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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기의 방

딸네 집에 산다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6.03.23|조회수553 목록 댓글 1

  딸네 집에 산다

 

    김 명 규

  

 

 

   

   우리는 딸 내외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 하였다. 남편이 지방에서 정년퇴직을 하자 둘만 남게 된 우리 부부가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큰딸은 우리에게 서울로 이사오라고 성화였다. 자식들이 모두 서울에서 사는데 저희들은 바빠서 자주 내려올 수도 없고 우리가 서울을 오가는 것도 점점 힘들 거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서울로 이사를 오기까지는 남편과 갈등이 많았다. 공기 탁하고 답답한 서울에서 살 수 없다고, 살던 곳에 종신을 고집하였다. 나와 남편과는 자식을 생각하는 데에 차이가 있다. 아비는 자식에게 냉철한 반면 어미는 모성애에 모든 걸 걸고 산다. 세상의 어머니는 다 그럴 것이다. 나 혼자서라도 서울로 갈 결심에 남편도 못이긴 체 따라나섰다. 아이들의 얼굴을 자주 보며 사는 게 행복이었다.

   일을 하는 큰딸네와 교통이 편리한 곳에 집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딸은 일이 점점 더 바빠지고 주말에도 좀처럼 친정에 오지 못했다. 사위는 외국 출장이 잦아 그럴 때마다 어두운 집에 혼자 퇴근할 딸이 안쓰러워 나는 석양이면 딸네 집에 자러 다녔다. 내가 딸을 안 잊혀하는 것을 눈치 챈 사위가 장인 장모를 모시고 함께 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데, 마음으론 고마웠지만 조심스러워 대답을 미루었다. 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몇 차례나 유산을 하고 그럴 적마다 마음의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결국 아이를 포기하였다고 담담하게 나를 단념시켰다.

   두 집을 합하여 살 넓은 아파트를 사위는 마련하였다. 우리 능력으로 어떻게 이런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겠느냐며 남편은 철없는 애들처럼 좋아하였다. 이 동네 주민들을 만나보면 여기가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며 여기 사는 것에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동네에 유흥업소 한 곳이 없는 데다 한강이 눈앞을 흐르는 조망에 강을 옆에 끼고 걷는 산책로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 사귀게 된 성당 교우들은 딸과 함께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며느리랑 함께 사는 것과 어디 비할 바가 되느냐고 했다. 남편의 친구들 중 아들만 있는 이는 세상에서 젤 부러운 게 우리라고 만날 적마다 치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을 안고 산다. 큰딸은 내게 극진한 효도로 기쁨을 주지만 자식을 얻지 못한 저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서다. 말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위로를 하지만, 내색 안하는 딸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명절 연휴나 딸이 휴가를 얻으면 우리를 앞세우고 여행을 간다. 늙은 장인장모 앞세우고 여행하는 사위에겐 뭐 그리 달갑겠나 싶어 처음엔 사양했지만 이미 항공권을 예약해 버린 뒤 여행 준비를 하라고 한다.

   딸과 함께 여행을 하면 더 없이 편안하고 바랄 것 없이 즐겁다. 지난 설 연휴에 갔던 후쿠오카 여행도 잊을 수 없다. 그곳이 일본의 따뜻한 남쪽인데도 우리가 갔을 땐 함박눈이 축복처럼 내리는 밤이었다. 온천이 있는 숙소에 드니 노천탕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풀어 오르고 내리는 눈을 삼키고 있었다. 다음날 금린호로 가는 길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즐비하여 없는 게 없던 것 같다. 줄서서 사먹는 고로케를 사들고 눈 내리는 길을 걷는 낭만은 오랜만이었다.

   내 친구 하나도 자식을 두지 못한 채 부부가 살고 있다. 전화라도 한 번씩 나누고 살 자식 없는 삭막함을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다. 어쩌다 내가 그 친구에게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는 말을 하면 여지없이 공박한다. 세상 벙어리가 다 말을 해도 너는 말하지 말라면서 말문을 닫게 만든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하느님께서 어찌 다 주시겠는가.

   아들은 손자 하나를 낳아 주었고, 막내딸은 외손자 둘을 낳아주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모이게 되면 제 새끼들 재롱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박수를 치며 야단들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복을 감출 수 없어서겠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어둡다. 그 행복을 얻지 못한 큰딸의 가슴이 얼마나 시리겠는가.

   나는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면서,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하기야 지금은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게 시대 풍조다. 그것이 어찌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사내 녀석만 둘을 낳아 기르는 막내딸의 힘든 하소연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남들처럼 보내야하는 학원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다 둘이 함께 잘 놀다가도 엉켜 붙어 싸우고 그런 전쟁이 없는 모양이다. 막내딸은 언니가 상팔자라며 힘들 때면 그만 울쌍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모습인데. 아니 자식에게 매여 평생을 괴로움 속에 사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나는 큰딸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기도한다. 강을 품은 듯 깊고 조용한 내 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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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멜로디 | 작성시간 16.03.24 강을 품은 듯 깊고 조용한 내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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