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시간
이 선생님.
소설을 지났는데 여태 눈 소식이 없습니다. 아직 가을이 유효한가요? 지난 주말에는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도 알고 계시지요? 한국시인협회의 가을 정기 세미나가 거기서 열렸습니다.
광주에서 시협 행사를 가졌던 게 벌써 8년 전인가 될 겁니다. 오랜만에 모처럼 저 혼자라도 가보리라 작정하고 갔습니다. 토요일, 서둘러 점심을 먹자마자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두 시가 채 못 되어 대구행 표를 샀습니다. 그때 살 수 있는 가장 빨리 출발하는 차표가 다섯 시 이십오 분 차였습니다. 그 전 시간대의 차표는 매진... 세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미리 차표를 사둘 걸 하는 후회가 가슴을 쳤습니다.
차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 얼마나 지루한지요. 대합실 안을 공연히 두 번쯤 휘돌아보고 그래도 시간은 남고. 대합실 건물을 나와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우 소년소녀 가장 돕기 음악회가 열리는 걸 구경도 하고, 그래도 시간은 많이 남았습니다. 쌀쌀한 바람결이건만 금빛 명주실처럼 고루 펼쳐지는 만추의 햇볕은 참 따스했습니다. 문득 육교 건너편의 한 귀퉁이에 PC라는 글씨가 보인 것 같았습니다. 나는 눈이 번쩍 떠지는 거였습니다.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이 더 남았기에 그리로 갔습니다.
그 PC방에는 아이들보다 주로 이십대의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저처럼 기다리는 시간을 죽이기 위한 여행객들인 모양입니다. 젊은이들 틈에 끼여 네오스톤 바둑을 두 판 두고 나니 출발 십 분 전. 그나마도 무료함을 덜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기다림에 대해서 낯설어하고 견디기 힘겨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먹는 것부터 그렇지요. 우리 집 두 딸애가 서울에 같이 살고 있는 것 잘 아시죠? 그런데 직장을 가진 이 애들은 이십대랍니다. 집에는 쌀도 있고 취사도구도 있어요. 그런데도 밥을 짓기 위해서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뜸들이는 시간을 기다리기 싫어서 이 애들은 아침을 굶거나, 햇반이라는 인스턴트 밥을 덥혀 먹기도 한답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못 견디는 거죠.
옷도 그러합니다. 사실 저는 제 비표준형의 체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와이셔츠며 양복을 맞춰 입는 형편입니다. 양복점에 가서 신체의 치수를 이리저리 줄자로 재고 옷감의 색깔을 고르고...... 그게 귀중한 시간의 낭비일까요? 아무튼 그러고도 사흘쯤 뒤에 양복 가봉을 하러 찾아가야 하며 또 한번 찾아가야만 제 몸에 맞는 양복을 비로소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애들은 불행중 다행으로 날씬한 표준형의 체구들이라 이 아비의 고충은 전혀 모릅니다. 그냥 백화점에서 몸에 맞는 걸 골라 사 입으면 그만이지요. 그러나 맞춤옷은 몇 해를 입어도 질리지 않고 기성복처럼 쉬이 낡아버리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 교무실에는 커피와 설탕과 크림이 갖춰져 있고, 바로 가까이에는 순간온수기도 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타서 더운물을 부어 숟갈로 저어야 하는 단 몇 분의 수고가 싫어 이백원 짜리 커피자판기에서 간단히 한 잔의 커피를 뽑아 마십니다. 커피 잔을 씻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 마신 종이컵이야 그냥 쓰레기통에 던지면 되니까요.
여유롭게 기다리는 일, 그건 충실한 성숙을 위한 여백의 시간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삼십 년 전, 기억 저편의 일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한여름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날 아침이었습니다. 읍내 학교 선생님들만 모아서 하는 훈련인데, 집합 장소에 모이니까 다시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뀐 장소로 땀을 흘리며 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소요되리라는 생각에 다들 투덜거렸습니다. 그 때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나보다 젊은 김동수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가니까아..."
그 말에 다들 웃었습니다. 그럭저럭 훈련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고, 오후 다섯 시만 되면 훈련은 끝나게 되어 있으므로 그게 무슨 걱정이냐는 거였지요. 진리가 뭐 뾰족한 걸까요?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그게 진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불치의 병으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일 년을 채 더 못 사는 삶이 허여되어 있을 뿐인 그는 매사에 대범하고 태연했습니다.
그 해에 그는 저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김추자의 노래 '늦기 전에'란 곡에 가사를 '죽기 전에'라 고쳐서 큰 소리로 처연히 노래하던 그가 생각납니다. 죽음을 미리 알면 사람은 그와 같이 마음 씀씀이의 오지랖이 넓어지는 건지요.
대구에 도착하니 밤 아홉 시가 넘었고, 연회장을 찾아가 보니 종업원들이 의자를 치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이 선생님.
소설을 지났는데 여태 눈 소식이 없습니다. 아직 가을이 유효한가요? 지난 주말에는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도 알고 계시지요? 한국시인협회의 가을 정기 세미나가 거기서 열렸습니다.
광주에서 시협 행사를 가졌던 게 벌써 8년 전인가 될 겁니다. 오랜만에 모처럼 저 혼자라도 가보리라 작정하고 갔습니다. 토요일, 서둘러 점심을 먹자마자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두 시가 채 못 되어 대구행 표를 샀습니다. 그때 살 수 있는 가장 빨리 출발하는 차표가 다섯 시 이십오 분 차였습니다. 그 전 시간대의 차표는 매진... 세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미리 차표를 사둘 걸 하는 후회가 가슴을 쳤습니다.
차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 얼마나 지루한지요. 대합실 안을 공연히 두 번쯤 휘돌아보고 그래도 시간은 남고. 대합실 건물을 나와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우 소년소녀 가장 돕기 음악회가 열리는 걸 구경도 하고, 그래도 시간은 많이 남았습니다. 쌀쌀한 바람결이건만 금빛 명주실처럼 고루 펼쳐지는 만추의 햇볕은 참 따스했습니다. 문득 육교 건너편의 한 귀퉁이에 PC라는 글씨가 보인 것 같았습니다. 나는 눈이 번쩍 떠지는 거였습니다.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이 더 남았기에 그리로 갔습니다.
그 PC방에는 아이들보다 주로 이십대의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저처럼 기다리는 시간을 죽이기 위한 여행객들인 모양입니다. 젊은이들 틈에 끼여 네오스톤 바둑을 두 판 두고 나니 출발 십 분 전. 그나마도 무료함을 덜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기다림에 대해서 낯설어하고 견디기 힘겨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먹는 것부터 그렇지요. 우리 집 두 딸애가 서울에 같이 살고 있는 것 잘 아시죠? 그런데 직장을 가진 이 애들은 이십대랍니다. 집에는 쌀도 있고 취사도구도 있어요. 그런데도 밥을 짓기 위해서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뜸들이는 시간을 기다리기 싫어서 이 애들은 아침을 굶거나, 햇반이라는 인스턴트 밥을 덥혀 먹기도 한답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못 견디는 거죠.
옷도 그러합니다. 사실 저는 제 비표준형의 체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와이셔츠며 양복을 맞춰 입는 형편입니다. 양복점에 가서 신체의 치수를 이리저리 줄자로 재고 옷감의 색깔을 고르고...... 그게 귀중한 시간의 낭비일까요? 아무튼 그러고도 사흘쯤 뒤에 양복 가봉을 하러 찾아가야 하며 또 한번 찾아가야만 제 몸에 맞는 양복을 비로소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애들은 불행중 다행으로 날씬한 표준형의 체구들이라 이 아비의 고충은 전혀 모릅니다. 그냥 백화점에서 몸에 맞는 걸 골라 사 입으면 그만이지요. 그러나 맞춤옷은 몇 해를 입어도 질리지 않고 기성복처럼 쉬이 낡아버리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 교무실에는 커피와 설탕과 크림이 갖춰져 있고, 바로 가까이에는 순간온수기도 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타서 더운물을 부어 숟갈로 저어야 하는 단 몇 분의 수고가 싫어 이백원 짜리 커피자판기에서 간단히 한 잔의 커피를 뽑아 마십니다. 커피 잔을 씻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 마신 종이컵이야 그냥 쓰레기통에 던지면 되니까요.
여유롭게 기다리는 일, 그건 충실한 성숙을 위한 여백의 시간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삼십 년 전, 기억 저편의 일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한여름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날 아침이었습니다. 읍내 학교 선생님들만 모아서 하는 훈련인데, 집합 장소에 모이니까 다시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뀐 장소로 땀을 흘리며 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소요되리라는 생각에 다들 투덜거렸습니다. 그 때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나보다 젊은 김동수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가니까아..."
그 말에 다들 웃었습니다. 그럭저럭 훈련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고, 오후 다섯 시만 되면 훈련은 끝나게 되어 있으므로 그게 무슨 걱정이냐는 거였지요. 진리가 뭐 뾰족한 걸까요?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그게 진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불치의 병으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일 년을 채 더 못 사는 삶이 허여되어 있을 뿐인 그는 매사에 대범하고 태연했습니다.
그 해에 그는 저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김추자의 노래 '늦기 전에'란 곡에 가사를 '죽기 전에'라 고쳐서 큰 소리로 처연히 노래하던 그가 생각납니다. 죽음을 미리 알면 사람은 그와 같이 마음 씀씀이의 오지랖이 넓어지는 건지요.
대구에 도착하니 밤 아홉 시가 넘었고, 연회장을 찾아가 보니 종업원들이 의자를 치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