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란 산문집 『시드니 블루』(시산맥사) 대표 산문

작성자시산맥|작성시간26.06.10|조회수17 목록 댓글 0

시가 된 윈더미어호

 

 

  초록이 보이면 마을이 나타난다는 말이 한 줄 시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시가 아니라 사실이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 여기가 이민자의 나라였지하고 새삼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은 주로 두 가지 흔적 때문이다. 하나는 감옥, 또 하나는 광산이다. 이 두 낱말에는 온기가 배어 있지 않지만, 말이 실재하는 장소에는 대개 기막힌 풍광이 펼쳐진다. 감금되고 억제된 욕망의 이미지 때문인지 보는 이의 감성을 극한까지 몰고 갈 때가 있다.

  고국에서 온 손님들과 시드니 서북부의 초기 광산 마을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최종 목적지가 호주 근대문학의 거장 헨리 로슨의 고향 머지(Mudgee)였으니 절로 문학기행이 되었다.

  머지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메마른 목장과 들판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쩌다 등 푸른 나무가 보이면 그늘 아래로 양과 소가 떼를 지어 몰려 있었다. 늦여름 정오의 햇살을 머금은 들판은 눈부셨다. 200여 년 전 땅속에 갇혔던 금맥이 솟구쳐 올라 숨을 쉬고 있는 듯, 마른풀들이 황금빛으로 너울거렸다. 우리는 가끔 차를 멈추고 대지가 뿜어내는 뜨거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 먼 길을 달렸다.

  길 위에 걸린 맑은 하늘과 구름이 빚어내는 조화에 손님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도 길 위에서 풍경이 되었다. 정적 속을 달리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사실 이정표보다 앞선 전조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초록이었다. 메마른 대지 끝에 초록이 보이면 이정표가 나타났고,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영락없이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몇 개의 크고 작은 광산촌을 거친 뒤에 조금 지루한 길이 이어질 즈음이었다. 멀리 얕은 산등성이에 제법 넓은 초록이 어른거렸다. 나는 일행들에게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초록이 보이니 곧 마을이 나타나겠네요.” 한 시인이 내 말을 받았다. “그거, 그대로 시네!”

  이 말은 시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초록이 보인다는 것은 물이 있다는 뜻이고, 물이 있으면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이치였다. 그리 대단한 발견도 아니건만 나는 이번 여행이 이 자명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시작된 것인 양 설렜다. 황무지와 들판을 달리고 산등성이를 돌아 마을에 닿는 동안, 나는 마른 대지 위에 숨통처럼 솟아오른 초록을 보았다. 그 빛깔이 머무는 곳에 어김없이 생명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했다.

  윈더미어(Windermere)호는 머지 가까이 그런 초록이 어린 곳에 자리한 인공 호수였다. 산등성이 내리막 끝에 고인 호수는 마치 그릇에 담긴 물처럼 반듯하고 고요했다. 호수 한가운데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매끄러운 나무 몇 그루가 조각처럼 서 있었다. 호수가 생기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일 터였다.

  물속에서 저토록 의연하게 버텨온 시간은 얼마이며 또 얼마를 더 견뎌낼 수 있을까. 회색빛 뼈처럼 솟아오른 나무들이 어쩐지 아슬아슬하면서도 경이로웠다. 문득 그 뿌리가 닿아 있을 옛 지상의 흙을 생각했다. 댐이 들어서기 전에 저곳을 터전 삼아 살았던 존재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흩어져 살고 있을까.

  스스로 길을 나선 이든, 강제로 밀려난 이든, 돌아갈 수 없는 곳을 품고 사는 마음은 서로 닮았을 것이다. 이민자란 물 아래 잠긴 고향의 흙을 끝내 놓지 못하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수장된 과거에 기억의 닻을 내린 채 오늘이라는 수면 위로 몸을 일으켜 세운 윈더미어 호수의 나무들처럼 말이다.

  이튿날,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가던 무렵 우리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노을빛을 머금은 수면 위로 헐벗은 나무들이 기묘한 자태를 드러냈다. 나뭇가지마다 검은 솜뭉치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맺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저녁이 되어 안식처를 찾아든 까마귀 떼였다. 나도 모르게 회색 뼈에 검은 꽃송이가 피었네!”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곁에 있던 시인이 그 표현 또한 영락없는 시 한 구절이네.”라며 화답했다.

  어둠이 호수 주변의 형체들을 지워낼 때까지 우리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무에 내려앉은 까마귀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물 위에 위태롭게 선 나무를 쉼터로 알고 돌아온 새들의 귀환이 하도 장엄해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래, 이건 시다. 시일 수밖에 없어.’

  고향을 두고 왔다고 언어까지 잃을 수는 없다. 희망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좋다. 어둠이 초록을 덮고 그림자마저 삼켜버리면 달빛 아래 물속 내 고향은 입을 벌려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것이 내 삶을 노래하는 시가 되는 것이다. 윈더미어 호수의 저 벌거벗은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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