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마음을 가스라이팅 한다. 어리고 철없기만 한 마음에게 늙었다고. 삶에 대해, 예술, 문학, 시, 고개 들어 미래에 대해 보이는 것을 적어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몸이 삐걱대면서 막아서서 빈둥거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자꾸 식어간다. 한때 뜨거웠던 날 있었지만, 몸에게 목줄 묶여서 마음이 끌려다니고 있다. 등단 14년. 나이 60대 후반이다. 시집 3권, 이상 오감도 해석, 한국 현대시 해석, 아직 책으로 묶지 못한 이상 날개 해석이 손에 든 전부다. 먼지 가득한 나날이다.
오감도는 나에게 뼈아픈 깨달음을 주었다. 이상은 놀라움이었다. 어린 날부터 읽고 보았던 철학, 사회학, 문학, 종교 등 인문학책 몇 권과 몇 편 영화에서 만났던 반짝이는 것들이 사실은 쓰레기였다는 깨달음의 천둥 번개였다. 문학에서는 미학이 그렇고 문예사조가 그렇다.
미학으로 먹고살았고, 먹고살고, 먹고살려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다. 문예사조로 먹고살았고 먹고살고 먹고살려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말이다. 그러나 20세기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으로 부풀어 오른 학문의 허상이 지배했던 때였다고 생각한다. 예술 역시 다르지 않아서 삶의 이야기가 아닌 것들은, 21세기 AI 손바닥 위에서 허상과 망상의 잡동사니로 굴러다닐 뿐이다.
이상은 조선을 총칼로 짓밟는 제국주의 일본의 모진 식민지 노예 지배에 용광로 불기둥의 분노로 맞서 싸웠다. 민족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짓밟고 지배하는 구조와 망상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1인 전쟁을 한, 사람다운 사람이었고 시인이었고 소설가였다. 이상이 꿈꾼 세상은 동학의 대동 세상이었을까.
너무나 놀라운 것은 오감도 시제2호와 시제3호다. 우리말 한글로 쓴 시다. 한자어가 없다. 우리말로 쓴 이 두 편의 시는 우리말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말에 찰지게 어울리는 비유적 논리구조와 놀라운 비유법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젊은 학자들에게 부탁한다. 미학과 문예사조 망상에서 벗어나서 이상이 보여주는 우리말 문장과 논리구조와 비유법을 공부하시라. 영어를 완성 시켰다는 셰익스피어, 독일어를 완성 시켰다는 괴테, 우리에게는 이상과 김소월이 있다. 그리고 젊은 학자들이 보태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말 문장 속에 뜻글자인 한자어가 섞였을 때 얼마나 의미가 모호해지고 흐려지는지, 또 문장 맑음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한자어는 어떤 것들인지, 그리고 우리말 문장이 뜻글자인 한자어 등 다른 언어와 비교해서 얼마나 쉽고 맑게 의미를 전달하는지. 이상이 논리구조로 만드는 우리말 비유법이 얼마나 똑똑하고 산뜻한 것인지. 김소월의 우리말을 고르고 펼쳐놓는 소월식 문장이 사람을 훅, 끌어당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미 하고 있더라도 거듭거듭 공부하시라. 전통의 리듬, 한, 따위는 버리시라.
이상과 김소월은 한국 현대문학의 참된 시작이고, 동시에 현대적 우리말 문장의 참된 시작이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젊은 학자들에게 이 두 분이 펼쳐놓은 놀라운 현대적 우리말의 참된 시작을 완성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오감도를, 날개를, 그리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제대로 읽고 나서야 뼈아프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