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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기의 방

품앗이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6.03.02|조회수59 목록 댓글 0

  품앗이

 

     김명규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분이 있다. 광주 중흥동성당의 아가다 할머니는 신실한 신자다. 독신녀인 딸과 둘이 살았다. 딸도 일자리가 없었으므로 할머니의 생활은 매우 궁핍하였다. 눈발처럼 하얗게 머리칼은 세었지만 그분의 따뜻한 미소는 항상 평화로웠다. 새 옷은 아니어도 깔끔함이 배어있는 차림새, 한 올 흩어짐 없이 빗은 단정한 머릿결은 보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칠순을 넘긴 연세에도 부지런하고 남의 어려운 일에는 모른 체하는 일이 없었다.

   세상을 떠난 교우가 성당 게시판에 공지되면 앞장서 장례식장으로 간다.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날라주고 설거지며 허드렛일을 마다않고 자기 집 일처럼 돕는 분이다. 자기 몸을 사리는 분이 아니었다. 아가다 할머니가 사는 동네에 귀신들렸다는 노인 한분이 있었다. 성당에 입교시키려고 언제부터 아가다 씨가 돌보던 할머니였다. 그 노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헛것이 보이고 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고 소리를 질렀다. 무서워 살 수 없다며 아가다 할머니만 찾는 것이다. 낮에는 양로원 노인들을 찾아가 목욕 씻기는 봉사를 하는 아가다 씨였는데 온몸이 지쳐있어도 귀신들린 할머니와 밤을 새워 기도하며 지켜주었다.

   비가 내려도 눈이 덮인 날에도 아가다 씨는 상갓집의 장지까지 따라가 유족들과 어려움을 함께하였다. 어느 날 미사가 끝나 성당을 나오는데 마침 아가다 씨를 만나서 나는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었다. 어제 세상을 떠난 교우 입관 예절이 있어 영안실에 가야한다며 나와 헤어졌다. 뒷모습을 보면서 성모님의 딸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일요일 미사가 끝난 후 나는 아가다 씨에게 동네 칼국수 집에서 간단한 점심대접을 하였다. 요즘 잇달아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있어 힘들다고 하였다. 너무 힘들면 좀 쉬어가며 봉사하는 게 좋겠다고 나는 권유하였다. 그 대답에 하는 말이 자신이 부지런히 미리 품앗이를 해놓아야 한다고. 딸 하나 있는 것이 나 죽으면 영안실 홀로 앉아 지킬 텐데 교우들이라도 와 주어야 되지 않겠냐고 한다.

   뭔가 어렵고 궂은 일이 생기면 아가다 씨를 찾는 교우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찾아가 함께 기도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분이다. 교우들은 아가다 씨를 작은 성녀라고 칭하였다. 아무리 신앙이 깊다 해도 그런 삶을 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양로원에서 노인들의 목욕시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노인들은 몸을 부리고 앉아 몸 전체를 다 씻기도록 옴짝달싹 안한다고 하였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겸손하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실천하는 게 봉사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보람을 나눔에서 찾는 사람이다. 아가다 씨는 가난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티를 내지 않는 분이다. 힘들어도 늘 평화롭게 웃는 분이다. 결코 남의 동정이나 연민 앞에서도 굽히는 분이 아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온기가 담겨 있는 분이다.

   며칠 전까지 성당에서 만났던 아가다 씨의 소천 소식이 알려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내 일을 제치고 영안실로 찾아갔다.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이 나를 맞았다. 품앗이를 간다며 그 많은 장례식장을 찾아가 유족을 위로하고 마칠 때까지 일손을 도왔던 분이니 많은 교우들이 조문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영안실은 조용하고 썰렁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딸 하나가 어머니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가난을 많이 타는 곳이 상가라고 한다.

 

   영국의 어느 백만장자가 무료 급식소를 찾아갔다. 자기 신분을 감추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봉사해 보려는 생각이었다.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정말 성심성의껏 쉬지 않고 일하였다. 백만장자는 그를 보며 감동하였다. 그리고 평생 급식소를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을 내어 주었다. 그는 말하였다. 남을 위해 일하는 것도 좋지만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휴식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며, 세계여행 티켓과 호텔 예약권을 내밀었다. 돈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하였다. 영국의 그 백만장자의 현명한 삶이 존경스럽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가게 되는 것일까. 내 자신에게 가끔 묻는 질문이다. 어렵지만 아낌없이 나누며 사는 사람이 있고 백 개를 가졌지만 하나도 쓰지 못하고 움켜쥐고 가는 사람도 있다. 결국 그대로 다 놓고 돌아간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선행뿐이라고 한다.

   품앗이로 장례식장에 왔어야 할 사람들은 모두 먼저 떠났기에 아가다 씨는 조문객이 없이 외롭게 떠나셨다. 그러나 그분은 가장 고귀한 선행을 품고 천국에 가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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