중들과 노동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주머니에 12프랑만 있어도 그 책을 사서 읽었다고 하니 그만큼 대중과 노동자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었던 것인데 아마도 그것이 문학의 힘일 것이다.

17년에 걸쳐 쓴(1845-1862) 이 소설은 그가 출판 당시 출판사 사장에게 어떤가 묻는 뜻으로 ? 를 써서 보낸 편지에 사장이 대박이라는 뜻의 ! 로 답장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프랑스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레 미제라블’이라고 한다. 제목인 레 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아, 무정’이라 번역한 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이 더 감동적이어서 좋다.

 

‘해가 나지 않으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가장 밝고 화창한 도시라지만 어두운 독방에 박혀 있는 그 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람. 날씨 덕을 보기는커녕 아직도 묻지 못한 죄가 박쥐와 함께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빈 감방 안으로 누군가 용감하게 들어간다.

 

햇빛 없는 날을 얼마나 그리워했으면 그런 날은 식사가 무료라고 당시 유마시는 그런 슬로건까지 내놓았을까. 끓는 날씨에 창문 없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에 갇혔을 죄수들. 그들은 어떤 하루하루를 겪고 견뎠을까.

 

갑작스런 박쥐 떼의 소동에 놀라 방문객이 떨어뜨린 전화기에서 짧고 강한 빛이 새어 나온다. 뱀에 물 려 죽어가기도 했다던 죄수들이 벽에 긁어놓은 낙서. 흑백엽서처럼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다. 죄보다 무서 운 어둠, 어둠보다 무거운 죄, 아프게 견딘 세월이 걸어 나간다.

 

어둠 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레이스를 뜨고, 벽에 낙서를 남기고---. 그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만 하며 어둠의 세월을 보냈다. 법을 어기고 죄를 지은 대가를 그렇게 치르며 그 긴 시간을 견뎠다. 죄의 대가는 이런 것이구나, 얼마나 뼈저리게 각인되었을까.

‘죄보다 무서운 어둠, 어둠보다 무거운 죄, 아프게 견딘 세월이 걸어 나간다’는 마지막 구절이 또 아프다. 그렇게 살다 간 사람들은 그 삶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무서운 죄를 짊어지고 갇힌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떠나고 그 장소, 건물, 좁은 방들만 텅 빈 채로, 문 닫은 옛 감옥으로 남아 지금은 관광명소로 많은 여행객이 찾게 되었다. 그 침묵의 방을 기억하며 사람들은 또 죄와 형벌에 대해 어떤 생각에 젖을까.

빼곡한 사연이 적힌 흑백엽서, 그 어둡고 쓸쓸한 그림자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정미셸 시인은 시와 평론을 쓰면서 미주지역에서 유일하게 한글과 영어 이중언어로 발간되는 시 전문지 『미주시학』 대표이자 발행인이다. 미국 문단의 저명한 문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소통하며 한국문학과의 교류역할을 톡톡히 하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미주시학의 발전을 기원한다.<권귀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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