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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해 지는 날 푸른 벼랑에 앉아> - 문예바다 서정시선집 011

작성자문예바다|작성시간22.02.21|조회수213 목록 댓글 0
  이건청 | 문예바다 | 2021. 9. 30 128페이지 | 100×160㎜    값 8,000원 ISBN 97911-6115-146-5

책 소개

 

도서출판 문예바다 기획의 생애토록 시를 써 오신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 그 열한 번째로 이건청 시인의 『해 지는 날 푸른 벼랑에 앉아』가 출간됐다.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상, 1968년 박목월의 추천에 의해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건청 시인은 김소월-정지용-박목월로 이어지는 한국 서정시의 정통을 이으면서 서정의 폭과 깊이를 확장 심화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둣빛 신록의 날들과
폭설의 날들과
폐선廢船의 날들과…

해 지던 날들의
푸른 벼랑을 위하여
                  ― 「시인의 말」

 

 

     아버지의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거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들 모두가 아버지인 줄만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푸른 이끼를 스쳐 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라고,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하늘도 열리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뒷짐 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 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쫓기고 쫓겨

     까마득한 벼랑으로 접어드는 내 뒤에

     또 한 마리 산양이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 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 「산양」 전문

 

     새야

     작은 새야

     손가락

     한 매디만 한 새야

     풀씨 몆 개 따 먹은 힘으로

     피이 피이

     우는 새야

     새야

     오늘은 내 어깨에

     기대서서 울지만

     내일엔

     누구 가슴 찾아가서

     울래.

                                 ― 「새야」 전문

 

     붉게 타는 단풍 앞에서

     내 말은 한갓 허사虛辭일 뿐

     붉은 단풍은 붉은 단풍의 진심을

     나이테에 새긴다.

 

     나무들이

     단단한 나이테를 새겨 넣듯

     나도 말 하나 새기고 싶다.

     단단한 말,

     둥치째 잘려도 선연한 말,

     짙고 치밀한 흔적들이

     둥글게 둥글게 입을 다문

     그런 말 하나 새기고 싶다.

 

     가을에 나무들은 붉게 물든다.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랑잎을 떨어뜨려 가는

     이 소리 없는 시간의 운행…

     그리고 먼 산에 새겨지는 나이테,

     이 무량의 침묵 앞에서

     나는 말을 잊는다.

                                          ― 「산에게」 전문

 

시를 쓰면서 아프고 멍들고 핏물에 젖기도 했었지만, 나는 직설 토로의 시인이 아니었다. 체험 속으로 되돌아가 멍과 핏물이 내재된 이미저리들을 찾으려 했었다. 과거의 축적 속으로 가 기억의 갈피에 쌓인 시어들을 불러내곤 했었다. 첩첩 쌓인 체험들이 삭아 내린 거기 ‘그리움의 말’이 고여 있었다. 맑고 청신한 옹달샘 같은 말들이었다. ‘이건청의 서정시선’은 그렇게 쓴 시들을 선별해 모아 놓은 시선집이다.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쓴 평생의 시편들 속에서 ‘서정시선집’ 한 권을 골라내 따로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기쁜 마음이다. 이 ‘서정시선집’이 그리움을 질료로 한 망극한 전언으로 살아남고, 세상이 새롭게 찾아 주는 날이 오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 「서정抒情을 향하다」 중에서

 

시인 소개

 

-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현대시 동인

- 시집 『실라캔스를 찾아서』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굴참나무 숲에서』 『반구대암각화 앞에서』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등

- 시선집 『해 지는 날의 짐승에게』 『무당벌레가 되고 싶은 시인』 『움직이는 산』 『이건청 문학선집(전 4권)』

-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목월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고산문학 대상, 녹원문학상 등 수상

-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 한양대 명예교수

 

 

차례 | 해지는 날 푸른 벼랑에 앉아

 

시인의 말

 

제1부 목마른 물새가 목마른 물새에게

먼 집

목마른 물새

쓸쓸한 폭풍

해 지는 날, 푸른 벼랑에 앉아

내가 네게로

내가 너를 부를 때

봄 언덕엔 언제나

젖고 있는 들판에게

그대의 문

네가 산이었을 때

연초록 숨결 앞에

목마름에 대하여

흙인 나를 밟아 다오

새야

추억

여문 씨앗을 위한 소네트

 

제2부 사막여우가 있는 풍경

개펄

연초록 새싹에게

찔레꽃 핀 6월의

날개

산에게

사막여우가 있는 풍경

봉함엽서

돌미나리가 있는 풍경

피리어드

부리

한 숲이 한 숲에게

네가 올 때까지

 

제3부 잠든 염소를 깨워 몰고

산양

별똥별

아내라는 여자

아침 다탁茶卓

봄날

여름 숲에서

노루귀꽃을 보며

선묘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심해에서 울리는 종소리

벙어리 강

댕기머리물떼새

잠든 염소를 깨워 몰고

치자꽃

선묘, 선묘

기러기

백발의 날

눈길에서

멸치

정직한 시인

 

제4부 깊은 우물

하류

깊은 우물

봄산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청산 가는 길

움직이는 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앞에서

무당벌레가 되고 싶은 시인

간이역에서

젊음에게

광막한 바다가

폭설

침묵하는 산

애련愛憐

탁. 탁. 탁.

소금 사막

봄밤의 꿈

말들의 시간

가을 바다

봉선화

사북에서

코뿔소를 찾아서 -추운 사내

저무는 날이 다가와

은어

황야의 이리・2

연꽃 밭에서

 

서정抒情을 향하다 ∙ 두 개의 유년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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