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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_ 해변에서(외9편)/김유섭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5.01.23|조회수560 목록 댓글 0

해변에서

  

    김유섭

 

 

물이 끓고 있었다

 

마른 나무 가지를 모아 피운 불이

옛이야기로 타올랐다

 

해변에서 주운 게들의 살이

익으면서 풍겨오는 냄새,

 

‘맛있겠다’ 나에게

내가 속삭여보았다

 

바람도 없는 밤하늘에 별이

눈물을 머금은 채 날아다녔다

 

어디에서 멀어진 것일까

나는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한낮 햇살의 손길로

모래가 나를 감싸주었다

 

귓속으로 파도소리가 밀려왔다

그러다, 멀어져 갔다

 

전학 간 아이

 

      김유섭

 

 

오래 숨을 참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속에서는

먼 곳의 소식

세상의 온갖 이야기

다 들린다고 했는데

 

북극성 은하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몸이 떠오르려고 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가쁘게 숨을 쉬었다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떠 보았지만

냇물만 흘러갈 뿐

그 아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너에게 불러주던 노래

 

      김유섭

 

 

사격을 마치고 연병장으로 가는 길옆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이파리들

5월, 팔랑거리는 물결이었다

 

땀에 젖은 군복 속 내 몸이 녹색으로 물들까봐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마음마저 녹색이 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는 어디에서 웃고 있을까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영화관 휴게실에 앉아 오지 않을 얼굴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훈련병 줄 속에 서서

하늘에 구름 숫자를 세었다

군가를 부르면서

 

너에게 불러주던 노래를 기억해내고 있었다

식기를 씻고 불침번을 서고 새벽 기상 나팔소리에 눈을 뜨면서

나는 지난 밤 꿈속에서처럼

아아 너에게는 들리지 않을

 

그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었다

 

  

그래도 봄이었다

 

    김유섭

 

 

화장장은 새벽부터 붐볐다

뒤편 산자락에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화로에 불이 붙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울었다

죽은 사람은 불 속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상조회 사람이 “어머니 불났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라고

소리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따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시들해졌다

 

사람이 타는 시간은 삼십분에서 한 시간이라고 했다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는 일분이었다

 

걸어온 발자국이라고 아니 어머니라고

뼛가루가 든 작은 나무상자를 끌어안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늦었다며 서둘러 매장지로 가야 한다고

서두르는 몸짓들이 일렁거렸다

 

진달래 구경 가자고 어머니,

아침 햇살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불러보았다

봄이었다

 

산책

 

   김유섭

 

 

오후의 햇살이 내 손을 잡아요

걸어볼까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어디까지 가보아야 알게 될는지요

 

당신의 향기조차 기억나지 않는군요

소곤거리던 목소리 지워져 버렸구요

적막뿐인 골목을 돌아 광장 의자에 앉아요

 

이 거리에 사는 오래된 바람이 말을 걸어오는군요

내 부스러기를 먹으러 달려오는 비둘기들,

비둘기 그림자들,

 

이토록 찬란한 도시의 음악 속에서

내가 사라지는 생각을

천천히 가위로 잘라 편집해야만 해요

 

발끝을 짓누르는 붉은 노을

어디인가로 이제는 돌아서야 한다는군요,

오늘도 여기까지 오고 말았답니다

 

찻집, 봄눈 겨울비

 

   김유섭

 

 

 다시 봄눈이 지나갔다 버스 정류장 옆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서 있었다 발자국이었을까 커다란 이파리 흔적이 기억 속에 찍혀있다 누구나 소음이 되어 흘러 다니는 도시

 

 계단을 올라 2층, 흘러간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림자들, 일곱 개의 테이블과 나무의자, 분주한 쓸쓸함 위에 누군가 쏟아낸 “사랑해”라는 낙서

 

 창밖, 버스에서 내린 여학생들이 깔깔깔 웃고 떠드는 소리는 해가 바뀌어도 들려왔다 어느 자정 무렵, 가로등 아래 겨울비로 지나가는 당신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적 있다

 

  

새끼손가락 약속

 

    김유섭

 

 

천 개쯤일까, 만 개쯤일까

내 발등에 떨어진 너는,

빗방울 노래 울려 퍼지는 들판

그 젖은 휘파람 속에

나는 맨발로 서 있었지

 

귀머거리 장님,

나를 뭐라고 불러도 좋아

오지 않는 너

길의 끝을 바라보았지

뒤꿈치 세워들고

 

숲의 나무를 물들여 오는 밤 따위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어,

불길처럼 타오를 뿐이었지

빗방울 까맣게

천둥처럼 쏟아져 내리던 그날

 

   

<제 5회 김만중 문학상 당선 작품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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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김만중문학상 공모 시(시조)부문 심사소감>

 

   올해도 김만중 문학상공모 시 (시조) 부문 응모자는 많았다. 뿐만 아니라 결선에 오른 작품의 수준도 다른 지역의 당선작들에 비하여 수준이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에서 공모하는 다른 문학상에 비하여 많은 상금 탓도 있겠으나, 5년을 시행에 오는 동안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선에 오른 작품은 시 175명의 357편 가운데 15명과 시조 22명 197편 가운데 1명으로 총 16명이었다. 시 부문 심사위원 3명이 각각 5명씩, 시조 심사위원 1명이 1명을 골랐다. 11명의 작품을 놓고 네 명의 심사위원이 장시간 논의하였다.

   우선 지금까지 4회 동안 반복된 김만중의 삶이란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작품의 참신성과 완성도 그리고 작품 전체의 수준을 고려하여 많은 가능성을 가진 작품을 고르겠다는 점에서 4명의 심사위원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결과 시 5명 정도로 압축을 하여 다시 4명의 심사위원이 금, 은상의 수준에 육박한 작품을 고른 결과 <해변에서>외 9편(김유섭)의 경우 4명 전원이 인정하고, <멸치 복음(福音)>외 6편(한승엽)을 2명이 인정하고 나머지 1명을 1명이 인정하는 순서로 나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금상을 <해변에서>외 9편으로 정하고 은상으로, < 멸치 복음(福音)>외 6편으로 결정하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투고자를 확인한 결과 특히 지역 문학상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금상 작품과 은상 작품은 각각 개성적인 면을 확연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시인들의 나이는 어떠한지는 알 수 없으나 김유섭은 젊고 건강한 어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감정이 절제된 부분이 많은 이미지의 전개 과정이 특색으로 등장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이 개입된 읽기가 필요한 시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들의 분위기가 건조하지는 않다.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시적 정경도 마치 한지에 물이 드는 것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감동을 준다. 특히 <그래도 봄이었다>는 죽은 어머니의 화장 광경을 지켜보는 과정인데도 그 비극적 정경을 마지막 연에서 승화시키고 있다.

   화자가 직접 말하는 담화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 화자의 시적 상황이 각각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구조도 단절되지 않아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다. 앞으로 이러한 시편들로 시집이 엮어진다면 독자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한승엽의 어조는 나이가 들어 있으며, 어떤 작품에서는 마치 김만중 그것도 절해고도에 갇힌 노인이 시적화자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당선작들에서 보이는 노골적으로 김만중의 생애를 이입시키지 않은 점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시인은 바닷가나 섬에 살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였는데 시인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니 그 짐작이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도 건강하고 낙천적이기보다 비극적이고 절망의 그림자 마저 드리워져 있다. 그러면서도 인식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멸치 복음(福音)>은 제목에서 일종의 역설이 보이기도 하지만 고기 가운데 가장 개성이 없는 ‘멸치’를 가지고 이러한 인식과 상상력을 전개하였다는 데서 시인의 역량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한 시인의 화자는 시 속에 들어가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느러미론(論)>같은 데서는 평범한 사물에다 관념을 이입시키는 솜씨도 보여주고 있다. 다소 무거운 시편들이지만 병적인 절망이나 비극으로 떨어지지 않고 진지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시편들 역시 시집으로 엮어지면 한국시단의 개성적인 시집이 될 것이다.

 

  *심사위원 : 문효치, 양왕용, 박태일, 원은희(시조)

 

* 덧붙이는 말 _ 2014년에 시행한 제 5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상금 5천만원)은 소설과 시 부문이 경합을 벌이다가 강우식 시인의 연작 장시집 『마추픽추』에 돌아갔고, 시 부문 금상(상금 1천5백만원)은 위와 같이 김유섭 시인이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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