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등단을 반납합니다 / 차주일
마흔 넘은 나이에 suicide 실행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편지 한 통 쓰기 위해 진심을 모으고 있을 때였다. 생각이 수없이 생과 사를 왕래했다. 이즈음, 여행 중 우연히 시를 알게 되었고... 여행을 통솔하던 분께 감사의 편지 한 통을 보냈고... 그분이 내게 “문학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물어왔다. 나는 “예? 문학이라뇨.” 이렇게 대답한 것인데... 시가 내 생물학적 목숨을 구원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당시 문학이 뭔지 전혀 몰랐다. 오직 리얼리티와 감동만 완성하면 시가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때 적지 않은 습작(작품이 아닌, 작품이랄 수 없는)을 했고... 그중 열셋 편을 골라 두 포맷으로 나눠 여기저기 신문사 ‘2003 신...춘문예’에 투고했는데... 중앙지 한 곳, 지방지 한 곳에 최종심에 든 것을 타인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심사평을 전복하려고 의도적으로 쓴 졸시가 《현대문학》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 시를 만나고 몇 개월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시는 내 삶의 대부분을 바꿔놓았다. 당연히, 아니, 간절하고 절실하게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내게 시는 의무를 외면하는 다른 삶을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11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가족의 생계는 아내의 몫이었다. 2010년 7월 1일부터는 아예 홀로 나와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심정은 무한의 고통을 견딘 산물이다. 딸 아들 셋은 중요한 시기에 학업에 전념할 수 없었고... 당연히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공공연히 돈 많은 남자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고, 실로 돈이 없어 험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 사귀는 것을 포기했다. 참으로 많은 일을 어떻게 옮기겠는가... 왜 내가 이를 모르겠으며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겠는가. 하지만 시가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그저 살아 있고 싶어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자기 최면의 완성’(종교보다 우월한)을 시를 통해서 이루고자... 버둥대며 살아가고 있다.
2003년 5월 12일 오전이었다. 전화기 속에서 “차주일 선생님 맞으십니까?” 《현대문학》의 당선 통보를 받았다. 나는 당장 조그만 난 화분 하나를 사 들고 《현대문학》사무실로 찾아갔고... 40년 넘는 동안 이렇게 찾아온 사람은 나 혼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줄곧 《현대문학》을 자랑스러워했으며... 《현대문학》 또한 내가 시인으로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사랑하고 너일 수 없는 《현대문학》이 적잖은 구설에 힘들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집을 낯 뜨겁게 찬양한 이태동 교수의 글 게재와 이후 정치적 편향성을 기준 삼아 몇몇 소설가와 평론가의 작품 게재를 거부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로 해석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이 모두 정권에 잘 보이려는 의도적 기획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시를 지으며 몇 가지 주제적 관점을 갖고 있다. 위와 같은 행위의 이면과 배후를 관조하는 것도 그중에 하나이며, 실제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주제적 관점이다. (언제 어떤 형식으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꼭 있었으면 좋겠지만... 텔레비전이 내게 한 시간만 허락해 주면... 시민의식과 시민의 의무 그리고 국민에 대해...) 이런 주제와 내 삶을 바꾼 사람으로서 나는 고민 끝에 나의 모지 《현대문학》에 등을 돌리기로 했다. 문단에서 무적자에게 청탁과 지면을 주지 않는 관습을 따른다면 할 말이 많아 시를 쓰는 나는, 살기 위해 시를 써야 하는 나는 절필하겠다.
《현대문학》귀중
귀 《현대문학》 2003년도 시부분에 <가족사진 걸기> 등으로 등단한 차주일입니다. 작금의 사태와 관련하여 ‘이면과 배후’를 주제적 관점으로 시를 써온 제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앞으로도 시를 믿고 섬겨야 하겠기에 부득이 귀 《현대문학》등단을 반납하오니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부탁합니다. 문예지 역사에 유례없는 700호의 전통과 존경심을 이른 시일 안에 회복하여 주시길 앙망합니다.
2013년 12월 13일
차주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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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무지개 작성시간 13.12.17 고뇌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차주일 시인님께 격려와 존경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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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일보일획 작성시간 13.12.21 NAVER와 두 번 소통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네이버 인물정보에서 프로필을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데뷔(등단) 정보 삭제를 요구했다. 그리고 수정되었다. 이제 나는 데뷔 경로를 쓰지 않게 되었다. DAUM에도 부탁했는데, 답이 없다. 나는 《현대문학》의 역할과 역사에 대해 대한민국 시인으로서 여전히 고맙고 자랑스럽다. 예술위원회로 파견 온 필리핀, 몽골, 인도 예술가(행정가)들에게도 한껏 자랑한 적도 있다. 결호 없이 700호를 발간하는 것. 확실히 모르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훈장 수여 감이다. 나는 《현대문학》이 가치관과 정체성을 곧추고 다시 대한민국 문학을 생동하게 하는 순기능을 담당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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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일보일획 작성시간 13.12.21 그렇게 해주길 진심 기원한다. 우리 문단에는 '현대문학 사태'보다 심각한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다. - 앞으로도 - 일 것이다.) 그런데 그냥저냥 방관 되어왔다. 관용이나 관대와는 분명 다른 타협과 비굴 그리고 이기심 때문이었다. 이번 《현대문학》의 신산으로 향후 이와 같은 일이 어디에서 누구로 인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같은 조척으로 꾸짖어야만 하는 의무를 갖게 되었다. 이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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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일보일획 작성시간 13.12.21 《현대문학》 등단을 반납한 나는 최소한 꾸짖을 자격이 있다. 스스로 부여한 자격에 비례하여 더욱 염결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것은 내가 등단을 반납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현대문학》에게 충고한 많은 사람의 향후를 잘 지켜볼 것이다. 해당 일부 인사들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중에는 꾸짖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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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꾼♪ 작성시간 14.01.21 차주일 시인님의 의기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무릇 시인이라면 문인이라면 이정도의 뱃심과 개밥그릇 차듯이 아닌 것은 찰 줄도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시인님들이 차주일 시인님처럼 이런 의기를 뜨겁게 가지고 있다면 오늘 문단의 여러가지 문제의 그늘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