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시 모음>최영미의 선운사 동백꽃' 외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사소한일일것이다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때에
오래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붙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로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동안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 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것을믿는다
(황동규. 시인) |
사랑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 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컷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조국 산천의 아픔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 김용택. 시인)
화살처럼
명중하리라
관중(貫中)하리라, 마음먹고
시위를 떠난다
비명 소리 홀로 남겨 놓은 채
떠나온 길
오늘도 길을 따라 날아간다
내 막무가내 사랑
(이기윤·시인)
사랑의 물리학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 시인)
꽃비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여
마음에 그 사랑을 들이기 위해
낡고 정든 것은
하나 둘 내치시기를
사랑은 잃어가는 것이다
보라,
꽃잎도 버릴 때에
눈이 부시다
(홍수희·사랑)
목숨의 노래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문정희·시인)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가슴을 저미며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눈물 없이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벌판을 지나
벌판 가득한 눈발 속 더 지나
가슴을 후벼파며 내게 오는 그대여
등에 기대어
흐느끼며 울고 싶은 그대여
눈보라 진눈깨비와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쏟아지는 빗발과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견딜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던 시간을 지나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도종환·시인)
돌쩌귀 사랑
울고불고 치사한 이승의 사랑일랑 그만 끝을 내고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한 몸의 돌쩌귀로 환생하자
그대는 문설주의 암짝이 되고 나는 문짝의 수짝이 되어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우리 뜨겁게 쇠살 부비자
어디 쇠가 녹으랴만 그 쇠 녹을 때까지
우리 돌쩌귀 같은 사랑 한 번 해보자
(정일근·시인)
식물성 사랑
나무는
가까이 서 있는 두 나무는
서로에게 팔을 뻗어도
껴안지는 않습니다.
닿을 듯 가까이
알맞은 거리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기뻐할 뿐
팔을 뻗어 힘껏 잡지는 않습니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땅에 그림자 나란히 드리우고
하늘 아래 걸어갑니다.
그대 가슴으로 팔을 깊이 뻗는다는 것은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
그대를 두 팔로 껴안는다는 것은
그대를 품속에 두고 태양빛을 가리는 일.
땅 속으로 깊고 은밀히
영혼의 뿌리를 얽고
강물처럼 속삭이며 흘러 별까지
서로를 마음으로만 가지는 나무
서로를 눈으로만 가지는 두 나무
(이성선·시인)
사랑에 대한 반가사유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일용할 양식 얻고
제게 알맞은 여자 얻어 집을 이루었다
하루 세 끼 숟가락질로 몸 건사하고
풀씨 같은 말품 팔아 볕드는 本家 얻었다
세상의 저녁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아름다워
세상 가운데로 편지 쓰고
노을의 마음으로 노래 띄운다
누가 너더러 고관대작 못되었다고 탓하더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세간이라 부르며
잠시 빌린 집 한 채로 주소를 얹었다
이 세상 처음인 듯
지나는 마을마다 채송화 같은 이름 부르고
풀씨 같은 아이 하나 얻어 본적에 실었다
우리 사는 뒤뜰에 달빛이 깔린다
나는 눈매 고운 너랑
한생을 살고 싶었다
발이 쬐끄매 더 이쁜 너랑 소꿉살림 차려놓고
이 땅이 내 무덤이 될 때까지
너랑만 살고 싶었다
(이기철·시인 )
무엇에든
물들고 싶은 날
유리창을 닦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에
상처 하나 없을까
속으로만 삼킨 세월에
얼룩 하나 없을까
다 지운 줄 알았던
불면의 시간
단풍같이 번지는데
입김만 자꾸
후 후 후
토해내고 있다
(박민용. 시인)
순간을 피었다 지는 꽃
밤 하늘의 별처럼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순간을 피었다 지기에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사시장철 꽃이 그 자리에 피어있다면
누가 눈여겨보고 반색을 할 것인가
사랑은 부싯돌처럼 ,
순간을 긋고 지나가는
불의 꽃인 것을
(류윤모. 시인)
너에게는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
너는 내가 생각해주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거야
나의 그리움이 너를 만들지.
눈, 코, 입, 너의 마음까지도
어느 날 너는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숨쉬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너는 한 그루 작은 나무
나의 그리움으로 자라는
푸른 식물
내가 가꾸는 만큼 아름다워지고,
내가 꿈꾸는 만큼 눈부셔가는
아름다운 너는
나의 한 그루 기쁨의 나무
내 몸 안의 새살
네 앞에 서면 내 가진 것 다 주고 싶다.
다 주고도 기쁠 수 있다.
내가 생각해주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너는 나의 반쪽,
외로운 너에게는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
(윤수천·시인)
사랑이라는 것
소 두 마리가
풀밭에 마주 서서
서로의 등을 핥아 주고 있습니다
긴 혀를 내밀어
이마와 얼굴과 목과 등을
말끔히 닦아 주고 구석구석 핥아 줍니다
두 녀석은
친구 사이인지
어미와 자식간인지
아니면 사랑에 빠진 암수 놈인지
얼른 분간이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두 녀석은
서로 핥아 주고 몸 부비는 동안
외롭지 않습니다
그 어떤 힘들고 고달픈 일 있어도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이 광막한 대 초원에
오직 그들 두 마리뿐이라 해도
세상은 가득할 것입니다
(이동순·시인)
사랑하는 사람
어쩌다가
땅 위에 태어나서
기껏해야 한 칠십년
결국은 울다가 웃다가 가네.
이 기간 동안에
내가 만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 준
빛나고 선택받은 인연을
물방울 어리는 거미줄로 이승에 그어 놓고
그것을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보태며
나는 꺼져갈까 하네
(박재삼·시인)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때로는 나란히 선 키 큰 나무가 되어
때로는 바위 그늘의 들꽃이 되어
또 다시 겨울이 와서
큰 산과 들이 비워진다 해도
여윈 얼굴 마주보며
빛나게 웃어라
두 그루 키 큰 나무의
하늘 쪽 끝머리마다
벌써 포근한 봄빛을 내려앉고
바위 그늘 속 어깨 기댄 들꽃의
땅 깊은 무릎 아래에
벌써 따뜻한 물은 흘러라
또 다시 겨울이 와서
세월이 무정타고 말하여져도
사랑하는 사람들만 벌써 봄 향기 속에 있으니
여윈 얼굴로도 바라보며
빛나게 웃어라
(나태주·시인)
- 아 힘들어!!. 에휴 고생고생 끌어 모음 ㅋ: 김향희