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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 동시집 : 어이없는 놈 / 김개미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4.07.27|조회수841 목록 댓글 0

어이없는 놈 (외 4편)

 

   김개미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키가 많이 컸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많이 크지 않았다는 거야

자기는 원래부터 컸다는 거야

 

말이 많이 늘었다고 말해 줬더니

지금은 별로라는 거야

옛날엔 더 잘했다는 거야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자전거 가르쳐 줄까 물어봤더니

자기는 필요 없다는 거야

자기는 세발자전거를 나보다 더 잘 탄다는 거야

 

 

 

옛날 사진

 

 

 

앨범을 뒤적거리다

배꼽이 빠질 뻔했다

기저귀 하나 달랑 찬

못생기고 우락부락한 아기가

양손에 과자를 든 채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우렁차게 울어젖혔다

오빠의 약점을 찾아낸 것 같아

신이 나서 낄낄거리는데

어이쿠야, 그게 나라나

 

 

 

상장

 

 

 

아빤,

으스러지게 나를 껴안고

흔들어 댈 테지

내 코에 침을 바르며

끽끽거릴 테고

머리통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거야

내 등을 북처럼

두드려 댈 테고

숨이 넘어갈 때까지

발바닥을 간지럽힐 거야

결국 나를,

사냥한 짐승처럼 거꾸로 들고

집 안을 뛰어다니겠지

이걸 내밀기만 하면

 

 

 

웅덩이

 

 

 

나한테 침과 담배꽁초

들끓는 모기떼뿐이라고?

 

얼굴 말고 가슴을 봐

난, 별을 껴안고 있어

 

 

 

나의 꿈

 

 

 

나의 꿈은 사육사.

포악한 사자를

여러 마리 기르는 것.

전봇대만한 기린과

눈 맞추고 얘기하는 것.

사과 같은 원숭이 똥꼬를

수박같이 키워주는 것.

토끼 여섯 마리를 뚝딱 먹어치우는

비단구렁이를 목에 감고 노는 것.

나의 꿈은 사육사.

얼룩말 똥 정도는 맨손으로 집는 것.

 

 

 

                        —동시집  『어이없는 놈』(2013. 8)에서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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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미 / 1971년 강원 인제 출생.  2005년 《시와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앵무새 재우기』. 동시집 『어이없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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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대상 수상작 『어이없는 놈』에 담긴 다양한 시적 존재의 씨앗들

 

 

   제1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원로 동시인 권오삼은 심사평에서 “아이다운 상상력을 때로는 엉뚱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개성 있는 문체 속에 군더더기 없이 밀어 넣어 보인 솜씨가 동시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에너지로 작용한다.”고 평했다.

   시인 안도현은 “김개미의 동시는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힌다. 감각이 유쾌하고, 문체는 간결하고, 호흡은 가파르게 느껴질 정도다. 이것은 그가 발랄한 동심을 표현하기에 썩 좋은 재능을 지녔다는 것을 말한다.”고 밝혔다.

   평론가 이재복은 김개미의 동시가 “아이들이 서 있는 자리로 내려가 아이들 마음 높이보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자리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며 얻은 언어”라는 점을 가장 큰 미덕으로 꼽았다.  “작품을 읽는 아이들과 작가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가까운 것은 김개미 동시의 가장 뚜렷한 미덕이다. 아이들 안에서 잠자는 언어를 다시 되살려내고 아이들 안에서 뛰어놀고 있는 언어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재복은 이렇게 말하며, 김개미의 작품들 속에 “그야말로 작가가 삶에서 발견한 존재의 다양한 씨앗들이 들어 있다”고 짚었다.

 

   “할아버지는 길을 가다 구멍을 발견하면 손도 넣어 보고 머리도 넣어 보고 또 어떤 때는 지겟작대기로 쑤셔 보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사랑방에 누워 있으면 저는 할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장길산』과『임꺽정』을 읽었습니다. 입이 바짝 마를 즈음, 할아버지는 마루로 나가 커다란 송판 하나를 들어냈습니다. 그러고는 온몸에 주렁주렁 거미줄을 달고 한참 만에야 올라와 편지지를 내밀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마다 저는 엄마였고 아빠였고 친구였고 선생님이었고 세계였던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돌아가신 지 30년도 더 된 할아버지가 제 가슴속 계단에서 걸어 올라와 제게 편지지를 내밉니다.” _수상 소감 중에서

 

   인제군 지명유래사전에도 등장한다는 괴짜 동굴 탐험가를 할아버지로 둔 손녀답게 시인의 상상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색깔을 품고 있다. 군인으로, 간호사로, 교사로, 연극배우로 살아온 시인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가 가꾼 다양한 존재의 씨앗들이 싱싱한 동시가 되어 아이들 밥상에 소복이 자리잡았다.    _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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