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와 사진과 음악

빗속에서 / 신 진(辛 進)

작성자徐無鬼|작성시간26.06.10|조회수35 목록 댓글 0
빗금으로지우면서

곧 장마철입니다. 오랜만에 빗속에 몸을 던져 나를 다시 만나는 여름 되시길>

빗속에서

신 진

비가 내립니다
오만 가지 소리를 빗금으로 거부하면서
오만 낯의 색을 빗금으로 지우면서
장대비 쏟아집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앉게 하는 목록들이며
전화기를 들었다 놓게 하는 사연들이며
시나브로 창밖을 지나가고 지나가는 이름 이름들
잊으라 잃으라 빗금으로 회오리로 씻어 냅니다

비안개 눈을 가려 앞뒤 분간이 없습니다
있는 수문 다 열려 모든 길이 묻힙니다
흔들며 휩쓸리며 소식과 얼굴들이 해체됩니다

습관성 각성과 판단의 뼈대
부서지고 폭발합니다
갖은 질료 갖은 온도, 형상과 색깔
삭고 바래고 물러터집니다

구석에 웅크렸던 가로수 이파리
지느러미 파닥거리며 새로운 유영에 나서고
감추어 두었던 눈물 묵주 알로 흩어져
망각의 지층으로 굴러갑니다

온갖 시끄러운 소리 머금은 심해의 고요처럼
오만 가지 불손을 반성하는 겸손처럼
고요한 소란
중저음(重低音)의 깊은 블랙홀

와중에 또렷하기도 해라
떵떵거리던 삶의 비루함이며
오오, 비루하게 굴러다니던 삶의 고아함이여

길이도 높이도 없이
모든 말을 잃은 내가 흘러갑니다
가야 할 길은 길을 지우고 무너뜨리고 흩고
길 아닌 길이 휘파람 불며 새로 열립니다

속옷 바람의 까까머리 동자(童子) 하나 저 앞에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앞장서 가고 있습니다
거리 유지하며 돌아보고
돌아보며 거리를 두고 빗속에서
오시라 오시라 눈웃음 띄우며
푸우 푸우 푸른 입김 꽃잎 날 듯 내뿜으며

26. 여름 계간 [다시올문학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