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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구스타프 클림트의 분리주의, 벨라 바르톡의 황금분할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5.11.04|조회수7,861 목록 댓글 0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루이 알튀세르, 장 보드리야르, 미셸 푸코와 같은 프랑스 68혁명세대를 계승한 철학자이다. 현대 해체론은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1967년)와 더불어 시작된다. 이 책은 루소와 루소를 자신의 인류학적 연구에 영감을 불어넣는 스승으로 여긴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비판적 연구이다. 데리다는 이 책에서 루소의 저작물 중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인간 언어 기원론》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그 텍스트의 확장된 의미 체계를 풍요롭게 복원해내고는, 곧이어 그것을 전복해버린다. 그러고는 의미가 전복된 자리에다 자신의 이론을 채워 넣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이 해체의 전략이다. 이것이 자크 데리다의 해체의 시작점이다.

 

해체 또는 탈구축이라는 용어는 하이데거가 사용한 독일어 단어 destruktion(파괴)을 보다 철저하게 개념화해서 만들어 낸 신조어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해체란 존재 망각의 역사로서의 형이상학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해체는 기존의 사유 체계를 요동치게 만드는 장소 이동의 힘이며, 전통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질서를 차단시키고 허물어뜨리는 힘, 또는 탈침전화이다. 이렇게 볼 때, 해체는 기존의 사상과 전통에 지각 변동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사유의 지진이다.

 

고대 플라톤 이후 근대까지 서구철학은 '동일성'의 철학이었다. 재현주의로도 불리는 동일성의 철학은 개념과 표상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해석한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는 차이 생성의 장이며, 따라서 동일성의 철학은 차이를 배제하고 억압하게 된다.

 

 

 

황소 머리(Bull's Head)》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942년. <출처 : pablopicasso.org>

 

얼핏 보면 황소 머리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자전거 핸들에 안장을 붙여놓은 것이다. 데카르트나 근대의 사상가들은 완전한 지식체계를 꿈꿨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머릿속에 체계를 먼저 정해놓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를 특히 들뢰즈는 '표상주의' 혹은 '재현주의'라고 부른다. 표상주의는 현실의 모든 존재에 잠재해 있는 저마다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목소리'를 억압한다. 데리다와 피카소의 사상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표상적 사유에 대한 반발과 그러한 사유에 의해 억압된 차이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려는 기획이다. ]

 

 

[ 클랭 파랑(IKB 191) 이브 클랭(클라인), 1962년<출처 : wikipedia>

 

클랭은 군청색 계통의 '단색' 회화에 평생 집착했다. 그리고 1957년에 아예 자신이 발견한 파란색으로 '국제 클랭 파란색(IKB)'이라는 이름의 특허까지 얻었다. 클랭은 바로 이렇게 세상의 모든 색이 전부 다른 색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 모자를 쓴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With Hat) 앤디 워홀(Andy Warhol), 1983년. <출처 : wikiart>

 

앤디 워홀은 미학의 원리를 제로 지점까지 환원시켰다. 자크 데리다는 원본의 지위에 의문을 던진다. 원본의 우선적 지위를 파괴한다. 원본은 시뮬라크르(simulacre)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대리보충(supplement)의 논리는 앤디 워홀의 그림에 녹아 있다. ]

 

 

 

해체 또는 탈구축 (deconstruction) 

 

데리다는 서구적 전통철학을 해체한다. 따라서 이성 중심의 로고스 무덤에 침을 뱉어버린다. 더 나아가 구조주의라는 방법론에 기초한 탈근대주의의 비판으로까지 해체의 장을 넓힌다.

 

자크 데리다는 예술작품의 에르곤(ergon)과 파레르곤(parergon)의 경계를 해체시켰다. 에르곤은 액자 안에 있는 작품 자체이며, 파레르곤은 액자를 포함하여 작품을 벗어난 외적인 것들을 지칭한다. 오히려 그동안 외면당했던, 인식에 포함되지 않았던 파레르곤과의 위상, 침투, 넘나듦, 경계에 주목한다.

 

예술작품의 의미는 파레르곤처럼 무의미와 의미의 중첩이며, 어떠한 확고한 경계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 이론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데리다가 생각하는 미장아빔(mise en abyme)의 구조가 현대 예술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고 보았다. 크라우스에 따르면 현대 예술작품은 기호학적으로 '전환사(shifter)'의 특성을 가진다. 곤 사토시 감독의  『천년여우(千年女優)』는 이른바 '액자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 절대주의 구성 : 흰색 위의 흰색(Suprematist Composition : White on White)》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918년. <출처 : wikipedia> 

 

러시아의 말레비치는 절대주의 운동의 창안자로 추상회화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까지 끌고 감으로써 순수추상화가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효시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말레비치는 흰 바탕 위에 흰 사각형을 반봄함으로써 어떤 순수성을 부정하였다. 흰 사각형의 순수성이 흰 바탕에 의해 타락해버렸다. ] 

 

 


[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84~1886년. <출처 : wikipedia>

조르주 쇠라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3년 동안 아침 일찍부터 섬에 나가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액자에도 점묘법을 통해 그림이 그려져 있다. 파레르곤(parergon)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액자와 그림의 연속성을 추구하고 있다. ]

 

 

 

[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zquez), 1656~1657. <출처 : wikipedia>

 

원래 '펠리페 4세의 가족'으로 알려진 <라스 메니나스>는 끊임없는 논쟁이 계속되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거울을 오브제로 '미장아빔'을 시도한 대표작이다. 그림 속의 거울은 '그림 안의 그림' 형식으로 수수께끼를 만들어낸다. 그림 속 장소는 벨라스케스 작업실이다. 벨라스케스는 공주와 시녀들을 앞부분에, 다른 궁정인을 작업실 여기저기에 배치하였다. 뒷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치는 왕과 왕비의 모습과 이젤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은 내가 그림 속 세계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의 인물들이 나를, 그림 밖의 세계를 관조하는 듯하다. 벨라스케스는 공기원근법, 기하학, 시각적인 환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이용하여 신비하면서도 실재하는 듯한 공간을 창조했다. 조르다노는 이 작품을 `회화의 신학대전’이라고 불렀으며, 피카소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1957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연작을 제작하였다. ]

 

 

곤 사토시 감독의 천년여우(千年女優)

[ 출처 : Ladymakaze ]

​[ 출처 : Ben Russell ]


 

 

▣ 건축학의 Deconstruction (해체)

주류 건축에 대한 도전으로서, 해체주의자들의 계획안에 드러나는 가장 뚜렷하고도 공통적인 특징은 수평의 바닥면과 수직의 벽, 그리고 정연한 직교 구조 체계와 같은 친숙한 규범들을 공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건물들이 무너질 듯 말 듯하게 보이는데, 공간의 쓰임새에 대한 것은 기능을 고려한 계획으로부터 도출되었다기보다 나중에 가서야 결정되는 문제였다. ​

기존의 서양 철학은 쓰기보다 말하기에 특권을 부여하고 있었으며, ​우리에게 친숙한 이분법적 구분 ㅡ 형식/내용, 자연/문화, 사고/지각, 이론/실천, 남성/여성 ㅡ 의 토대가 되는 권력 관계를 종종 드러내고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그래머톨로지에 대하여(문자론)』에서 해설한 바에 따르면, '해체'는 바로 그러한 특권에 도전하고 이분법적 권력관계를 노출시키면서 기존 서양 철학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전개해나갔다.

즉, '위계적 특권의 체계적 구조'가 이러한 대립관계에 내재됨으로 인해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군림' 혹은 '지배'하는 권력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해체'는 지배받는 쪽인 '타자' 또한 똑같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두 대립항 사이에 있는 사고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구를 통해 신선하고 창조적인 가능성들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밝히려고 했다.

데리다의 복잡한 개념을 처음으로 건축에 적응한 선구자들 중에는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가 있었다. 그들은 〈분해(Decomposition)〉,​ 〈탈중심화(Decentring)〉, 〈불연속(Discontinuity)〉과 같은 용어들을 거론하면서 고전적 규범과 모더니스트 규범의 기반을 뒤흔들었다.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건축' 전시회에서 건축가들은 1920년대의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작업들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해체'의 개념과 결합시켰다. ​

[ 빌바오의 길 한쪽 끝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듯한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 이 건물은 소위 건축적 '해체'의 전형으로서, 때때로 무질서하게도 보이는 복잡한 형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 wikipedia> ]

 

 

[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이 건물의 분절된 형태들은 여러 기하학 체계들이 적층되면서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일그러진 다비드 별(Star of David)의 형상, 그리고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유대인 가족들의 주소지와 연결되는 다수의 축들이 포함된다. <출처 : wikipedia> ]

 

 

 

[ 일본 건축가 이토 토요오가 디자인한 바르셀로나의 호텔 《포르타 피라(Porta Fira)》(좌측 건물). <출처 : wikipedia> ]

 

 

 

▣ 가와쿠보의 해체주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 패션은 일반적인 규칙을 거부하고, 모든 관습들을 파괴한다. 해체주의는 인체의 비례와 미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옷의 형태와 구조를 바꾸었다. 패션계에서 해체주의적 트렌드는 1980년대 파리에 진출한 일본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는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noto),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와 함께 그 중심에 있었다.

 

컬렉션마다 늘 새로운 소재와 의복 형태를 창조했던 가와쿠보는 일본 전통 복식에 뿌리를 둔 평면적 의복을 바탕으로 옷은 몸에 잘 맞아야 한다는 서구 미학의 원칙을 해체하며, 파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옷을 만들었다. 1982년 가을/겨울 컬렉션에 발표된 비정상적으로 구멍이 나고 찢어진 스웨터는 일명 '레이스 스웨터(Lace Sweater)'라 불렸던 옷으로, 의복의 파괴를 암시하는 해체주의 패션의 효시로 볼 수 있다.

 

꼼 데 가르송의 《레이스 스웨터(Lace Sweater)》, 1982년. 의도적으로 찢고 구멍을 내는 작업을 통해 아름다움의 고정관념을 해체했다. <출처 : wrongclothingmap.tumblr.com> ]

 

 

 

완벽함은 추(醜)하다고 생각한다.

무(無)에서 시작하고 미완성으로 완성한다.

 

 

파리 진출 초기, 비평가들은 '전후(戰後)시대의 넝마주이 패션', '일본 여자 노숙자 패션', '종말론적 스타일', '포스트 히로시마(post-Hiroshima) 룩' 등 불쾌하고 공격적인 시각에서 그녀의 컬렉션을 바라보았다.

 

가와쿠보의 디자인은 미완성과의 놀이였으며, 유행을 타지 않으며, 착용자에게 창의력의 공간을 부여한다. 그녀에게 있어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정해진 이미지란 없었다. 현재의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만, 컬렉션이 끝난 후에는 이전의 콘셉트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녀는 형식이라는 틀에 얽매이는 것을 몹시 싫어했으며, 미완성의 헴 라인, 너덜너덜한 솔기, 복잡하게 얽혀 꿰매기, 구겨진 옷감, 비대칭과 비조화, 다양한 찢기, 입는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옷 등을 통해 미완의 미를 추구하였다.

 

 

 

▣ 구스타프 클림트의 분리주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은 음악·미술·철학·문학·건축·정신의학에서 새로운 조류가 태동한 유럽 전위파의 집결지였다. 당시 빈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면면만 봐도 화려하다.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와 아널드 쇤베르크,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제자 에곤 실레, 건축가 오토 바그너와 요제프 호프만, 시인 카를 크라우스(Karl Kraus), 소설가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

 

오스트리아 예술계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은 1897년 클림트를 회장으로 한  '분리파(分離派)'의 결성이었다. 제체시온, 즉 분리파(Secession)라는 용어는 '분리된 서민(secessio plebis)'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19세기말 클림트를 비롯한 혁신적인 예술가들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중견과 원로들의 작품을 참을 수 없었다. 클림트는 스스로 그 시대의 등용문이었던 '프랑스 파리파'와 분리했다. 그리고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쳤던 테세우스를 젊은 예술가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빈 분리파'가 분리파의 처음은 아니었다. 1892년 독일의 프란츠 폰 슈투크를 중심으로 '뮌헨 분리파'가 창설되었으며, 1893년에는 막스 리베르만을 중심으로 '베를린 분리파'가 이미 창설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파 하면 '빈 분리파'가 떠오르는 것은 클림트라는 거장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의 제자 에곤 실레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가 있었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빈 분리파의 주축 멤버였던 오토 바그너(Otto Wagner),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 그리고 에곤 실레도 구스타프 클림프와 함께 1918년 죽었다.

 

 

 

[ 분리파의 집 (Secession Building) 》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1898년. <출처 : WikipediA> ]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Joseph Maria Olbrich)는 빈 분리파의 창립 멤버였다. 분리파의 집의 공간 분할과 평면 설계를 보면, '새 예술에 헌정한 전시의 전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하여 통일된 사색적인 공간을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정문 위에는 빈 분리파의 모토 '각각의 시대에 그 예술을. 각각의 예술에 그 자유를'이 금으로 새겨져 있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클림트는 개성이 강한 예술가였다. 클림트는 누구보다도 고집이 센 사람이었고, 더욱이 어떤 것에도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독창적인 예술세계에 몰두하여 특별한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클림트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빈 대학의 천장 도안으로 그린 <철학>, <법학>, <의학> 시리즈 때문이었다. 클림트는 나체의 임신부를 비롯한 벌거벗은 사람들, 혼돈 속에서 무기력하게 떠도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통해 병에 들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뇌에 찬 인간의 불안한 심리와 필연적인 운명과 삶의 부조리를 표현했다. 나중에 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빈의 미술계는 뜨거운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다.

 

 

[ 철학(Philosophy)법학(Jurisprudence)의학(Medicine) <좌측부터>》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출처 : wikipedia>

 

빈 대학의 주문으로 1900년도부터 1903년까지 대강당에 그린 천정화 3점이다. 이후 세 작품은 대학과의 계약이 파기되었으며,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실되어 현재는 사진만이 존재한다. ] 

 

1902년 제14회 분리주의 전시회는 분리파 역사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전시회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에게 헌정되었는데, 이 전시회야말로 클림트가 기획한 종합예술작품을 지향하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요제프 호프만이 전시실 내부 장식을 맡았고, 개막일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모티프로 편곡한 작품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시회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클림트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모티프로 그린 벽화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였다. 벌거벗은 여인들의 고통스런 모습으로 시작되는 그림은 온갖 악마의 위협적인 공간을 지나, 마침내 합창하는 여인들 사이에서 두 남녀가 뜨겁게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 <베토벤 프리즈>의 마지막 부분 온 세계에 보내는 입맞춤(Here's a Kiss to the Whole World)》 구스타프 클림트, 1902년. <출처 : The Bridgeman Art Library>

 

종 모양의 공간 안에서 포옹을 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한 영웅이 무절제한 여인들의 유혹과 악마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마침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프리즈(frieze)는 건축물의 내·외벽에 부착한 띠 모양의 장식물을 뜻한다. ]

 

 

하지만 온 힘을 다한 역작 《베토벤 프리즈》는 클림트의 생각과는 달리 대중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았으며, 빈 대학으로부터 의뢰받은 천장화도 역시 우의성과 외설성으로 인하여 교수들과 정면 충돌을 빚게 되었다. 결국 클림트는 분리파 내에서도 지지 기반을 잃어버리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최상의 작업 조건과 더불어 마스터피스의 출산을 예고하는 산고의 고통이었다.

 

고흐한테 고갱이란 친구가 생기고 피카소한테 브라크라는 친구가 생겼듯이 클림트에게도 제자 겸 친구가 생겼다. 드로잉에 탁월한 솜씨를 보인 에곤 실레라는 젊은 청년이 동반자를 자처했다. 바야흐로 '황금 시기'로 불리는 대작의 시기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그 유명한 《키스》의 탄생이다. 

 

 

 

[ 키스 (The Kiss) 》  구스타프 클림트, oil and gold leaf on canvas, 1908년. <출처 : WikipediA> 

 

여성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고 남성 역시 여성의 입술이 아닌 볼에 키스하고 있다. 두 남녀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데, 클림트 자신과 그가 평생 동안 정신적 반려자로 삼았던 플뢰게(Emilie Floge)처럼 서로 다가설 수 없는 남녀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하여간 이 그림은 예쁘고 섹시해서인지 대중들이 사랑하는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  

 

The Kiss - Gustav Klimt

 

[ 소유자 : Destination Starry ]

 

 

 

[ 서 있는 벌거벗은 검은 머리 소녀》 에곤 실레(Egon Schiele), 1910년. <출처 : wikipedia>

 

실레의 드로잉은 '분리'라는 용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기존의 드로잉과는 전혀 다른 정체불명의 방식으로 관람객의 찬탄을 자아냈다. 현대미술에서 금기시 된, 삽화처럼 그리면 안 된다는 규칙을 실레는 정면으로 거슬렀다. ]

 

 

 

[ 《추기경수녀(The Cardinal and Nun)에곤 실레(Egon Schiele), 1912년. <출처 : wikipedia>

 

금욕의 대명사인 추기경과 수녀가 주위를 둘러보며 에로틱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실레와 클림트는 영혼 속에서 형제였다. 남녀간의

사랑이 그들의 유일한 종교였다. 클림트보다 28세나 어렸던 실레는 클림트가 사망했을 때 그의 마지막 모습을 스케치로 남겼다. 하지만 실레 역시 클림트와 같은 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벨라 바르톡의 황금분할

 

바르톡(Bela Bartok)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가운데의 한 사람이며, 헝가리 국민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특히 헝가리 현대 음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바르톡은 황금분할의 법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르톡은 황금분할의 원리를 자신의 음악세계의 화두로 삼았던 최초의 작곡가이다.


알레그로 바르바로(Allegro barbaro)》(1911년)는 바르톡황금분할을 최초로 도입한 피아노 작품이다. 그는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새로운 주제의 도입, 악기의 배치, 음색의 변화 등의 시점을 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의 마디를 나누고 황금 분할점(Golden Section)에 클라이맥스를 두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바르톡은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미의 산출로서 황금분할법을 도입하여 그의 특유한 반음계법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 출처 : Berliner Philharmoniker ]

 

​[ 출처 : Christopher Goodpasture ]


황금분할은 황금비를 뜻하는데, 숫자로는 (1.61803…)로 표기되는 무리수이다. 이 황금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피타고라스(Pythagoras)다. 피타고라스는 이 비율이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이라 여겨 황금비라고 불렀고, 이 도형을 피타고라스 학파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최초로 음정을 수적 비율관계로 분석하여 설명하였다.

 

음악에서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은 각각의 숫자가 앞선 두 숫자의 합이다. 예, 1, 2, 3, 5, 8, 13…)이 황금비를 만들어낸다. 2/1, 3/2, 5/3, 8/5, 계속 계산하면 1.618이란 황금비에 수렴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소묘 작품인 <비트루비우스적 인간>과 <모나리자>, 화가 몬드리안의 작품뿐만 아니라 석굴암 불상, 파리의 개선문, 달팽이의 나선, DNA의 나선구조, A4용지 등은 피보나치의 수가 들어 있는 황금비율을 활용해 만든 것들이다.

 

 

 

[ 브로드웨이 부기우기(broadway boogie woogie)》(1943년) & 노랑, 파랑, 빨강의 구성(Composition with Yellow, Blue, and Red)》(1937~1942년)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출처 : wikipedia

 

제목 가운데 '브로드웨이'뉴욕의 중심 거리이고, '부기우기'는 당시 유행하던 재즈 음악이다. <노랑, 파랑, 빨강의 구성>에서 몬드리안은 일련의 수직·수평선이 포개어지며 형성된 그리드 구성을 선보이고 있다. 기본색으로 분할된 4개의 다른 영역은, 주어진 각 선과의 관계 속에서, 색채가 형태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꾸며져 있다. 두 그림에서 황금비율은 어디에 있을까요. ]

 

 

 

  

 

 

 

 

 

▣ 참고문헌 및 자료

 

1)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 자크 데리다 지음, 김성도 옮김, 민음사, 2010년

2) 『데리다 & 들뢰즈』, 박영욱 지음, 김영사, 2009년

​3) 『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지음, 이다미디어, 2014년

​4) 『비엔나 1900』, 크리스티안 브란트슈태터 지음, 박소철 옮김, 예경, 2013년

​5)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조영남 지음, 한길사, 2007년

​6)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 권순훤 지음, 쌤앤파커스, 2014년

​7) 『건축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리차드 웨스턴 지음, 김광현 옮김, 2012년

​8) 『열공모드』,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소현 옮김, 살림FRIENDS, 2008년

9) 해체주의란 무엇인가, 서동욱 서강대학교 교수, 네이버캐스트  

10) 구스타프 클림트, 차창룡 시인, 네이버캐스트

11) 황금빛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국립현대미술관, 네이버캐스트

12) 빈 분리파, 이민수 미술칼럼니스트, 네이버캐스트

13)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기혜경 학예연구사, 네이버캐스트 

14) 가와쿠보의 해체주의, 이진민 교수, 네이버캐스트

15) 레이 가와쿠보, 이진민 교수, 네이버캐스트

16) 실수란 무엇일까, 박부성 교수, 네이버캐스트

17) 음악 속에서 황금분할 찾은 이, 김정진 박사, 레디앙, 2014-05-14

18) 음악의 본질은 무엇일까, 김정진 박사, 레디앙, 2014-04-30 

 

출처 : http://blog.naver.com/leespider?Redirect=Log&logNo=220094842553&from=post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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