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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땀 냄새와 피 냄새가 난다 _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5.05.14|조회수944 목록 댓글 0

작품에서 땀 냄새와 피 냄새가 난다

《내 심장을 쏴라》《7년의 밤》《28》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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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변희원  /  사진: 조선 DB

 

 

  작가 정유정(49)은 투병을 하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간호대학에 진학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문과에 진학을 하고 싶었지만, 장녀로 생계를 책임지려면 어쩔 수 없었다. 간호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정신병동에서 실습 수업을 했다. 학생이 환자 한 명을 전담해서 돌보며 관찰을 하고 보고서를 써내는, 4학점짜리 수업이었다. 정유정이 맡았던 환자는 3선 국회의원의 아들로 정신분열증과 자폐증을 앓고 있었다. 한 달 내내 환자를 정성스레 돌보며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는 정유정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쓸 게 없자 정유정은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이미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던 그는 ‘나중에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면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이자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와 소설 속 주인공 ‘수명’(여진구)은 그렇게 탄생했다.

 

수명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는 사건을 겪으면서 정신병원을 드나든다. 병원의 통제와 지침을 잘 따르던 그는 스물다섯 살에 수리희망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동갑내기 승민(이민기)을 만난다. 재벌의 아들이지만 이복형제들의 유산 상속 다툼 때문에 폐쇄 병동에 갇힌 승민은 간호사 최기훈(유오성)과 보호사 점박이(박두식)의 감시를 피해 병원을 나갈 기회를 노린다. 승민이 병원 밖을 나가기 위해 날뛰는 모습을 본 수명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게 되고, 그렇게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하루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분투한다.

대학 때 이미 생각해둔 캐릭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정유정은 작업을 두 번이나 중단했다. 승민이 병원을 필사적으로 나가려는 이유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


정유정은 “내 시력이 독수리다. 밤눈은 어찌나 밝고, 동체시력까지 좋다. 안 보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승민의 심정과 상황을 이해 못 하겠더라. 그래서 그의 행동과 캐릭터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고 했다.

“저희 집 뒤에 삼봉산이 있어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250m짜리 낮은 산이죠. 거길 야간 산행을 해볼 생각이었어요. 남편이 따라가겠다는 걸 거부하고 플래시도 안 갖고 갔어요. 무서우면 그걸 켜게 될 게 뻔하니까요. 해가 질 무렵 올라갔더니 두 번째 봉우리에 오를 때쯤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완전히 깜깜해졌어요. 날이 흐리니까 별빛, 달빛도 다 가려져서 제 손도 안 보였어요. 그래도 몇 년 동안 다닌 산이라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산을 울리는 산짐승 소리에 놀라서 구르고 엎어지면서 뛰어내려왔어요. 알고 보니 산 밑의 놀이동산에 있는 호랑이가 우는 소리였죠. 그날 밤 새벽 네 시에 깨서 승민이 즐겨 듣는 트위스트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들썩이며 글을 썼어요.”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

정유정 작가의 작업실.
정유정은 뭐든지 부딪히고 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땀 냄새와 피 냄새가 난다.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묘사까지 더해져서 김이 나는 뜨거운 칼날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그 칼을 목표점에 겨누고 한번에 푹 찔러 넣는 검사(劍士)다. ‘사건이 영화적이다’ ‘시각적으로 강렬하다’는 평을 듣는 그의 작품들은 영화계에서도 인기가 많다. 《내 심장을 쏴라》를 비롯해 베스트셀러인 《7년의 밤》과 《28》은 출간이 되자마자 판권이 팔렸다. 인터넷에서는 《7년의 밤》 등장인물들을 어떤 배우가 맡아야 하느냐의 문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웹툰이나 웹소설이 원작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작가의 작품 세 편이 영화화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영화계에서 사랑받고 있지만, 정작 정유정은 “영화나 드라마를 별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계의 짝사랑인 셈이다.

“몇 년간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매체를 거의 접하지 않았어요. 최근 몇 년간 본 작품이 손에 꼽아요. 《28》을 쓸 때 개썰매가 나오는 영화 한 편, 장준환 감독님과의 대담 때문에 〈화이〉란 영화 한 편, 그리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의무적으로 봐야 했던 영화 몇 편 정도예요. 영상을 보면 그 프레임에 딱 갇혀버려요.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방법으로 문을 연 장면이 영화에 나오면 소설을 쓸 때도 거기에 갇히거든요. 인물의 감정도 마찬가지예요. 정유정이 《내 심장을 쏴라》를 쓰면서 상상에만 의존했던 것이 바로 승민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가는 장면이다. 당시에는 사진만 보고 ‘안나푸르나는 이럴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그는 “안나푸르나에 가긴 갔다. 2013년에”라고 했다. 2013년이면 그가 《28》을 끝냈을 무렵이다.

“《28》을 마치고 나서 고갈된 느낌이었어요. (그는 컵을 손으로 막으면서) 슬럼프는 뜨거운 게 갇혀 있는 거라서 (손을 떼면서) 그걸 이렇게 풀어주면 되는데, 그땐 갇혀 있을 것도 없이 제 안이 텅 비어버렸죠. 예전의 작업노트를 보는데 수명이 어떤 기분으로 세상에 나갔는지 묘사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 부분을 찢어서 유리병에 담아서 안나푸르나로 갔어요. 17박18일 동안 산을 종주하면서 고산병으로 죽을 뻔했는데 승민이 봤다고 묘사한 ‘별들의 바다’를 계속 못 봤어요. 그러다가 18일째 되는 날,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높다는 봉우리 아래서 잠을 자는데, 빛 때문에 깼어요. 빙벽이 별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죠. 신발을 찾을 겨를도 없이 맨발로 나가서 유성우를 봤어요. 그 별들이 다 넘어가고 동이 틀 때까지 서 있었어요. 소름이 끼쳤죠.”

정유정 작가의 작업 노트.
그는 안나푸르나에 다녀온 뒤 900km에 달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40일 동안 다녀왔다. 170cm의 키에 늘씬하고 탄탄한 정유정의 몸은 군더더기 없고, 늘어지는 구석이 없는 그의 작품과도 많이 닮았다. 2013년 만났을 때 복싱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수영을 한다고 했다. 복싱을 계속 하다가는 “몸에 근육이 너무 붙을 것 같아서”란다. 그는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이다. 작가가 힘이 없으면 소설도 힘이 없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산적을 만나 물리치고 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내가 힘이 없으면 주인공이 그냥 그 산을 돌아가게 된다. 힘이 없고 지리멸렬해진다”고 했다.

“성격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지구력이 강한 편이라 달리기와 복싱을 주로 했어요. 그거 하고 나면 고갈된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거든요. 승민이 병원에서 샌드백을 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건 제가 샌드백을 오랫동안 때려왔기 때문이에요. 무명 때부터 복싱을 했던 이유가 있어요. 등단하기 전, 2001년에 책이 나왔는데 전혀 팔리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공모전에는 계속 떨어져서 패배주의와 분노에 가득 차 있었고요. 공모전에 10번째 떨어졌을 때 절망하다 못해 분노가 폭발해서 베란다에 남편이 달아준 샌드백을 치기 시작했어요. 해가 진 줄도 모르고 밥도 안 해놓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란 심정으로 계속 쳤죠. 집에 들어온 남편이 불을 켜면서 ‘자네 뭐해?’라고 물을 때 정신이 들고 보니 손이 다 까져서 팔까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저녁을 먹는데 남편이 묻더군요. ‘그렇게까지 글이 쓰고 싶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죠.”

복싱과 안나푸르나처럼 작가에게 힘을 줬던 것은 모두 승민이 좋아하는 것이다. 승민은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안나푸르나에 가겠다고 우긴다. 그것은 자살에 가까운 행위다. ‘자살’이란 해석에 정유정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승민에게 있어 삶이란 ‘나로서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인생을 살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승민을 통해 저는 제 인생을 상대해볼 힘을 얻었어요. 엄마가 아프고 동생들을 돌보느라 제 인생을 살 수 없었던 그 시기에 제 어깨를 두들겨준 무언가였어요. 어깨에 있는 짐을 덜어주진 않아도 계속 나가라고 등을 두들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버티는 삶을 사는 청춘이 많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내 심장을 쏴라》가 어깨를 두들겨주고 ‘힘내’ 라고 말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어느 세대에서나 청춘은 불안하고 힘들어요. 그것을 버텨야지만, 살아내야지만 합니다.”

 

정유정 | 1966년 전남 함평 출생. 기독간호대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직으로 근무했다.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5천만원 고료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2009년《내 심장을 쏴라》로 1억원 고료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 2011년 《7년의 밤》을 발표했고, 장편소설 《28》은 주요 언론과 서점에서 201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큰 화제를 모았으며, 지금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_ 톱클래스 2015년 04월

                                http://topclas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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