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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와 알림방

가깝고도 먼 북녘땅(9) / 정양 시인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03.10.24|조회수79 목록 댓글 0
단고기집에서

개고기를 북에서는 언제부터 단고기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개새끼, 개잡놈 등 '개'에게 얹혀진 어두운 어감들 때문에 단고기로 변했을 것이다. 남쪽에서도 개장국이라는 말을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그게 보신탕으로 바뀌었고, 88올림픽 때 서양사람들이 우리의 보신탕을 혐오식품으로 여긴다고 해서 보신탕집들이 한바탕 수난을 겪었다. 보신탕이라는 이름을 내걸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보탕, 영양탕, 사철탕 같은 이름들도 그때 생겼다. 어떤 집에서는 그 무렵 '보'짜와 '탕'짜 사이에 검정고무신 한 짝을 붙여놓기도 했었다.

남녘의 보신탕집들이 대개 시장 뒷골목이나 좀 후미진, 뭔가 주눅든 것 같은 곳에서 그 맛을 은밀히 자랑하고 있는 데 비해서 북의 단고기집은 평양 시내 중심가에 그것도 천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앉음직한 대형 음식점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요리 내용도 사뭇 다르다. 남쪽의 보신탕이 탕 위주라면, 북의 단고기집은 소위 말하는 코스 요리다. 등뼈찜, 내장조림, 갈비찜, 뒷다리토막찜 등이 차례로 나오고 맨 마지막에 탕과 조밥이 나온다. 마지막에 나오는 묽은 탕에는 고기가 전혀 없고 닭국물 냄새가 살짝 난다.

내가 앉은 식탁에는 개고기를 처음 먹어본다는 이들이 세 명 섞여 있었는데 그들이 먹다 남긴 갈비찜과 뒷다리토막찜을 내가 다 걷어 먹었다. 개고기를 못 먹는 이들은 따로 식탁을 차려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나는 단고기 맛에 반해서 그들이 뭘 먹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 둘 틈이 없었다. 우리의 연출가 선생은 저 건너편 식탁에서 난생 처음 단고기를 먹어보았다는데, 이름처럼 정말로 달게 먹었다고 의기양양하다. 앞으로는 전주의 보신탕도 사양하지 않을 눈치다.

살이 디룩디룩 해서 껍질이 두꺼운 남쪽의 개고기에 비해서 평양의 개고기는 껍질이 아주 얇고 뼈들이 가늘다. 이게 무슨 개냐고 종업원 선생더러 물었더니 산개라고 한다. 산에서 키운 개라는 말인 것 같다. 산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 앞서, 이곳에 와서 사람 말을 그냥 믿어버리는 내 태도가 스스로 놀랍다. 남쪽에서 같으면 믿기 전에 벼라별 의심을 다 해봤을 것이다.

사실 북에 와서 무척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이런 신뢰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이런 신뢰감은 곧바로 북의 상품으로 이어진다. 포장형태가 좀 조악하긴 해도 꿀이라고 써 있으면 그게 바로 진짜 꿀이라는 것을, 참깨기름이라고 써 있으면 그게 바로 진짜 참기름이라는 것을 이곳에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백년 묵은 묘향산 돌버섯이라고 적힌 허름한 종이쪽 밑에 쌓여 있는 비닐봉지 속 돌버섯을 의심한다면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사람 취급을 받기가 힘들 것만 같다. 통제사회에서 유지되고 있는 이런 신뢰와 그 순박함이 그저 부럽고 놀랍다.

교수 선생님, 우리 내일쯤 망명 선언을 할까요? 안내원 선생을 등뒤에 두고 연출가 선생이 짐짓 이죽거린다. 내일 백두산이나 다녀와서 모레쯤 하는 게 어떨까? 맞장구를 치다가, 바짝 긴장된 표정의 순박한 안내원 선생에게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출가 선생님, 그런 생각 마시라요, 그카면 양쪽 임원 선생들이 얼마나 힘들가씨요, 안내원 선생의 목소리가 간절하고 진지하다. 그가 진지할수록 나는 더 미안하다. 걱정 마세요 농담입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좀 마시라요. 간 떨어질 뻔했습네다. 더 이죽거리고 싶어하는 우리의 연출가 선생이 나는 밉다. 경애하는 장군님이 즐기신다는 금강산 한 까치를 권한다. 안내원 선생, 걱정 마시고 담배나 한 대 피우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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